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 완화 움직임
온플법 제정 무산 가능성 높아
규제 완화 일변도 정책의 덫

# ‘대형마트 의무휴업’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이 지난 7월 이 문제를 ‘국민제안’ 투표에 부친 데 이어, 8월에는 국무조정실이 ‘규제심판 제도’의 첫 안건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테이블에 올렸기 때문이다.

#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는 대형마트의 ‘숙원사업’이다. 2018년 ‘의무휴업은 위헌’이란 내용을 골자로 헌법소원을 내면서까지 이 규제를 무력화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도 끊임없이 규제 철폐를 요구해왔다. 

# 그런데 정권이 바뀐 지금, 대형마트 업계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규제 완화’를 국정 기조로 삼은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이슈에 불씨를 댕기고 있어서다. 문제는 비단 대형마트 규제만이 아니란 점이다. 

#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 논의도 사실상 멈춰 세웠다. 온플법은 비대해진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막기 위한 규제를 담은 법인데, 윤 정부는 온플법 대신 ‘자율규제’에 무게를 싣고 있다. 

# 전통시장, 소상공인과 대기업의 ‘상생’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최소한의 제도를 흔들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유통 정책은 과연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가 이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기울어진 운동장’. 국내 유통시장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기울어진 운동장’. 국내 유통시장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세상의 모든 일엔 전조前兆가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렇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꺼내들었다면, 그 전에 정부를 대표하는 이가 ‘그런 기조와 가능성’을 내비쳤을 가능성이 높다. 시계추를 지난 2월로 돌려보자.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를 호남을 대표하는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총력지원했다. 

늘 그렇듯 ‘전조’는 빠르게 현실화했다. 대선이 끝난 지 4개월 만인 지난 7월 현대백화점그룹은 옛 전남방직·일신방직 부지에 ‘더현대 광주’ 건립 추진 계획을 내놨다. 8월 17일엔 신세계그룹이 어등산 관광단지에 ‘스타필드’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옷을 갈아입은 국민의힘도 장단을 맞추고 있다. 7월 18일 시·도 예산정책협의회 첫 회의를 광주에서 개최한 국민의힘은 그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제시했던 ‘복합쇼핑몰 유치 약속’을 꺼내들었다. “윤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복합쇼핑몰 유치 약속을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권성동 원내대표).” 광주시 역시 ‘국가지원형 복합쇼핑몰’ 유치 명목으로 국비 9000억원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실종됐을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 상인이나 소상공인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참고: 광주 지역은 인구 144만명 중 60만명이 자영업·중소상공업과 관련돼 있다. 이 때문에 2015년 신세계가 복합쇼핑몰 건립을 추진했을 때에도 소상공인의 생계를 위협할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전국상인연합회 광주지회 관계자는 “광주는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지역으로 복합쇼핑몰 유치에 따른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광주시가 상생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실질적으로 내놓은 게 없다”고 말했다. 윤 정부의 친親기업 성향의 유통 정책은 과연 괜찮은 걸까. 

‘기울어진 운동장’. 국내 유통시장을 비유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SSM)·복합쇼핑몰 등이 공격적으로 출점하면서 소상공인이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건 온라인이라고 다를 게 없다. 최근엔 쿠팡 등 이커머스 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정부는 소상공인을 위한 규제망을 구축해 왔다. 

이명박(MB) 정부 땐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2012년),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의무휴업을 규제했다. 문재인 정부 땐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하 온플법)’ 제정을 추진했다. 두 사례 모두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기울어지는 걸 막아보려는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런 규제가 줄줄이 풀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윤 정부가 택한 방식이다. 제대로 된 검증 절차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기식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윤 정부의 ‘친기업적 유통정책’은 괜찮은 걸까. 하나씩 확인해 보자.

대통령실은 지난 7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국민제안 투표에 부쳤다.[사진=뉴시스]
대통령실은 지난 7월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국민제안 투표에 부쳤다.[사진=뉴시스]

■이슈❶ 대형마트 의무휴업 = 윤 정부가 가장 빠르게 수술대에 올린 이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완화다. 이 제도는 언급했듯 MB정부 시절에 시행됐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 휴업하는 게 골자다.[※참고: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MB정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국내 소상공인 보호 대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 제도의 취지는 한달에 단 이틀만이라도 ‘상생’하자는 것이었지만 대형마트 업계는 이 법을 없애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대표적 사례는 2018년 이마트·홈플러스·롯데쇼핑·GS리테일 등 7개 유통회사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영업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이 법이) 유통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유지하고, 중소상인을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대형마트는 ‘월 2회 의무휴업’이 자신들을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윤 정부는 이를 ‘여론의 장場’으로 끌어들였다.

