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불매운동 속 숨죽인 가맹점주
가맹점 피해 보상받을 수 있나
제도 있지만 너무 큰 사각지대

허영인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이틀 만에 SPC 계열사에서 또다른 산재사고가 발생했다.[사진=뉴시스]
허영인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지 이틀 만에 SPC 계열사에서 또다른 산재사고가 발생했다.[사진=뉴시스]

# ‘포켓몬빵’ 열풍에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 외식 브랜드의 성공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SPC그룹. 쾌속열차처럼 질주하던 SPC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0월 15일 안전장치 하나 없는 소스 배합기 앞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터지면서다.

# 허영인 SPC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사과문 발표 이틀 만에 또 다른 산재 사고가 발생했다. “이쯤 되면 인재人災”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소비자 사이에선 ‘SPC 브랜드 불매운동’이 확산했다.

# 문제는 불매운동의 화살이 애꿎은 가맹점주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소비자는 “직영점만 골라서 제대로 불매하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커지는 SPC 비판 여론에 가맹점주들은 ‘피해를 보상해 달라’는 목소리조차 꺼내기 힘들다. 더 큰 부메랑을 맞을지 몰라서다. 

# 물론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가맹점의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제도는 있지만 ‘구멍’이 크다는 점이다. 허술한 제도와 못 믿을 본사, 그리고 확산하는 불매운동…. SPC 가맹점주들이 숨죽여 울고 있다.

“제빵 왕국.” 국내 대표 프랜차이즈 브랜드 ‘파리바게뜨’부터 양산빵 브랜드 ‘삼립’ ‘샤니’로 잘 알려진 SPC그룹(이하 SPC)은 말 그대로 제빵 왕국이다. 외식·식품뿐만 아니라 식자재 유통, 패키지, 물류까지 관련 계열사가 52개에 달하고, 소비자와 접점이 있는 브랜드는 40여개나 된다. 국내 외식·식품 업체 중 SPC 계열사의 제품을 납품받는 곳도 수두룩하다. 

“외국계 햄버거 가게에 가든 길거리 샌드위치를 사먹든 SPC 빵을 먹지 않곤 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도는 이유다. 그 결과, SPC는 연매출 5조원(파리크라상·비알코리아 합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허영인 SPC 회장은 “2023년까지 매출액 20조원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SPC의 청사진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10월 15일 SPC 계열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인 1조’ 근무가 원칙이지만 이 노동자는 동료가 화장실에 간 사이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인 21일 허영인 회장은 서울 양재 SPC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인 그는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여론은 싸늘했다. 20대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열악한 노동환경도 비판 대상이었지만, 회사의 부적절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사고 발생 다음날 작업장에서 곧바로 작업을 재개한 점, 사망한 노동자 장례식장에 상조 지원품으로 빵을 보낸 점 등까지 공분을 샀다. 질의응답 없이 사과문만 읽어 내려간 대국민 사과는 ‘진정성 없다’는 비판만 남겼다.

SPC는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 40여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SPC는 ‘쉐이크쉑’ ‘에그슬럿’ 등 40여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참고: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SPC 계열사(파리크라상·피비파트너즈·비알코리아·SPL 4곳 기준)에선 매년 100건 이상의 산재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연도별 산재사고 재해자 수는 2019년 114명, 2020년 125명, 2021년 147명, 2022년(9월 기준) 115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또 다른 SPC 계열사에서 산재사고가 터졌다. 10월 23일 오전 6시께 샤니 성남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노동자는 컨베이어벨트 위 불량품 상자를 빼내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어 터진 산재사고에 소비자 사이에선 SPC 계열사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SPC 브랜드를 취합한 리스트가 공유됐다. 불매운동에 참여 중인 대학생 김은나래(23)씨는 “SPC 빵을 보면 제 또래 노동자가 안타깝게 죽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먹을 수가 없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사가 변화할 때까지 불매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박하은(38)씨는 “(SPC 매장에) 두 번 갈 걸 한번 가는 식으로 불매운동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불씨가 붙은 SPC 불매운동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편의점에선 SPC 계열사 빵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급감했다. 

품귀현상을 빚던 ‘포켓몬빵’의 열풍도 차갑게 식었다. 10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 매대엔 팔리지 않은 SPC 제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점주 A씨는 “빵류 대부분이 SPC 제품인데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재고가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보다 타격이 큰 건 SPC 계열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다. SPC 계열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파리바게뜨·파스쿠찌·잠바주스(파리크라상), 빚은·따삐오·르뽀미에(SPC삼립), 던킨·배스킨라빈스(비알코리아) 등으로 가맹점 수만 6050곳(2020년 기준)에 달한다. SPC 불매운동의 여파가 고스란히 가맹점주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리바게뜨 점주 B씨는 “사고 이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불매운동이 길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후 파리바게뜨 가맹점의 매출액은 20~30%가량 감소했다. 이 때문인지 SPC도 지원 대책을 내놨다. SPC 측은 10월 24일 ‘파리바게뜨에 납품하는 완제품 빵 13종을 반품받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리바게뜨에서 판매하는 제품 수가 200여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면 가맹점주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선 피해보상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다. 제도는 있지만 사각지대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무슨 말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시점을 2018년으로 돌려봐야 한다. 

