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안전 사각지대➊
러시아워 지하철 승객 몰려도
승차정원·안전관리 법규 부재

최근 잇따라 발생한 철도 안전사고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연일 ‘안전’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3일엔 철도운영사 대표들을 소집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안전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죠. 이날 원 장관은 출퇴근시간 지하철 승객 과밀로 인한 사고위험을 지적하고,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철도운영사들의 매뉴얼만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출근길 지하철 인원 과밀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사진=뉴시스]
출근길 지하철 인원 과밀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사진=뉴시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유희정(34)씨는 요즘 들어 달라진 지하철역 풍경에 ‘묘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6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는데, 환승 플랫폼으로 가는 길목에 보안요원들이 안전봉을 들고 서 있더라. 사당역 방향으로 가는 2호선 환승 플랫폼은 항상 붐비니까 스크린도어 앞에 서 있는 보안요원을 종종 보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역내 곳곳에 보안요원을 배치한 건 처음 본다. 최근 불의의 참사가 터지면서 나라에서도 이제야 지하철 안전에 관심을 갖나 싶어 다행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다.”


희정씨는 “보안요원이 늘어난 다음부터는 열차 안도 덜 붐비고 통행 흐름도 좋아진 것 같다”면서 “이렇게 통행 관리를 할 수 있었으면서 지금까지 왜 미어터지는 출근길 지하철을 방치해뒀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습니다. 

일견 합리적인 의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도시철도법에는 ‘승객의 안전 확보와 편의 증진을 위해 도시철도운영자가 역사 및 도시철도차량에 보안요원을 배치할 수 있다’는 조항(도시철도법 제41조의2)이 있습니다. 그간 피크시간대 ‘지옥철’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시민들의 안전을 제고할 수 있는 법이 버젓이 있었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했던 것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심각한 건 앞서 소개한 ‘보안요원의 배치ㆍ운영’에 관한 조항이 2021년 1월 신설한 규정이라는 사실입니다. 도시철도법이 처음 만들어진 시점이 1979년(당시 명칭 ‘지하철도건설촉진법’)이란 점을 감안하면, 시민들은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겁니다. 

이런 안일함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해외 사례를 보실까요? 2018년 영국의 런던교통관리청(Transport for LondonㆍTFL)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월~2018년 5월 2년여간 출근 시간대(오전 8시~8시 59분) 런던 지하철 객차에서 실신(faint)한 승객은 825명에 달했습니다. 

2017~2018년 사이 런던 전역을 괴롭힌 무더위가 사고를 늘리는 데 한몫하긴 했지만, 믹 캐시 당시 영국 철도해운노조 사무총장은 과도한 인파가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지하철을 비롯한 철도 서비스의 과도한 수용 인원이 매일같이 수천명의 승객에게 악몽을 선사한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 더 많은 사람이 기절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Overcrowding on Tube and rail services is a daily nightmare for thousands of passengers and its no surprise that more people are passing out).”

사고를 집계한 2016~2018년 당시 런던 지하철의 연평균 이용객 수는 13억명이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서울의 연평균 지하철 이용객 수는 무려 28억명에 달했고요.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선 더 많은 실신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런던 지하철과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안전법이 마련돼 있을까요? 지하철 승차 인원을 통제할 수 있는 ‘과밀방지법’이 있기는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나라 법에는 지하철 탑승 정원이나 인원 통제에 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도교통 운영의 근간이 되는 「도시철도법」과 「철도안전법」, 여기에 뒤따른 각종 시행령과 규칙에도 객차 내 인원 과밀을 조정하거나 해소할 만한 규정은 없습니다. 

범위를 넓혀 ▲철도건설 ▲철도시설 유지관리 ▲대도시권 광역교통 건설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 ▲국가통합교통체계에 관한 법률을 살펴봐도 지하철 탑승 인원을 제한하거나 과밀 기준을 명시한 조항은 찾을 수 없습니다. 

승차정원 관련 법 ‘전무’  

이뿐만이 아닙니다. 철도교통시설의 건설ㆍ운영을 관장하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관련 행정규칙(훈령ㆍ예규ㆍ고시) 30여개에도 지하철 승차 인원을 제한한 내용은 없습니다.

지하철 1~9호선을 운행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부 지침과 세칙에서도 승객 수나 인원 과밀과 관련한 조항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참고: 행정규칙은 일반 국민이 아닌 행정공무원에게 적용하는 규정입니다. 일선 공무원들이 업무 처리를 할 때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철도건설사업을 직접 이행하는 각 지자체에도 관련 조례나 내규가 있는지 문의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 도시철도국, 부산시청 도시철도과 관계자 모두 “지자체의 자치법규나 (기관의) 내규에 지하철 탑승 인원에 관한 별도의 규정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나라엔 지하철 승차정원이나 인원 과밀에 관한 법규정이 전무합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까진 일종의 서비스 차원에서 역사 내 혼잡도 관리 기준을 두기는 했지만, 객차 내 인원 수에 있어선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최근의 안전사고를 계기로 객차 내 혼잡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관련 규정의 마련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철도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월 3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사진=연합뉴스]
철도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월 3일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사진=연합뉴스]

그럼 우리나라 국토부가 참조할 만한 해외 사례는 없을까요? 놀랍게도 지하철 승객 과밀로 사고가 발생했던 영국은 물론 지하철 이용객이 많은 국가로 꼽히는 일본, 프랑스에도 탑승객 수를 통제할 수 있는 정식 법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학계 및 연구기관에 재직 중인 다수의 철도교통전문가들은 “전세계적으로 지하철 승차 인원을 법으로 제한하거나 승객 과밀을 통제하는 법을 제정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전세계 지하철 이용객은 매일 러시아워의 지옥에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걸까요? 다음 시간에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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