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참여자와 긱 노동자
상장 후 혼탁해진 노동시장
공유경제란 환상 뒷편 허상

# 공유경제의 등장은 혁신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들이 기업화하고, 또 상장까지 하면서 환상은 사라졌다.

# 공유경제에 박수를 보냈던 이유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유휴 자원을 제공하고, 그만큼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유경제를 모토로 창업한 회사들이 상장사가 되면서 수익에 관한 한 플랫폼 참여자는 배제됐다.

# 상장으로 돈을 끌어모은 공유경제 회사들은 직원의 자리를 이용자, 파트너, 혹은 드라이버와 같은 ‘긱 노동자’로 채웠다. 공유경제란 숭고한 플랫폼에 참여했던 이들이 기업의 직원을 대체하는 ‘불안전한 노동자’로 전락한 셈이다. 

# 우버에서 쏘카까지…, 공유경제는 그렇게 환상이 됐고, 기존 재화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노동자의 희망도 사라졌다. 더스쿠프가 공유경제의 자화상을 냉정하게 그려봤다.

공유경제란 혁신적 개념을 들고 등장했던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 뒷편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공유경제란 혁신적 개념을 들고 등장했던 플랫폼 기업들이 성장 뒷편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는 트위터라는 회사를 만든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잭 도시는 지난 8월 25일 한 트위터 이용자로부터 “트위터를 만든 의도는 무엇인가? 바라던 대로 됐나?”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나의 가장 큰 후회는 트위터가 회사가 된 데 있다. 트위터는 정부나 회사가 소유해서는 안 된다. 일종의 프로토콜 형태로 운영돼야 한다.”

국내와는 달리 미국에서 트위터는 최근 몇년 동안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언론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자 트위터를 통해서 직접 지지자들에게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에 총을 들고 침입한 이들을 “애국자”라고 칭하는 트윗을 올린 후 12시간 동안 계정 정지를 당했다. 트럼프는 이후에도 대중을 선동하는 언행을 이어갔고, 트위터는 그가 정권을 평화롭게 이양하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1월 9일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영구정지시켰다. 

잭 도시는 자신이 트럼프의 계정을 폐쇄하는 데 찬성한 것을 아마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잭 도시가 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우리(실리콘밸리)가 좌측에 치우쳐 있으며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면서 “여기에는 나와 우리 이사진, 직원들도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잭 도시는 트럼프 계정을 영구정지시킨 지난해 1월 13일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트럼프 계정 영구정지는) 자랑스럽지 않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우리는 미리 경고한 뒤 조치를 했다. 최선의 정보를 바탕으로 물리적 위협에 대해 내린 것이 영구정지 방침이었다.” 잭 도시는 “이는 트위터를 위해서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트위터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던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트위터 계정의 영구정지는 “바보 같은 결정”이었다며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면 트럼프의 계정을 복구시키겠다고 밝혔다. 물론 트위터를 인수하겠다는 약속조차 어긴 머스크가 계정을 실제로 복구시킬 계획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소셜미디어 기업인 트위터와 공유경제 서비스 기업들은 ‘자기정체성 부정’이란 공통적 모순을 안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셜미디어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와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동의와 지지를 보내고, 때로는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소통을 통해서 합의점에 이르려고 한다.

잭 도시는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자신이 누군가의 언로를 어떤 이유에서든 막은 것이 트위터의 존재 이유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자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트위터와 공유경제, 공통적 모순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기업들을 얘기하기에 앞서 트위터의 예를 길게 든 것은 본질적으로 두 기업군이 같은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어설 수 있었던 근간이 되는 땅을 부정하고도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다.

기업들이 피봇(Pivot)이란 이름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 이는 사업 아이디어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에 가까웠다. 

더구나 지금은 1980년대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처음 나왔을 때의 슬로건이 절실한 때다. 마틴 와이츠먼 하버드대 교수가 1984년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공유경제: 불황을 정복하다’였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한정하면 지금의 경기침체 전망과 당시의 불황은 경우가 다르다. 당시에는 실업률이 10%에 육박했지만 지금 미국의 고용은 어느 때보다 탄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외의 지역에서는 어떨까. 어느 나라도 탄탄한 고용과 같은 비빌 언덕을 갖추고 있지 않다. 불황 극복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가 돌아온 것이다. 공유경제의 초기 개념이 불황 극복에서 왔다면, 지금도 우리는 이를 불황 극복과 연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연결지을 수 없다’가 될 것이다. 30년 전의 공유경제는 경제 운동과 유사했고, 특히 마틴 와이츠먼의 공유경제는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노동자들과 기업이 수익을 공유하는 탄력적 임금 시스템을 운용하자는 얘기가 근간이었다. 

그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금과 같은 의미로 공유경제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쓰지 않는 물건 등을 다른 사람과 교환해서 협력적으로 소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도 공유하자는 것이다.

