40대 부부의 재무설계 中

지출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매월 쓰는 정기지출과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지출이다. 이 기준으로 지출 항목을 잘 분류하지 않으면 과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비정기지출을 정기지출로 분류할 경우에 그렇다. 지금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예산이 남아 있다”는 심리가 작동할 수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와 한국경제교육원㈜이 정기지출과 비정기지출이 뒤섞인 한 부부의 가계부를 정리했다.

가계부를 작성할 땐 사용 빈도에 따라 지출을 정기지출과 비정기지출로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계부를 작성할 땐 사용 빈도에 따라 지출을 정기지출과 비정기지출로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물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농산물부터 외식물가까지 오르지 않는 게 없다. 소비자물가만 봐도 숨이 턱 막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6.3% 상승했다. 통계청은 “폭염과 장마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가공식품·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이 오름세를 띤 게 물가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죽하면 20~30대 사이에선 하루 동안 지출을 일절 하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 열풍이 일어날 정도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돈을 모으기 힘들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서다.

이번 상담의 주인공인 강희찬(가명·43)·안영희(가명·43) 부부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외식은 물론이고 그 흔한 배달음식도 마다하며 지출을 아꼈다. 아침은 빵과 시리얼로 때우고, 점심은 회사 식당에서 해결했다. 저녁과 주말엔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 먹었다. 이렇게 하면 지출이 줄 것이라고 부부는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계부는 좀처럼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식재료를 과도하게 사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식단을 짜지 않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요리했던 탓에 부부는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식재료 중 일부는 유통기한이 지나 먹지도 못한 채 버리기 일쑤였다.

갈수록 재정상황이 악화하자 부부는 다툼이 늘었다. 이사 문제를 두고도 의견이 달라 옥신각신했다. 아내는 자녀 교육을 위해 학원가가 있는 신도시로 이사하길 원한다. 하지만 남편은 지금 사는 집보다 2배나 비싼 가격이 부담스럽다. 부부의 수중엔 1억5000만원이 있는데, 남편은 이 돈으로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말한다.

아내도 “노후를 생각하자”는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싶은 마음이 판단을 망설이게 만든다. 결국 부부는 필자와의 상담을 통해 이같은 고민거리에 종지부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상담을 통해 확인한 부부의 재정상태는 이렇다. 둘 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부부의 월소득은 622만원으로 남편이 332만원, 아내가 290만원을 번다. 정기지출은 공과금 35만원, 식비·생활비 135만원, 휴대전화·TV·인터넷 요금 28만원, 주유비·교통비 25만원, 자녀 학원비 43만원, 부부 용돈 90만원, 보험료 60만원, 모임 회비 18만원, 의류비·미용비 40만원, 의료비 4만원, 신용카드 할부금 21만원, 여행비 22만원 등 521만원이다.

1년간 쓰는 비정기 지출은 명절비·경조사비 연 250만원(이하 1년 기준), 자동차 보험료 110만원, 각종 세금 80만원 등 440만원이다. 월평균 36만원을 쓰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은 적금 50만원, 연금저축 20만원 등 70만원이다. 이렇게 부부는 한달에 627만원을 쓰고 5만원 적자를 보고 있다. 지난 상담에서 식단을 짜 식재료를 관리하도록 주문했고, 결과적으로 식비를 20만원 줄여 적자를 15만원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아직 줄일 것이 여전히 많았고, 가계부상에는 또다른 문제도 있다. 의류비·미용비·여행비 등 비정기지출에 있어야 할 항목들이 정기지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정기지출과 정기지출이 뒤섞이면 과소비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예산이 남으면 어떻게든 예산을 다 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서다. 40만원씩 쓰는 의류비·미용비만 봐도 그렇다. 1년 기준이면 480만원을 쓰는 셈으로, 이는 다른 상담자들보다 2배 가까이 되는 액수다.

이런 이유로 부부는 지출 다이어트와 함께 가계부 교통정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의류비·미용비(40만원)와 여행비(22만원)를 비정기지출로 옮겼다. 그러면서 액수도 각각 절반으로 줄였다. 의류비·미용비는 월 20만원씩 1년간 총 240만원, 여행비는 11만원씩 총 132만원으로 책정했다. 두 항목이 비정기지출로 옮겨감에 따라 비정기지출이 월평균 36만원에서 67만원으로 늘었지만, 총지출은 줄어들었다.

다음은 60만원씩 쓰는 보험료를 손봤다. 필자의 경험상 일반 가정의 보험료는 소득의 3~5% 정도가 적정하다. 이 수치를 고려한다면 전체 소득의 9.6%를 차지하는 부부의 보험료는 액수가 과한 측면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부부의 보험을 살폈는데, CI보험이 눈에 들어왔다. 이 보험의 특징은 중대한 암·뇌졸중·급성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약정 보험금의 50~ 80%를 먼저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장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해 요즘엔 인기가 별로 없다.

부부는 CI보험을 해지하고 저렴하면서도 보장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보험에 새로 가입했다. 또 다른 보험들도 조금씩 손을 봐 금액을 낮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부부의 보험료는 60만원에서 22만원으로 38만원이나 줄었다. 더불어 보험해지 환급금 500만원도 생겼다.

이 환급금을 일부 활용해 휴대전화·TV·인터넷 요금(28만원)을 줄이기로 했다. 현재 아내와 자녀의 휴대전화 할부금이 총 195만원이 남아 있는데, 모두 일시불로 갚기로 했다. 휴대전화 할부 수수료도 어디까지나 ‘빚’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 또 부부는 저렴한 알뜰폰에 가입해 자신의 데이터 사용량에 걸맞은 요금제를 쓰기로 했다. 이렇게 전체 요금은 28만원에서 17만원으로 11만원 줄어들었다.

휴대전화 할부금을 갚고 남은 305만원은 신용카드 할부금(월 21만원·총 135만원)을 전부 갚는 데 썼다. 따라서 할부금은 지출항목에서 사라지게 됐다. 마지막으로 부부의 용돈을 총 90만원에서 70만원으로, 지인들과의 모임회비를 18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였다.

이렇게 2차 상담이 끝났다. 부부는 정기지출에서 의류비·미용비(20만원), 여행비(11만원), 보험료(38만원), 휴대전화·TV·인터넷 요금(11만원), 신용카드 할부금(21만원), 부부 용돈(20만원), 모임회비(8만원) 등 129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부부의 여유자금도 15만원에서 144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휴대전화 할부금과 신용카드 할부금을 갚고 남은 보험해지 환급금 170만원도 덤으로 생겼다. 이제 부부의 노후를 확실하게 설계하는 일만 남았다. 그 과정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