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우유 딜레마➋
값비싼 국산 우유 원인
정말 원윳값 때문일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유.’ 국산 우유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입니다. 지난 팩트체크 첫번째편(통권 511호ㆍ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윳값 논쟁)에서 살펴봤듯, 우리나라 우윳값은 전 세계 92개국 중 여섯번째에 들 만큼 비쌉니다. 그 원인으론 ‘원윳값’이 꼽힙니다. 원재료(원유) 가격이 워낙 비싸니 상품(우유) 가격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건데, 과연 사실일까요?

우리나라 원윳값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원윳값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사진=연합뉴스]

# 원가의 경제학 = 평소 맛집 탐방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 이민지(35)씨는 최근 집 근처 단골 분식집에 들렀다가 ‘웃픈’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뭘 먹을까 고민하며 메뉴판을 둘러보는데, 이런 문구가 쓰여 있는 겁니다. ‘채소 가격이 너무 올라 당분간 김밥에서 시금치가 빠집니다. 죄송합니다.’ 

한줄에 2500원. 다행히 가격은 전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부실해진 김밥을 본 민지씨가 아쉬워하자 분식집 사장님은 항변하듯 말했습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어. 김밥 한줄에 3000원이 말이 돼?”

어떻게든 김밥 가격을 유지하려는 사장님의 노력을 뒤집어서 보면, 단순한 경제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재룟값이 오르면 그 재료로 만든 완제품의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생산원가의 상승이 상품 가격의 인상을 부채질한다는 얘기입니다. 

# 2022년 우유별곡 = 이 단순한 원리를 머릿속에 넣고 보면, 올해도 어김없이 불거진 우유 가격 인상 논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논쟁의 중심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원윳값’입니다. 

우유의 원료인 원유를 만드는 낙농가, 원유를 사들여 우유ㆍ치즈 등의 유제품을 만드는 유가공업체는 1~2년에 한번씩 원윳값을 인상하냐 마느냐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입니다.

당연히 양측의 이해관계는 다릅니다. 낙농가는 “사룟값ㆍ인건비 등이 나날이 올라 전체 생산비가 늘어난 만큼 원윳값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 유가공업체는 “국산 우유가 비싼 이유는 높은 원윳값에 있다”면서 “가뜩이나 비싼 원윳값이 또 오르면 우리도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살펴본 ‘김밥 공식(생산원가 상승→상품 가격 인상)’을 우유 시장에 대입하면, 유가공업체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듭니다. 국산 우유가 유난히 비싼 이유가 오로지 원윳값 때문이냐는 겁니다.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만약 우윳값 상승을 초래하는 또다른 요인을 발견한다면, 매년 벌어지는 가격 인상 논란을 해소하는 해법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원윳값, 정말 비싼 게 맞을까요? 원윳값이 비싸서 국산 우유가 ‘금값’인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해외에 비해 국내 원윳값이 비싼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우유 가격이 비싼 원인을 원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국내외 원윳값부터 비교해볼까요? 2022년 7월 기준 우리나라의 전국 평균 원유수취가격은 리터(L)당 1084.60원입니다(낙농진흥회). 같은 시기 ▲일본(1036.18원) ▲중국(839.45원) ▲미국(777.65원) ▲유럽(712.76원)과 비교하면 최대 1.5배 더 비싼 가격입니다.

[※참고: 원윳값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원유기본가격’과 ‘원유수취가격’입니다. 원유기본가격은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의 ‘최초가’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유수취가격은 낙농가가 유가공업체에 원유를 팔 때 매겨지는 가격입니다. 우리나라 원유수취가격은 원유기본가격에 일종의 ‘인센티브’를 붙인 것입니다. 인센티브 금액은 낙농가가 생산한 원유의 성분(유지방ㆍ유단백) 및 위생(체세포ㆍ세균 수) 검사성적 결과를 반영해 결정합니다. 통상 150~190원 사이에서 정해지죠.]

원윳값 추이 살펴보니…

언뜻 원재료(원유) 가격이 높은 만큼 상품(우유) 가격도 비싼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원유수취가격의 변동 추이입니다. 원유수취가격이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살펴봐야 우유 가격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흥미롭습니다. 우선 2014~2021년까지 8년간 원유수취가격이 전년 대비 올랐던 적은 세차례(▲2019년 1081.37원 ▲2020년 1082.67원 ▲2021년 1093.85원)뿐입니다.

같은 시기(2019~2021년) 우윳값도 2734원→2743원→2766원으로 덩달아 뛰었습니다(전국 평균 소비자가격 기준ㆍ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상승폭이 크든 작든, 수치상으론 ‘원윳값이 상승할수록 우윳값도 비싸진다’는 명제가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국산 우유 가격이 비싼 건 원윳값 때문만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국산 우유 가격이 비싼 건 원윳값 때문만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입니다. 2014~2021년까지 8년 중 절반은 되레 원유수취가격이 전년 대비 하락(▲2015년 1085.97원 ▲2016년 1082.49원 ▲2017년 1075.06원)하거나 동결(2018년 1075.59원)됐습니다. 

국산 우유 가격이 점점 비싸지는 것이 전적으로 원윳값 탓이라면, 반대로 원윳값이 떨어질 경우 우유 가격도 내려가야 이치에 맞습니다. 하지만 2014~2021년 중 원유수취가격과 우윳값이 모두 하락한 시기는 2017년 단 한번뿐입니다.

원윳값 떨어져도 우윳값 올라

앞선 2014~2016년에도 원유수취가격은 떨어졌지만, 이 시기 우윳값은 2570원(2014년)→2571원(2015년)→2570원(2016년)으로 제자리걸음 했습니다. 원윳값이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우윳값이 되레 오른 적도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전국 평균 원유수취가격은 1093.85원, 우윳값은 2766원이었습니다. 고공행진하던 원유수취가격은 올해 들어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 7월 1084.6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론대로라면 원유수취가격이 떨어졌으니 우윳값도 내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올 7월 기준 전국 평균 우윳값은 2922원으로 지난해(2766원)보다 156원 더 비쌉니다. 

원윳값은 떨어지는데 우윳값은 ‘우상향’했다는 건 원윳값 외에도 우유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또다른 요인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답이 무엇인지는 다음 팩트체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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