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➌ 또다른 눈물
홍씨 일가가 꺾은 상생 의지
본사-대리점 노력 물거품

“오너가 경영에서 손을 뗐으면 좋겠다.” 회사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 대리점주들은 한목소리로 답했다. 직원과 대리점주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정작 오너는 곳곳에서 리스크를 만들고 있어서다. 한때 유업계 2위였던 ‘남양유업’의 이야기다. 

남양유업은 대리점과의 다양한 상생 노력을 펼쳐왔다.[사진=뉴시스]
남양유업은 대리점과의 다양한 상생 노력을 펼쳐왔다.[사진=뉴시스]

‘푸르밀 사태’에서 보듯 ‘오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오너의 철학이 기업문화나 경영에 반영되는 건 물론이다. 오너의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고,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다. 그런 결정을 뒤엎는 것도 오너의 손에 달려있다. 아이러니한 건 결정에 뒤따르는 결과는 노동자와 대리점의 몫이라는 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남양유업’이다. 

한때 서울우유(서울우유협동조합)에 이어 유업계 2위 자리를 지키던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사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남양유업이 지역 대리점에 물건을 강매한 정황이 녹취파일을 통해 퍼져나간 게 발단이 됐다. 특히 젊은 본사 영업직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폭언한 게 공개되면서 불매운동이 일파만파 확산했다.

그 결과 남양유업의 매출이 급감했고, 2014년엔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2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참고: 업계 3위였던 매일유업은 2014년 매출액 1조2026억원을 기록하면서 남양유업(1조1263억원)을 넘어섰다.] 실적만 타격을 입은 건 아니다. 이미지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리점을 향한 본사의 갑질을 막아주는 법률(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이름이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일컬어졌을 정도다(2016년 시행). 

물론 남양유업도 이후 지속적인 자정 노력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게 ‘상생회의’다. 상생회의는 대리점주들이 겪는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2013년 밀어내기 사태 직후 도입해 올해로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리점주 자녀를 위한 장학금 지원 제도도 같은 해에 도입했다. 지난 10년간 대리점주 자녀 918명에게 총 12억1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외에도 ▲장기근속 대리점에 100만원 상당의 여행 상품권 지급하는 ‘대리점주 포상 제도’ ▲자녀·손주 출산 시 50만원 상당의 육아용품 지원하는 ‘출산·양육 지원 제도’ ▲질병·상해 입은 대리점주 돕는 ‘긴급 생계자금 무이자 대출 제도’ 등도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본사의 갑질이 일정 부분 근절됐다고 평가했다. 대리점주 A씨는 “불매운동으로 인한 피해로 숱한 대리점주가 영업을 접어야 했다”면서 “하지만 이후 발주 시스템을 전면 교체해 본사의 갑질 행태가 개선된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양유업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2018~201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남양유업은 2년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상생협력 문화 구축에 힘쓴 공로(2020년 평가)를 인정받아 공정위원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참고: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는 본사와 대리점 간 공정거래와 상생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 12월 도입됐다. ▲계약의 공정성 ▲법 위반 예방 및 법 준수 노력 ▲상생협력 지원 ▲법 위반 감점 ▲대리점 만족도 등을 평가한다.] 회사 관계자는 “대리점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복지 정책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면서 “특히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상생 동반자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고꾸라진 실적이다. 2020년 무너진 매출액 1조원대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7226억원으로 전년 동기(7106억원) 대비 소폭(1.6%)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적자도 4.6%(576억원→603억원) 커졌다. 등을 돌렸던 소비자들이 좀처럼 마음을 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남양유업의 매출이 쪼그라들었다는 건 대리점의 상황이 그만큼 악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10년째 이어진 대리점과의 상생 노력이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오너 일가’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남양유업은 또 한차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에 코로나19 예방효과가 있다고 홍보했다가 식약처로부터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기만을 당한 소비자는 불매운동으로 맞섰고, 대리점은 또 역풍을 맞았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오너인 홍원식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지겠다”면서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사를 매각해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말을 바꿨다. 홍 회장이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와 체결한 주식매매계약을 철회하면서 지루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참고: 홍원식 회장은 지난해 5월 27일 오너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37만8938주(53.08%·3107억원)를 한앤컴퍼니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9월 1일 돌연 한앤컴퍼니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고, 한앤컴퍼니는 홍 회장에게 주식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오너 3세의 마약 논란까지 불거졌다. 창업주 고故 홍두영 회장의 손자 홍모씨는 지난 2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홍씨는 지난 10월 대마초를 소지하고, 이를 지인들과 함께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남양유업이 ‘마약 이슈’에 휩싸인 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홍 회장의 외손녀 황하나씨는 2020년 마약 투약 혐의로 1년 8개월형을 받아 복역하고 최근 출소했다. 

남양유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오너’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남양유업의 가장 큰 리스크는 ‘오너’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은 고울 리 없다. 남양유업의 정상화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원유原乳 가격이 치솟고 우유 시장은 쪼그라드는 등 업황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일수록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오너리스크’가 반복된다면 경영 정상화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3년간(2018~2020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공정위의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 결과도 고꾸라졌다. 공정위가 지난 8월 발표한 ‘2021년 대리점 공정거래협약 평가 결과’에서 남양유업은 종전과 같은 ‘최우수’가 아닌 ‘양호’ 등급을 받았다.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회사에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 대리점주 B씨는 “하루빨리 매각 절차가 마무리돼 경영이 정상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리점주 C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속내를 털어놨다. “문제를 일으키는 오너가 경영에서 물러나는 게 맞지 않겠나.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10년째 이어지는 남양유업 대리점 수난사, 언제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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