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왜 연기됐나
선납금 가맹점주에게 전가된 이유 
남은 6개월간 윤 정부가 해야 할 일

# 매년 28억개씩 발생하지만, 재활용률은 5% 남짓에 불과한 ‘일회용컵’.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건 범국가적 과제가 됐다.2002년 처음 도입됐다가 2008년 유야무야됐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14년 만에 다시 부활한 이유다.

# 그런데 이 제도가 시행 20여일을 앞두고 멈춰 섰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제도 연기를 요청하자 환경부가 이를 받아들여 6개월 유예를 결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20년부터 2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치고도 제도 시행 주체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가 받아들일 만한 운영 방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맹점주들은 “왜 모든 책임과 희생을 우리가 떠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 6개월 제도 연기를 둘러싼 의견은 엇갈린다. 한편에선 “설익은 제도를 연기한 건 적절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편에선 “윤석열 정부의 환경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 누구의 잘못이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부활시킬 키가 윤 정부로 넘어온 건 사실이다. ‘남은 6개월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윤 정부의 숙제로 떠오른 셈이다. 


# 과연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도마가 아닌 궤도에 오를 수 있을까. 

가맹점주들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에 따른 모든 업무와 비용을 우리가 떠안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가맹점주들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에 따른 모든 업무와 비용을 우리가 떠안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4년 만에 부활할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 3주가량을 앞두고 6개월 연기됐다. 지난 5월 6일까지만 해도 현장 시연회를 개최하며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자신했던 환경부는 10여일 만인 20일 제도 연기를 결정했다. 환경부는 “코로나19를 견뎌온 중소상공인에게 회복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제도 시행을 6월 10일에서 12월 1일로 유예한다”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환경부에 제도 유예를 요청한 지 이틀 만의 일이었는데, 그만큼 이 제도의 시행 주체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반발이 극심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컵(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소비자가 일회용컵 음료를 구입할 때 ‘자원순환보증금(이하 보증금)’ 300원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할 때 되돌려주는 제도다. 제도 적용 대상은 100개 이상 점포를 운영하는 105개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 3만8000여개다.

사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건 2002년이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해 실효성이 떨어졌다. 업체들의 선의善意에 기댈 수밖에 없어 참여가 저조했고, 보증금을 관리할 공적 주체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이런 이유들로 일회용 보증금 제도는 시장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고, 2008년 폐지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일회용컵 배출량이 연간 28억개에 달할 만큼 불어나자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부활을 둘러싼 논의가 재개됐다. 2020년 5월 ‘자원재활용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환경부는 지난해 6월 보증금을 관리할 비영리단체(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도 설립했다. 환경부로선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던 셈이다.

런데 왜 당사자인 가맹점주들은 “가맹점주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제도다” “모든 부담을 왜 우리에게 떠넘기나”라며 반발한 걸까.

가맹점주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비용 문제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가맹점주가 실제 부담해야 할 비용은 ‘라벨비 7원(이하 컵 1개당)’ ‘처리지원금 4원(표준컵 4원·비표준컵 10원)’ ‘카드수수료 약 1원’ 등 12원이다.

[※참고: 라벨은 소비자가 보증금을 지불한 컵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컵에 붙이는 바코드 스티커다. 한국조폐공사가 특수 제작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처리지원금은 일회용컵 수거업체에 지급하는 재활용 처리비다.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로고 등을 인쇄하지 않은 ‘표준컵’의 처리지원금은 4원, 인쇄가 된 ‘비표준컵’은 10원이다. 환경부는 1차 제도 시행을 앞두고 표준컵·비표준컵에 일괄 4원을 적용해줬다.] 

가장 문제가 된 건 선납 보증금이었다. 환경부는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원활하게 환급해주기 위해 가맹점주가 라벨을 구입할 때 보증금 300원을 선납하도록 했다. 가맹점주로선 추후에 선납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순 있었지만, 당장 목돈을 들여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웠다. “라벨비(선납금)만 450만원이다” 등의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온 이유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환경부가 당초 설계대로 제도를 시행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앞서 환경부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라벨을 구입해 가맹점에 공급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면서 “그런데 시행 한달여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가맹점주가 직접 라벨을 구입하도록 허용하면서 혼란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참고: 환경부는 가맹본사가 선납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대신 여신 지원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가맹본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부담은 가맹점주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실제로 제도 시행을 앞둔 지난 5월 10일께 일부 가맹본사가 가맹점에 “라벨을 직접 구입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라벨을 부착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최대 300만원이 부과된다는 소식에 가맹점주들은 부랴부랴 라벨을 구입하기 위해 보증금 관리 전담기구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 몰려들었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지난 5월 2일부터 라벨 신청을 받았지만 1만7000여건에 이르는 실제 주문이 11~13일에 집중됐던 이유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이 미뤄진 가장 큰 책임은 주무부처인 환경부에 있다.[사진=연합뉴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이 미뤄진 가장 큰 책임은 주무부처인 환경부에 있다.[사진=연합뉴스]

