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PB 제품은 정말 착한가
가격 왜곡, 갑질 등 문제 많아

# 2010년 한 대형마트가 5000원짜리 PB(Private Brand) 치킨을 선보였다.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동네 치킨집 다 죽는다”는 자영업자의 성토에 소비자들이 공감한 결과였다.

#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대형마트가 6990원짜리 PB 치킨을 선보였다. 이번엔 소비자가 먼저 환호했다. 물가가 무섭게 치솟은 데다,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가격 거품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격을 파괴하는 대형마트의 PB 전략은 괜찮은 걸까. 

대형마트 업계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저렴한 치킨, 피자 등 저렴한 PB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대형마트 업계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저렴한 치킨, 피자 등 저렴한 PB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장보기가 두려운 시절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물가 탓이다. 물건을 파는 곳도 고심이 많다. 판매가를 올릴 수도, 올리지 않을 수도 없어서다. 이럴 땐 자금이 많은 곳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밖에 없다. 싼값을 앞세운 ‘PB(Private Brand)’ 상품으로 자영업계나 전통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대형마트의 행보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품목은 치킨이다. ‘PB 치킨’ 경쟁에 불을 붙인 건 홈플러스다. 이 대형마트는 지난 6월 30일 매장에서 직접 제조·판매하는 PB 상품 ‘당당치킨’을 선보였다. 프라이드 치킨 한마리를 6990원에 판매하자 소비자가 줄을 이었고, 46만 마리(8월 21일 기준)를 팔아치웠다. 당당치킨을 사려는 소비자가 ‘오픈런’까지 펼치자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대열에 합류했다. 

이마트는 지난 7월 PB 상품 ‘5분치킨’을 9980원에 출시했다. 8월엔 일주일(8월 18~ 24일) 동안 프라이드 치킨을 한 마리당 59 80원에 한정 판매(6만 마리)했다. 롯데마트도 지난 8월 1만5800원에 판매하던 PB 상품 ‘한통치킨(뉴한통가아아득치킨)’을 일주일간(8월 11일~17일) 8800원(행사 카드 결제 기준)에 할인 판매했다. 

이같은 PB 치킨 경쟁은 최근 ‘피자’ ‘탕수육’으로 옮겨붙었다. 홈플러스는 PB 브랜드 ‘시그니처’의 냉동피자 4종을 2490원에 판매했다(8월 31일까지). 기존 4990원의 반값 수준이다. 이에 뒤질세라 이마트도 매장에서 제조한 ‘소세지 피자’를 5980원에 한정 판매했다.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2만원 안팎 하는 치킨·피자를 단돈 몇천원에 판매하니 “이렇게 팔아도 남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여기에 더해 롯데마트는 9월 7일까지 ‘반값 탕수육’ 판매를 시작했다. PB ‘한통가득 탕수육’의 가격은 7800원으로 시중 탕수육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대형마트의 PB 경쟁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소비자로선 저렴한 PB 상품이 반갑기만 하다. 앞서 12년 전 롯데마트가 5000원짜리 PB 상품 ‘통큰치킨’을 출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참고: 롯데마트는 20 10년 ‘통큰치킨’을 출시하고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5000원에 판매했다. 하지만 동네 치킨집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일었고, 일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는 당연히 ‘고물가’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물가 때문에 가계 운영에 위협을 느끼는 소비자로선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저렴한 PB 상품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물가 시대에 가격을 낮춘 PB 상품은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걸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PB 상품은 저렴하기만 하면 좋은 걸까. 가격을 40~50%까지 낮추는 ‘가격 파괴’ 전략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씩 살펴보자. 