지난 6월 23일 ‘국민제안’ 사이트를 개설한 대통령실은 국민들로부터 받은 제안 중 톱10를 추려 일주일간(7월 24일~31일) 투표에 부쳤는데,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그중 가장 많은 ‘좋아요(57만7415건)’를 받았다. 대통령실이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3가지 제안을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폐지 수순을 밟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투표 직후 ‘어뷰징(조작)’ 논란이 불거진 탓에 관련 논의는 잠정 중단됐다. 논의가 멈추긴 했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이슈를 ‘국민투표’에 부친 것 자체가 문제란 지적이 숱해서다. 소상공인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어떻게 인기투표하듯 처리하느냐는 게 비판의 골자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국민 여론을 취합하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방식이 합리적이고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객관적 검증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인기투표’로 처리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문제는 윤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이슈를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윤 정부는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심판 제도’의 첫 안건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를 올렸다. 규제심판 제도는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규제심판부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규제의 적절성을 심의하는 제도다. 참여 위원(5명 이내) 중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규제 개선안이 채택된다.

4일 열린 1차 규제심판회의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체인스토어협회와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 등 이해당사자들이 참석해 의견을 교환했다. 5일부터 18일까지는 국민 의견을 청취하는 ‘온라인 토론(규제정보포털)’을 실시했다. 해당 온라인 토론은 앞서 국민제안 투표의 어뷰징 논란을 씻으려는 듯 SNS 등 인증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오는 24일에는 2차 회의를 개최한다. 

국무조정실 측은 이 회의를 “상생을 위한 과정”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요식 절차’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규제심판부가 대형마트 의무휴업 문제를 규제 개선안으로 채택하더라도 관련 부처 검토, 대통령 주재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관련 부처의) 1차 검토를 거쳐 상정된 만큼 ‘불수용’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전통시장·소상공인의 상생을 꾀하는 게 목적인 ‘대형마트 의무휴업’ 이슈를 인기투표 방식이나 몇몇 참여 위원의 판단으로 결정해도 되는 걸까. 제도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한 다음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수순이지 않을까.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제도를 개선할 때에는 단계적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제도 변화가 소상공인·소비자·기업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예측하고 전망하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자택일하듯 성급하게 제도를 뒤집어선 안 된다는 거다. 

■이슈❷ 온플법 제정 무산 = 유통 규제를 풀기 위한 윤 정부의 발걸음은 이게 끝이 아니다. 문 정부가 제정을 추진해온 ‘온플법’도 무산 위기에 놓였다. 온플법은 이른바 ‘네카쿠배(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라 불리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삼은 불공정 행위도 급증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플랫폼에 입점한 업체에 과도한 수수료나 납품 단가의 인하를 요구하거나, 상품·서비스 노출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하는 행위가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쿠팡의 입점업체 수수료율은 31.2%(2020년 거래 기준)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평균 수수료율 19.7%, 18.8%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도 ‘대규모유통업법’이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로는 온라인 플랫폼 견제가 불가능하자 문 정부가 온플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문 정부가 지난해 1월 발의한 온플법에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계약서 교부 의무 ▲중개사업자의 계약 해지 시 사전 통지 의무 ▲중개사업자의 불공정거래행위 기준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시각은 달랐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플랫폼 자율 규제’ 방침을 강조했는데, 이는 윤 정부의 ‘기조’가 된 듯하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 16일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온플법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 자율규제안’을 보고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1월 온플법을 주도해 발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80도 달라진 태도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플랫폼 자율규제를 도입해 추이를 살펴본 다음에 관련 법안을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온플법이 다시 ‘논의의 장’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온플법의 처리를 담당하고 있는 법안심사소위가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째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온라인 플랫폼을 자율규제하겠다는 구상은 허상虛想에 가깝다”면서 말을 이었다. “플랫폼 업체의 불공정행위 등은 자율규제로 막을 수 없는 문제다. 결과적으로 규제가 필요한 순간이 올 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의무휴업 규제를 시작했다.[사진=뉴시스]
이명박 정부 당시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의무휴업 규제를 시작했다.[사진=뉴시스]

이렇게 윤 정부의 유통 정책은 소상공인보단 대기업에 편중돼 있다.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또다시 기승을 부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친기업적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상생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에 섣불리 메스를 대면 후유증만 커질 수도 있다. 

오세조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유통 정책은 다양한 차원에서 철저히 검토하고 기조를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엔 소상공인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급진적인 규제 완화보다는 대기업-골목상권 간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지자체에 권한을 확대해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말이 과연 윤 대통령이나 그의 참모들에겐 들릴까. 그마저도 알 수 없는 요즘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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