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10곳 중 5곳 보통교부세수 과소추계
행안부의 확정통지액보다도 적게 본예산 편성
재정건전성과 효율성 해치는 엄연한 분식회계

분식회계는 명백한 불법이다. 회계를 치장하고 꾸미는 것이어서다. 당연히 분식회계를 꾀한 기업은 법적 처벌을 피하지 못한다. 그런데, 회계를 분식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곳이 있다. 뜻밖에도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더스쿠프가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을 쉽게 풀어봤다. 

지자체들의 분식회계는 공공연하게 일어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자체들의 분식회계는 공공연하게 일어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A라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기업의 장부에 기재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20%다. 사업이 꽤 잘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기업엔 이중장부가 있다. 거기에 기재된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 자본은 잠식된 상태다. 내일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가 회계장부 조작을 통해 멀쩡한 곳으로 둔갑한 거다.

이를 우리는 ‘분식회계’라 부른다. 회계를 단장하고(분粉) 치장했다(식飾)는 거다. 회계를 분식한 기업이 강력한 법적 처벌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통상 이중장부를 적고 그 때문에 수십조원의 분식회계가 일어나는데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참고: 엄밀히 말하면 분식회계라기보다는 역逆 분식회계다. 돈이 남아도는 것처럼 장부를 꾸미는 게 아니라 돈이 모자라는 것처럼 꾸미기 때문이다. 다만 이중장부를 적는다는 뜻으로 편의상 분식회계로 표현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전국 지자체 243곳의 2020년도(회계연도 기준) 예산 대비 결산의 세목별 오차액과 오차율을 분석했다. 지자체들이 세금을 잘 거둬서 잘 쓰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세입과 세출의 오차율이 적을수록 살림을 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조사를 하던 중 지자체의 회계에서 묘한 구석을 발견했다. 원래 중앙정부(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에 보통교부세를 교부하기 전(회계연도의 전년도)에 교부 예정 금액을 확정해서 통지하는 절차를 거친다. 보통교부세를 받는 지자체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자치구를 제외한 174곳이다.

이들 지자체의 2020년 본예산 총액은 169조2026억원이고, 여기에 배정된 2020년 보통교부세는 44조8965억원(26.5%)이다. 그만큼 보통교부세의 비중이 높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지자체는 보통교부세 확정통지액을 본예산에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세수추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보통교부세 확정통지액을 본예산에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예산을 짤 때 보통교부세 예산을 확정통지액보다 현저하게 낮게 책정했다. 이 때문인지 보통교부세의 예ㆍ결산 오차율은 심각했다.

174개 지자체 중 21.3%인 37곳이 확정 통지액된 보통교부세 금액을 본예산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지자체 5곳 중 1곳이 행안부의 확정통지액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예산을 짜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전남 진도군의 2020년도 본예산은 3325억원이다. 이중 보통교부세 예산은 1290억원이었는데, 결산액은 1711억원이었다. 예산보다 421억원을 더 썼다는 건데, 행안부의 보통교부세 확정통지액(1710억원)을 정확하게 예산에 반영했다면 오차가 발생하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보통교부세로 들어올 돈이 1700억원 이상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보통교부세 예산은 1290억원으로 낮춰 잡았다는 거다. 이중장부를 만들고 분식회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참고: 당초 행안부 확정통지액은 1780억원이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수가 감소해 지자체에 내려보내는 전체 보통교부세를 당초보다 4% 감액했다. 그래서 진도군의 보통교부세 확정통지액도 1780억원에서 1710억원으로 줄었다.] 

세수 과소추계하는 지자체들

그렇다면 지자체들은 왜 이런 분식회계를 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조기집행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행안부는 각 지자체의 본예산 대비 집행률을 평가한다. 예산을 적절하면서도 빠짐없이 집행하라는 취지에서다.

그런데 지자체들은 이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본예산을 낮게 책정(세입을 과소추계)하고, 본예산에 넣어야 할 사업을 추경에 끼워 넣어 집행률을 올리는 편법을 쓰고 있다. 당연히 지자체로선 예산을 목적에 맞춰 적극적으로 집행할 필요가 없다.

2020년 전국 지방재정 초과세수가 129조원(2021년 12월 나라살림연구소 분석 기준)에 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지방재정 잉여금은 65조4000억원, 순세계잉여금은 32조1000억원이었다.[※참고: 순세계잉여금은 중앙정부에 보조금 잔액을 반납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돈을 의미한다.] 

이런 지자체들의 행태가 유발하는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예산을 소극적으로 집행해 초과세수가 발생한다는 건 국민들이 그해에 받아야 할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해칠 여지도 있다. 2020년은 중앙정부가 코로나19 상황에 대응한다면서 41조7000억원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한 해다. 지방정부에는 돈이 남아돌고 중앙정부는 빚을 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2020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40조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했지만, 지방재정은 당시 남아돌고 있었다.[사진=뉴시스]
2020년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40조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했지만, 지방재정은 당시 남아돌고 있었다.[사진=뉴시스]

물론 지자체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저금통’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참고: 초과세수는 이월되거나 재정안정화기금에 적립된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겠다면서 ‘분식’이란 꼼수를 써선 안 된다.

게다가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지자체의 재원은 원칙적으로 이월해선 안 된다(회계연도 독립의 원칙). 이는 그해 주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은 그해 집행하라는 취지에서다. 지자체들의 분식회계, 다시 말해 보통교부세 확정통지액보다도 예산을 낮게 책정하는 행태를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급했듯 지자체의 분식회계는 ▲예산 편성과 집행의 효율성 ▲지방재정법상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 훼손 ▲수십조원의 잉여금 발생 ▲국가 재정건전성 저해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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