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시행 앞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일회용컵 반납할 곳 부족한 이상한 제도
제도 공감대 형성도 정부의 몫인데…

# 법적 구속력 없이 시행됐다가 흐지부지된 전력이 있다. 이후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준비 부족을 이유로 지난 5월 시행이 유예됐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이렇게 시작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 환경부는 이 제도를 12월 시행한다. 원래 계획대로 ‘전국’이 아닌 ‘일부 지역’에 한해서지만, 첫발을 뗀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하지만 제도를 둘러싼 불만은 여전하고, 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 더스쿠프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다시 들여다본 이유다. 환경부는 지난 5월 이후 대체 무얼 보완한 걸까.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꼽았다. 하지만 추진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꼽았다. 하지만 추진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말 많고 탈 많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환경부는 시행 3주를 앞둔 지난 5월 유예했던 이 제도를 12월 2일 공식 추진한다. 다만, 전국에서 진행하겠다던 당초 계획과는 달라졌다. 전국이 아닌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시’에서만 제도를 운영한다.

환경부의 이런 결정에 “기한 없는 유예다” “이러다 제도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 등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환경부는 5월 제도 시행을 유예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왜 이렇게 표류하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알아보자. 이 제도는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추진됐다. 연간 61억개의 일회용컵이 발생하지만, 재활용률은 5%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소비자가 일회용컵에 음료를 구입할 때 자원순환보증금(300원)을 지불하고 반납할 때 되돌려 받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제도는 안착은커녕 시행조차 미뤄졌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준비가 미흡하다”는 게 이유였다.[※참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대상은 커피·음료·제과제빵·패스트푸드 등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점포 100개 이상을 운영하는 105개다. 여기에 해당하는 점포 수는 전국 3만8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가맹점주들의 불만을 정리하면 이렇다. “일회용컵을 매장에서 돌려받으려면 추가 인력이 더 필요하다. 씻지 않은 컵을 보관하려면 위생문제부터 공간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으로 인한 비용 부담(처리지원금·라벨비)까지 왜 가맹점주가 져야 하나.”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금 환경부의 정책이 도마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씩 살펴보자. 

■문제➊ 로드맵 부재 = 언급했듯 환경부는 ‘선도지역(제주·세종)’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먼저 시행한 다음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건데, 그 기간이나 전국 확대 계획은 마련하지 않았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시행을 한차례 연기했을 때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공개하고, 철저히 준비했어야 한다”면서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건 이번에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는 것으로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➋ 준비 부족 = 전문가들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선 필수 인프라인 ‘무인회수기’를 제대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가맹점주의 수거 부담을 줄이고, 소비자도 어디서나 간편하게 일회용컵을 반납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 무인회수기 개발이 완성되지 않았다. 연말까지 무인회수기 50대를 도입한다는 환경부의 계획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그렇다고 무인회수기 장기 계획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환경부는 2023년 처음으로 무인회수기 관련 예산을 책정했다. 87억원을 투입해 공공용 500대, 매장용 1000대 설치를 지원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언급했듯 설치할 수 있는 무인회수기 자체가 없다. 혹여 개발에 성공해 전국에 설치할 수 있더라도 무인회수기 1500대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소비자가 어디서나 손쉽게 반납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무인회수기를 설치한다면 가맹점주들도 반발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공용 무인회수기 500대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 않나.” 

■문제➌ 부족한 설득 = 지난 4개월간 환경부가 가맹점주들을 제대로 설득했는지도 의문이다. 일례로 환경부는 당초 가맹점주·본사가 부담하려던 비용을 모두 미반환 보증금을 활용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게 일회용컵 보증금을 지불한 컵이라는 걸 인증하는 ‘라벨비(7원)’, 재활용 수거업체에 지급하는 ‘처리지원금(표준용기 4원·비표준용기 10원)’, 보증금 300원에 해당하는 ‘카드수수료(3원)’ 등이다. 

소비자가 반납받지 않은 미반환 보증금을 활용해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건 일견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당초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시행 목적을 퇴색할 수 있어서다. 

환경부는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업체별로 제각각이던 일회용컵의 규격·재질을 통일하도록 했다. 이른바 ‘표준용기’를 도입한 거다. 그러면서 업체들의 표준용기 도입을 장려하기 위해 처리지원금을 차등했다. 표준용기의 경우 4원(이하 개당), 비표준용기의 경우 10원의 처리지원금을 내도록 했다.

문제는 이 처리지원금을 미반환 보증금으로 지원할 경우, 가맹본사로선 표준용기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페널티(처리지원금 차등)가 있든 없든 자신들이 비용을 내는 게 아니라서다. 김미화 이사장은 “제도 시행 초기, 기한을 정해두고 ‘정착금’ 명목으로 가맹점주를 지원하는 게 제도의 취지에 부합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➍ 애매한 교차반납 = 당초 환경부는 소비자가 보증금을 지불한 일회용컵을 어느 매장에서나 반납할 수 있도록(교차반납)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 소비자가 손쉽게 반납할 수 있고, 회수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2월 시행을 앞두고 “교차반납을 원칙으로 하되 시행 초기엔 동일한 브랜드의 일회용컵만 반납하도록 하겠다”며 방침을 바꿨다. 일회용컵이 일부 매장에 쏠릴 것을 우려하는 가맹점주의 목소리를 반영한 셈이다. 

문제는 시행 초기라고 명시했을 뿐 ‘언제까지’란 정확한 기간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교차반납이 불가능하고, 회수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환경부가 교차반납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준비 부족 때문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무인회수기 등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가맹점주에게 교차반납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12월 시범사업을 앞두고 재차 비판에 직면했다. 하지만 또다시 제도를 유예하거나 뒤집어선 안 된다. 그만큼 이 제도의 의미가 중요하다. 그 이유는 숱하다. 무엇보다 일회용컵 등 폐기물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서울·수도권의 경우, 2026년부터 생활폐기물 매립이 금지된다. 소각장 건립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는 건 하루라도 빨리 풀어야 할 과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신경 써야 한다. 유엔(UN) 회원국들은 지난 3월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환경부의 매끄럽지 않은 일회용컵 관련 제도 추진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오는 12월 2일 제주‧세종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된다.[사진=뉴시스]
오는 12월 2일 제주‧세종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된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을 꼽았다. 과연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 걸까.  안상준 국립안동대(사학)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정부의 환경 정책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에 앞서서 미래 세대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정책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 그게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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