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보: 8년 전처럼 전조는 또 잊혔다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사진=연합뉴스]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사진=연합뉴스]

참사 전날, 그 골목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고 직전까진 11건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이중 ‘압사’를 언급한 신고가 6건이나 됐다. 신고자의 비명이 담긴 전화도 있었다. 참사를 예방할 전조들이었다. 하지만 그 좁은 골목에서 156명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공권력은 힘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8년 전인 2014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고등학생 304명과 함께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침몰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기 두달 전엔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2014년 2월)’가 있었다. 10명의 사망자와 20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끔찍한 사고였다.

전년 여름엔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졌다. 극기훈련을 한다는 이유로 5명의 고등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안타까운 죽음이 몇 번이나 되풀이됐는데도 세상은 더 큰 참사를 막아내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이런 참사엔 공통적인 전조前兆 현상이 있었다는 거다. 세월호는 적재 가능 화물 최대치를 초과해 화물을 적재한 채 출항했다.

해병대캠프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학생들이 묵은 숙소엔 수용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가 들어갔다. 더구나 그곳은 허가조차 받지 않은 곳이었다. 지붕에 쌓인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은 경주리조트 체육관은 구조도면과 구조계산서를 확인하지 않았다. 감리자는 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감리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22년, 우리 세상에선 또 세월호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참사가 벌어졌다. 핼러윈 축제가 한창이던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였다. 소방당국이 밝힌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사상자(11월 2일 기준)는 총 328명이다. 156명이 숨지고 172명이 다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8년 전처럼 ‘전조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채 맞은 핼러윈이었다. ‘노 마스크’에 들뜬 젊은층이 이태원동에 대거 운집할 게 뻔했다. 이미 금요일인 10월 28일부터 이태원 골목에 수만명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튿날엔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시나 용산구청은 사전대책을 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건 당일 현장 관리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특히 용산구는 지난 10월 27일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 때문인지 사람이 몰릴 것을 대비해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을 무정차 통과시켰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골목이 이태원역 1번 출구를 곧바로 마주하는 통로라는 이유에서다.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이 가로폭이 3.2m에 불과한 사고 골목으로 몰리면서 사태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지하철역의 무정차를 결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난 10월 8일 3년 만에 열린 ‘여의도 불꽃축제’ 때 지하철은 여의나루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이 역의 승강장과 주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여부는 해당 역장이 판단해 결정한다.

무정차 결정을 둘러싼 이슈는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경찰은 사고 발생 전 서울교통공사에 이태원역 무정차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참사 1시간 뒤에야 무정차 통과가 가능한지 경찰의 문의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하루 전 골목을 가득 메운 인파보다 더 강력한 전조도 있었다. 압사 위험을 알리는 시민들의 112 신고였다. 최초 신고는 사고가 발생하기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께 접수됐다. “인파가 너무 많아 압사당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에도 10건의 신고가 더 접수됐다.

사고 직전 마지막 신고(10시 11분)에선 신고자의 비명이 담길 만큼 긴박했다. 신고자가 ‘압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신고한 것만 해도 11건 중 6건이나 됐다. 

신고가 다수 접수됐을 때, 경찰이 공권력을 동원해 골목을 통제했다면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단 얘기다. 11건의 신고 중 경찰의 현장 출동이 4차례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나머지는 ‘현장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는 식의 응대에 그쳤다. 

경찰이 4차례 출동해서 어떤 조치를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전말을 보면 사고가 발생하기 전엔 경찰이 보행로를 통제하거나 질서 유지를 유도한 조치는 없었다. 

여기에 종결 보고를 허술하게 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112 신고가 들어오면 그 내용을 관할 경찰서 상황실에 전자시스템으로 하달한다.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은 종결 내용을 문서로 기재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이태원동에 출동한 경찰은 “사고 일대 인파를 통제하고 종결했다”고 적었다. 

결과적으론 거짓말이 됐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선 경찰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경찰청과 지자체를 관할하고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상황을 보고 받은 것도 늦었다. 

행안부는 밤 10시 48분 상황을 전달받았는데, 119에 최초 사고 신고(10시 15분)가 접수된 지 33분이나 흐른 뒤였다. 사고 당일 시민의 첫 112 신고시각인 오후 6시 34분부터 따져보면 4시간이나 늦었다. 핼러윈 행사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이 안전대책을 더욱 철저히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번 참사의 피해자가 국가에 보상이나 배상을 물을 수 있느냐다. 언급했듯 참사 발생 4시간여 전부터 압사 사고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는 신고가 11차례나 있었다. 그런데도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국가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동주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지민)는 “사고 발생 전에 여러 차례 신고가 있었고,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면 직무유기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 “국가에 사고 발생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참고: 국가배상법에 따라 국가나 지자체의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ㆍ지자체 공무원 등이 고의ㆍ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손해를 입힌 경우 ▲도로ㆍ하천 외 공공 영조물의 관리에 하자가 있어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한다.] 

박혜원 변호사(법률사무소 가득)도 “앞서 수차례 신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CCTV나 지하철 인원 등을 분석했을 때 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경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112 종합상황실을 통해 여러 건의 신고가 접수된 이후 상부에 보고가 됐는지, 보고가 됐다면 경찰 조직 차원에서 어떤 대처가 이뤄졌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제5조)에 따르면 경찰은 극도의 혼잡이나 그 밖의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청도 참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양홍석 변호사는 “지자체 역시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못했더라도 참사 당일 현장 점검을 진행했는지, 아울러 그 이후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혜원 변호사는 “핼러윈 축제가 주최자 없는 행사라고 하더라도 관할 지자체의 관리ㆍ감독 책임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지자체 역시 직무와 관련해 주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는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제4조)은 “국가ㆍ지자체는 재난ㆍ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련 판례도 있다.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사고 당시, 사망자 유가족이 서울시와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산사태 발생 당시 즉시 산사태 경보를 발생하고, 주민들을 대피시킬 의무가 있었는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면서 서초구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전말을 종합하면, 이태원 참사는 당국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하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주요 관련 인사는 면피성 해명과 책임론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했다.

2013~2014년에 벌어진 해병대캠프 사고, 경주리조트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 때도 그랬다. 책임져야 할 이는 언제나 책임론을 회피했다. 비슷한 참사가 비슷한 흐름으로 반복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