에잔 맥카이 몬트리얼대학 교수,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더 발전시켰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협력적 소비(Collabor ative Consumption)다. 자신이 소유한 재화의 접근권, 사용권을 타인과 공유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이 소유한 자동차를 쓰지 않는 시간에 이웃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 수익을 발생시킨다. 혹은 남는 방을 타인에게 공유해 수익을 얻는다. 그 수익은 공유한다.

집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 자동차를 빌려주는 집카 등의 기업은 처음부터 기업의 형태를 띠지는 않았다. 주차장ㆍ사무실 등 거의 대부분의 재화는 24시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공유해서 소비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대부분 정보기술(IT)로 피해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공유경제를 수식어로 택한 기업들이 상장을 택하면서 문제는 현실화됐다. 우버는 2019년 상장했고, 에어비앤비는 2020년 상장했다. 사무실 공유라는 개념을 밀던 위워크는 지난해 상장했다. ‘타다’를 통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차량공유 서비스를 제공했던 쏘카도 올해 상장했다.[※참고: 쏘카는 지난해 타다 서비스의 운영사인 VCNC의 지분 60%를 토스(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에 매각했다.] 

결국은 돈의 문제다. 자본을 어디서 확충하느냐가 해당 기업의 구조를 결정한다. 비트코인의 예를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존재 자체가 모순이 됐다. 그러나 결정적 모순을 갖고 있는데도 비트코인은 언뜻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가격의 변동성일 뿐이다.

비트코인은 백서에서 대놓고 새로운 화폐체계, 즉 중앙은행과 정부라는 감시자들이 존재할 필요가 없이도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화폐체계를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장기적으로 확실하게 오르고 있지만, 존재 이유인 화폐체계의 대체는 현시점에서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암호화폐는 한국에서도 곧 제도권으로 확실하게 들어온다. ‘차익에 과세를 하겠다’는 금융당국의 달라진 태도는 암호화폐가 제도권 내 금융상품이 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시기가 왔음을 시사한다. 

물론 미국 등에 존재하는 비트코인 원리주의자들은 모든 이가 찬성하는 현물 비트코인에 대한 상장지수펀드(ETF) 허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선물 ETF가 여럿 존재하고 있지만, 현물을 펀드에 담을 수 있게 되면 누구도 이 비싼 데다 오를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을 고작 피자 한판 사겠다며 지불수단으로 쓰지 않게 된다. 비트코인은 이 시점에서 확실하게 실패하겠지만, 비트코인을 투자 수단으로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이보다 좋은 호재는 없다. 

우버 등이 상장하면서 공유경제의 가치가 희석됐다. 2019년 우버의 IPO에 운전기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버 등이 상장하면서 공유경제의 가치가 희석됐다. 2019년 우버의 IPO에 운전기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과거의 공유경제 기업들은 이미 자신들을 부르는 이름조차 버린 지 오래다. 차량공유가 모빌리티가 됐듯, 공유경제의 개념은 이미 한물간 유행어 취급을 받는다. 이 개념의 지지자들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소프트뱅크와 같은 벤처캐피털과 각종 펀드들이다.

에어비앤비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 공유경제의 근간이 되는 재화를 소유한 이들조차 드물다. 아니 에어비앤비와 같은 종류의 플랫폼에서도 정말 자신이 사는 집을 이용하는 이들은 적다. 

과거의 공유경제 회사들은 이름을 바꾸면서,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는 이들조차 이용자나 파트너 혹은 드라이버와 같은 다양한 이름의 ‘긱 노동자’로 채웠다

‘공유’란 이름에 가려진 그늘 

최소한의 근로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이른바 긱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관한 법률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이미 만들어졌다. 국내 법인택시 운전자 수는 최근 3년 동안 4만명이나 줄어들었는데, 비슷한 기간인 2년 동안 배달업 종사자 수는 39만명에서 42만800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렇게 해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상장회사의 운명이다. 극대화된 수익은 자본을 투자한 주주들에게 간다. 다만, 여전히 이들 기업이 발표하는 자료에는 일종의 ‘과거의 낭만’이 담긴 것들도 있다. 공유경제 플랫폼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통해서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종류의 자료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에어비앤비라는 회사에서 방ㆍ집을 빌려주고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얻는 수입은 월평균 924달러였다. 중간값은 440달러다. 모빌리티 회사 리프트에서는 월평균 377달러, 우버에서는 364달러를 벌었다.

긱 노동자는 공유경제가 낳은 불편한 결과물일지 모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긱 노동자는 공유경제가 낳은 불편한 결과물일지 모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취미로 운전을 하고, 집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없으니, 결국 이들 기업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은 투잡 내지는 스리잡을 뛰어야 한다. 이들 기업은 소득이 낮으니 주된 직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타다 프리미엄 드라이버들의 평균 수입이 택시기사들보다 많다는 식의 기사들도 많이 나왔다. 더 이상 공유경제가 아닌 주식회사들이 이런 자료를 발표해서는 곤란하다. 현재의 주주를 대체해왔던 과거의 플랫폼 참여자들은 이제 이 기업들의 직원들을 대체하는 입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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