■문제❶ 자회사 사각지대 = 2018년은 프랜차이즈 업계를 흑역사로 물들인 해다. ‘호식이두마리치킨’ ‘미스터피자’ 등 외식 프랜차이즈 오너들이 그해 줄줄이 물의를 일으켜 여론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불똥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가맹점주에게 튀었다는 점이다.

국회가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가맹점주 보호에 나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회는 개정법에 ‘가맹본부나 가맹본부 임직원이 위법행위 또는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행위를 해 가맹점주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가맹점주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가맹표준계약서’에도 같은 내용을 넣었다. 

이렇게 법이 멀쩡하게 있는데 SPC 계열 가맹점주들이 불매운동에서 기인한 피해를 보상받기 힘든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이 법이 가맹본부와 가맹점 간 계약에 해당해서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파리바게뜨 가맹본부(파리크라상)가 아니라 가맹본부 자회사(SPL)의 사고였다. 법조계 사람들이 파리크라상엔 가맹점의 피해를 보상할 법적 의무가 없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문인곤 법률사무소 상원 대표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가맹본부가 아닌 자회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인 만큼 가맹점주가 피해를 보상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맹점주가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위해선 사고 이후 본사의 대처 미흡 등으로 인해 불매운동이 확산했고, 그로 인해 매출이 감소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

■문제❷ 갑을 관계의 덫 = 그렇다면 자회사나 계열사가 아닌 가맹본부에서 사건이 터졌다면 결과가 달라질까. 이 경우엔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법조계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마저도 어렵다. 가맹점주가 가맹본부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선 가맹본부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공정거래위원회에 분쟁조정(개별·집단)을 신청해야 한다. 

SPC 브랜드 불매운동이 퍼지면서 가맹점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SPC 브랜드 불매운동이 퍼지면서 가맹점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계약상 ‘을乙’인 가맹점주가 가맹본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법이 개정된 지 4년이 흘렀지만 가맹점주가 분쟁조정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은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공정위 관계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소송보다 분쟁조정이 (가맹점주에게) 좀 더 용이한 방법이다”면서도 “분쟁조정 상담을 신청한 사례는 있었지만 실제로 분쟁조정이 이뤄진 건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했다. 

가맹본부와 껄끄러운 관계를 감수하고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가맹점주의 승소를 장담하긴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오리라멘’ 사태다. 아오리라멘 일부 가맹점주는 “대표직을 맡고 있던 가수 ‘승리’가 버닝썬 게이트(2018년)에 연루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며 회사(아오리에프앤비)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2020년). “가맹계약은 전직 대표이자 사회이사인 승리가 아니라 가맹본부가 유지하는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법은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문제❸ 조직 없는 점주들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송이나 분쟁조정을 생각조차 못 하는 점주도 숱하다. ‘가맹점주협의회’가 구성돼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맹점주협의회가 없는 소규모 브랜드의 가맹점주들은 한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SPC의 경우 파리바게뜨, 던킨, 배스킨라빈스 등을 제외한 브랜드는 가맹점주협의회가 없다. SPC가 최근 가맹점주가 가장 많은 파리바게뜨를 지원하는 대책만 내놓은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가 가맹점주, 나아가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까지 전가될 수밖에 없다”면서 “SPC는 가맹점주에게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성훈 세종대(경영학) 교수도 “SPC가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법이나 계약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느냐다. SPC가 강력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동안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반복적으로 제공한 게 사실이다. 지금 위기경영을 제대로 펼치지 않는다면 브랜드가 휘청일 수 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내부고객인 노동자와 가맹점주의 신뢰를 회복할 만한 혁신책을 내놔야 한다.”

이 교수의 말처럼 소비자에겐 SPC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경험이 누적돼 있다. AI(조류독감) 사태 당시 ‘달걀 사재기’ 논란(2016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논란(2017년), 오너 3세 허희수 부사장 대마흡연 논란(2018년), 계열사 통행세 거래 논란(2020년), 던킨 공장 위생 논란(2021년) 등 나쁜 사례는 수두룩하다. SPC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얘기다.

[※참고: 2018년 허희수 부사장의 대마흡연 논란 당시 SPC 측은 “허 부사장을 경영 일선에서 영구히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랬던 허 부사장은 지난해 소리 소문 없이 경영에 복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공정위는 SPC 계열사 간 불공정거래를 적발하고 과징금 647억원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허영인 회장 등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SPC 사태로 또다시 촉발된 불매운동을 두고 누군가는 ‘냄비근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지 모른다. 하지만 불매운동으로 스러진 브랜드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남양유업이다. SPC는 몰락한 브랜드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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