가맹점주들은 예상치 못한 수백만원대 선납금에 분통을 터뜨렸고, 이는 제도 연기로 이어졌다. 환경부가 일관성 있게 제도를 추진했다면 풀 수 있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수열 소장은 “가맹점주의 초기 비용 부담을 덜어줄 방법은 충분히 모색할 수 있었다”면서 “라벨비·처리지원금(12원가량) 등에 부담을 느끼는 가맹점주가 많은 만큼 미반환 보증금을 활용해 초기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거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점도 가맹점주들의 반발을 키웠다. 일례로 소비자는 일회용컵을 구입한 매장이 아니더라도 제도 대상 매장이라면 어디서나 그 컵을 반납할 수 있다. 

하지만 주문이 밀리는 시간대나 일손이 부족한 매장의 경우 업무가 과중될 우려가 큰 데다, 반납받은 컵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한 곳도 수두룩했다. 여기에 소비자가 세척하지 않은 컵을 반납할 경우 위생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가맹점주들의 질문에 환경부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가맹점주들이 난색을 표했던 이유는 또 있다. 보증금 300원이 음료 가격과 함께 결제돼 카드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가맹점주로선 매출이 아닌 보증금에도 카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환경부가 두손을 놓고 있던 건 아니다. 카드 수수료를 결정하는 여신금융협회에 보증금을 카드로 결제할 경우엔 수수료 감면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환경부가 제도 시행 직전까지 카드 수수료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건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시행을 연기한 윤석열 정부, 그리고 환경부의 결정은 타당해 보인다. 제도에 허점이 많은 상태에서 가맹점주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관건은 남은 6개월간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느냐다.

앞서 언급한 비용 문제는 가맹본사, 가맹점주, 환경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다. 환경부가 여신금융협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만큼 정치권이 나서서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남은 6개월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닌 이유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일회용컵 수거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선 수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만 환경부의 태도는 안일하기만 하다. 일례로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일회용컵 ‘무인회수기’를 도입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혀왔지만 아직까지 무인회수기 업체를 선정하지도 못했다.[※참고: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오는 7월 무인회수기 성능평가를 거쳐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환경부 측도 “올해 중으로 무인회수기 50대를 도입해 시범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간 12월에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홍수열 소장의 지적을 들어보자. “이번 유예는 문재인 정부의  준비가 미흡했다고 탓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6개월 후에도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면 윤석열 정부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일회용컵 폐기물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민들이 가장 피부로 느끼는 환경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제도 성공을 위해 모든 주체가 머리를 맞대면 해결책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의지를 가져야 하는 건 가맹본사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보증금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선 보증금 지급 관리 시스템과 가맹점의 포스 기기를 연동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가맹본사는 환경부의 늑장 대응만 탓하면서 5월까지도 포스 개발을 미뤄왔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연기된 숨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맹본사가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언급한 라벨 등 비용 문제 역시 가맹본사가 가맹점을 지원할 방법을 얼마든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시행되면서 일회용컵에 로고 등의 인쇄가 금지된다.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인쇄가 되지 않는 ‘표준컵’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통해 가맹본사는 인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절감한 비용을 활용해 가맹점을 지원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고금숙 플라스틱 프리 활동가는 “일부 가맹본사는 라벨을 본사가 구입해 컵에 부착해서 공급하는 방법을 도입하기로 했다”면서 “가맹점이 원활하게 제도를 시행할 수 있도록 본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가맹점주도 ‘왜 내가 다 떠안아야 하냐’는 식의 감정소모를 멈추고 어떻게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도입되는 건 일회용컵이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에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이익을 얻는 자에게 재활용 책임을 부과한다는 목적이 있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판매해 이익을 얻는 가맹점주에게 재활용 책임이 있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비자 역시 그동안 너무 손쉽게 일회용컵을 쓰고 버려왔다는 점을 자각하고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안착시키려면 정부, 지자체, 기업, 소상공인,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안착시키려면 정부, 지자체, 기업, 소상공인,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홍수열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논쟁이 벌어진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서로를 비난하는 감정소모로 가선 안 된다. 정치권도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갈등을 부추길 생각을 접고 제도 안착을 위해 카드 수수료 문제 등을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환경부 역시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버리고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과연 12월엔 달라진 제도를 기대해도 될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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