홈플러스는 지난 6월 PB 상품 ‘당당치킨’을 출시해 이슈몰이에 성공했다.[사진=뉴시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PB 상품 ‘당당치킨’을 출시해 이슈몰이에 성공했다.[사진=뉴시스]

■ 문제❶ 가격 왜곡 = 무엇보다 지나치게 싼 PB 상품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작동하는 ‘가격 체계’를 왜곡할 수 있다. 사실 ‘반값 치킨’은 구매력과 자본력을 갖춘 대형마트가 아니라면 시중에 내놓기 힘들다. ‘자본의 힘’을 빌릴 수 없는 동네 치킨집이 ‘대형마트’ 수준의 가격으로 치킨을 판매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원재룟값 외에도 임대료·인건비·배달비 등 치킨집 사장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숱해서다. 

만약 치킨집이 ‘프랜차이즈’라면 가맹본부(본사)에 물류비 등 일종의 통행세도 내야 한다. 문제는 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주요 치킨 브랜드인 bhc(비에이치씨)와 BBQ(제너시스비비큐)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기준 각각 27.2%, 17.8%에 달했다. 이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으로부터 그만큼의 이익을 올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은 PB 경쟁이 옮겨간 ‘피자’도 마찬가지다. 언급했듯 홈플러스는 PB 냉동피자를 50.1%(4990원→2490원) 할인 판매했다. 기존에도 PB 제품이 일반 제조사 제품 대비 30%가량 저렴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 정도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곳은 대형마트를 제외하면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참고: 홈플러스에서 판매하는 오뚜기 냉동피자는 6990~7990원대, CJ제일제당의 고메 냉동피자는 7490~9990원대다.] 

이은희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PB 치킨이 과거와 달리 인기를 끈 덴 ‘프랜차이즈 본사가 치킨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진 게 한몫했다. 결국 프랜차이즈 본사도 물류 혁신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가격 인하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형마트가 자본의 힘으로 PB를 밀어붙이는 게 아무런 부작용을 낳지 않을 것이란 말은 아니다. PB는 마케팅 비용이나 제조비를 절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런 PB를 통해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소비자가 종속되면 가격을 끌어올릴 우려도 있다.” 

대형마트의 저렴한 PB 치킨이 인기를 끌자 프랜차이즈 본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사진=뉴시스]
대형마트의 저렴한 PB 치킨이 인기를 끌자 프랜차이즈 본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사진=뉴시스]

■문제❷ 하청업체도 남을까 = 대형마트의 ‘PB 제품’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간단하다. 유통마진과 제조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유통마진이야 대형마트가 감수할 몫이지만, 문제는 제조비용이다. PB 제품을 만드는 하청 제조사는 ‘정상적인 납품단가’를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가령, 대형마트가 ‘PB 치킨’을 반값에 론칭했다고 치자. 대형마트가 마진을 남기려면 제조비용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재룟값이 올랐다고 ‘납품단가’를 더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간 큰 하청업체’는 없다. 이 시장에서 ‘슈퍼갑’인 대형마트가 이를 용인할 리도 없다. 하청업체가 납품단가의 인상을 요구하면 PB 제조업체를 바꾸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납품가격뿐만이 아니다. PB 제조업체로부터 성과장려금, 판촉비 등을 부당하게 수취해 마진을 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형마트 측은 “그럴 리 있겠는가”라고 반론을 폈지만, ‘PB 제조업체를 향한 갑질’은 유통업계의 고질병에 가깝다. 

GS리테일이 지난 8월 PB 제조업체로부터 성과장려금·판촉비 등을 부당하게 수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건 대표적 사례다. 공정위 측은 “PB 분야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성과장려금·판촉비 등을 부당하게 수취해온 거래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감시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유통컨설팅업체 김앤커머스의 김영호 대표는 이렇게 제언했다. “일부 제조사는 대형마트에 자사 제품을 원활하게 판매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PB 상품을 생산한다. PB 할인 경쟁이 제조사의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원재룟값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제조사로선 대형마트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어 이중고에 시달릴 우려도 있다.”

어쨌거나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는 대형마트가 불러일으킨 ‘PB 할인 경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 경쟁이 지속가능할지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본의 힘’이 흔들어놓은 시장은 언제나 ‘부메랑’을 날려왔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일지 모른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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