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도시락, 정말 값싸고 맛나서 인기일까

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외식물가가 무엇보다 많이 올랐다. 하루 한끼는 집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이런 상황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런 이유로 최근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이를 두고 가성비가 좋아서라는 말이 쏟아진다. 과연 그럴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물가가 치솟자 편의저메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물가가 치솟자 편의저메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고물가 행진에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 이어지면서 MZ세대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편의점 이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편의점들은 여기에 힘입어 2분기 호실적을 거뒀다(A매체).”

“편의점에서 식재료를 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계속되는 물가 상승에 장보기를 포기한 이들이 생겨나면서 가성비를 앞세운 편의점 PB 상품 판매량이 증가세다(B매체).” “3년 만에 2000원대 도시락이 돌아왔다(C매체).”

최근 쏟아지고 있는 런치플레이션 관련 기사들이다. 고물가 기조 속에서 가성비 좋은 편의점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점심값이 1만원이 넘자 식비를 아끼기 위해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편의점 구독서비스를 이용하고, 대형마트 대신 편의점에서 소포장 상품을 구매한다는 내용의 기사도 많다. 

외식물가가 오르면서 식당 대신 간편식을 찾는 이들은 실제로 많다. 7월 기준, 자장면(서울 평균가격)은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5462원에서 6300원으로 15.3% 올랐다. 칼국수는 7462원에서 8385원으로 가격이 12.4% 상승했다.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즐겨 먹는 김치찌개 백반도 6923원에서 7423원으로 7.2%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02.26에서 108.74로 6.3%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외식물가 상승폭은 확실히 더 크다.[※참고: 이 기간 외식물가지수는 102.78에서 111.39로 8.4% 치솟았다.]

간편식을 찾는 이들이 늘자 편의점은 재료 량을 늘리거나 간편식 상품군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7월 편의점 업계 간편식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약 40% 증가했다.


그렇다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표되는 간편식은 정말 가성비가 뛰어난 걸까. 꼭 그렇지도 않다. 과거 편의점에선 2000~3000원대 도시락을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대부분의 도시락이 4000원 후반~5000원 중반 가격대를 이루고 있다.

비싼 도시락은 1만원을 넘는 것도 있다. 가성비를 좇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편의점도 이에 발맞춰 가성비 좋은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3000원 이하의 도시락은 CU가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손잡고 출시한 ‘청양 어묵 덮밥’ ‘소시지 김치 덮밥(각 2900원)’, 이마트24의 ‘새콤달콤유부초밥(2500원)’ 정도다.

오히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은 다른 채널에서보다 비싼 경우가 많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이 주요 가정간편식 가격을 분석한 자료를 보자. 한국소비자원은 주요 상품 10개(즉석밥ㆍ컵밥ㆍ즉석국ㆍ탕찌개ㆍ라면ㆍ컵라면ㆍ즉석짜장ㆍ즉석카레ㆍ컵수프ㆍ즉석죽)를 선정해 업태별로 구입 비용을 비교했는데, 그 결과 대형마트나 전통시장보다 편의점이 압도적으로 비쌌다.

대형마트에선 10개 상품을 1만9972원이면 살 수 있는데 편의점에선 같은 상품을 구입하는 데 2만7325원을 지불해야 했다. 대형마트보다 26.9%나 비싼 셈이다.

물론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편의점 도시락과 직접 비교하는 덴 한계가 있지만,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SSM보다 비싼 게 사실이다. 당시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선 10개 상품 모두 백화점보다도 비쌌다.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것 말고도 문제가 또 있다. 편의점 도시락 하나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거다. 치솟는 물가에 30대 직장인 하정민(가명)씨는 편도족(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에 합류했지만 한끼 배부르게 먹으려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날은 컵라면, 또 어떤 날은 탄산음료를 추가 구매한다. 4900원짜리 도시락에 1300원짜리 컵라면만 추가해도 벌써 6200원이다. 인근의 한식 뷔페와 맞먹는 가격이다. 하씨는 “도시락으론 허기만 겨우 달랠 수 있다”면서 “이것저것 집다 보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보다도 비쌀 때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최광석(가명)씨는 최근 다시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부분 한식뷔페를 이용하고 한두번은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하씨와 마찬가지로 편의점에서 쓰는 돈이나 식당에서 쓰는 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걸까.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는 그것을 두고 일종의 ‘시간차’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다 보면 가격이 오르는 것에 둔감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모든 제품의 가격이 갑자기 올랐다. 소비자들에겐 일종의 경제적 쇼크(shock) 상태인 거다. 그러니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쇼크를 경험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소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금리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이들은 경제적 압박감을 더 크게 느낀다. 거기다 물가까지 계속 오르면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1000원, 500원이라도 저렴한 걸 찾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가성비를 따졌다면, 지금은 상대물가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거다.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소비심리다.”

이 교수는 다른 선택지가 생기면 편의점 도시락에 매몰되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라고 말했다. “과거엔 1만원으로 10개를 샀는데 지금은 같은 돈으로 8개밖에 살 수 없지 않나. 그러면 소비자의 입장에선 실질소득이 한순간 감소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소비 수준을 갑자기 조정하는 건 쉽지 않다. 불가피하지 않은 것들에서 하나둘 소비를 조율하는 ‘시간차’ 과정이 오는데, 지금이 그 순간이다. 하나둘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아마도 다른 선택지가 생길 거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가성비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워낙 물가가 비싸다 보니 100원이라도 싼 편의점 도시락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고물가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서글픈 현주소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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