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의장 법적 지위
이제는 논의해야 하는 까닭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있음에도 법적으로 ‘총수 없는 대기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있음에도 법적으로 ‘총수 없는 대기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 2022년 3분기, 쿠팡이 드디어 영업이익 ‘플러스’를 기록했다. 그간 조 단위 규모의 손실을 냈음에도 “의도된 적자여서 괜찮다”던 쿠팡의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다만, 쿠팡의 턴어라운드가 이 회사의 그림자까지 덮을 만큼 박수 받을 일인지는 의문이다. 가령, 강력한 의결권을 통해 쿠팡을 지배하고 있는 김범석 의장은 법적으로 ‘규제 바깥’에 놓여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총수(동일인)’로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을 지정해서다.

# 이 때문인지 쿠팡에 큰 문제가 발생할 땐 김 의장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큰불이 나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을 때도 쿠팡은 김 의장 대신 강한승 쿠팡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 최근 이슈에 휘말린 다른 대기업과 총수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의 서비스가 먹통에 빠졌을 때,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은 국정감사 증인석에 서야 했다. 카카오와 견줘 비교적 빠르게 서비스를 복구한 네이버의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그 옆에 섰다. 두 창업주는 의장직을 사퇴했지만, 책임론에선 자유롭지 않았다. 공정위가 지정한 각 기업의 총수였기 때문이다. SPC 사태가 터졌을 땐 이 회사의 총수 허영인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 흑자 경영에 성공한 쿠팡은 앞으로도 ‘로켓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독점 논란, 노동자 착취 논란 등 쿠팡을 둘러싼 고질병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이 김 의장의 법적 지위 논란을 해소할 골든타임일 지 모른다. 더스쿠프가 ‘총수는 있는데 총수가 없는’ 쿠팡의 실적 잔치와 그 속에 숨은 그림자를 취재한 이유다.

쿠팡이 드디어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7742만 달러(약 1037억원‧분기 평균 환율 1340.5원 기준)에 달했다. 2014년 로켓배송 출범 후 8년 만에 첫 분기 흑자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14억9396만 달러)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 3분기 만에 흑역사를 지우는 데 성공했다. 쿠팡은 적자폭이 늘어날 때도 “계획된 적자였다”라면서 투자에만 집중해 규모의 경제를 꾀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전략이 열매를 맺었다.

숙원이었던 ‘흑자 경영’을 달성한 쿠팡은 이제 명실상부한 유통공룡이자 빅테크 기업으로 떠올랐다. 연간 매출로는 이미 롯데쇼핑(15조원)과 이마트(16조원·별도 기준)를 앞질렀으니, 국내 이커머스를 넘어 유통시장의 패권까지 거머쥘 기회를 잡았다.

쿠팡 미국 법인의 의결권을 보유한 김범석 의장의 영향력은 크다.[사진=연합뉴스]
쿠팡 미국 법인의 의결권을 보유한 김범석 의장의 영향력은 크다.[사진=연합뉴스]

‘쿠팡이 실적 반전에 성공하자, 창업주 김범석 이사회 의장의 리더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동화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해 물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구축한 게 쿠팡의 턴어라운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결정하고 주도한 게 김 의장이어서다.

김 의장은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 “머신러닝 기술 기반의 수요 예측으로 신선식품 재고 손실을 지난해와 비교해 50% 줄였다”면서 “지난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기술, 풀필먼트 인프라, 라스트마일 물류 등을 통합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참고: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는 물류전문업체가 배송, 보관, 포장, 배송, 재고관리, 교환·환불 서비스 등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를 말한다. 유통 분야에서 ‘라스트 마일(Last mile)’은 고객과의 마지막 접점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김 의장의 존재가 쿠팡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쿠팡의 미션은 고객으로부터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란 말을 듣는 거다. 실제로 국민 생활 전반에 미치는 쿠팡의 영향력은 이미 상당하고, 쿠팡이 지금처럼 성장일로를 걷는다면 그 힘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역설적으로 이는 독점 논란, 노동자 논란 등 쿠팡의 고질병이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쿠팡엔 ‘총수’가 없다. 쿠팡의 고질병을 해소하고 책임 질 만한 사람이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바로 이것이 수년 전부터 제기돼온 ‘미국 시민권자’ 김범석 의장의 ‘법적 지위’ 논란이다.

조금 복잡한 문제를 쉽게 풀어보자. 한국엔 특정 기업과 총수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한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다.

이 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자산총액 5조원이 넘는 기업을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해당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을 뽑는다. 이런 규제를 통해 대기업과 총수를 중심으로 진행될 여지가 많은 ‘일감 몰아주기’ ‘상호출자’ ‘채무보증’ 등을 제한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다. 이 법으론 쿠팡을 온전히 규제할 수 없다. 공정위가 지난해 쿠팡을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에 지정했는데도 그렇다. 공정위가 쿠팡의 총수로 사람이 아닌 ‘쿠팡 법인’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지배력으로 따져보면 쿠팡의 총수는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의장은 쿠팡 미국 법인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과반을 혼자서 행사할 수 있다. 김 의장의 지분율은 9.9%에 불과하지만, 의결권은 76.2%에 이른다.

쿠팡이 상장할 때 그에게 강력한 차등의결권(1주에 29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김 의장이 쿠팡 한국 법인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왔는데도 영향력은 그대로다. 쿠팡 미국 법인이 쿠팡 한국 법인을 100% 지배하는 구조여서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김 의장 대신 법인을 총수로 지정했다. 이러면서 쿠팡과 김 의장은 숱한 규제의 덫에서 빠져나왔다. 총수는 4촌 이내 친족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의 지분 소유현황 등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쿠팡은 쿠팡의 계열사 지분 현황만 보여주면 된다. 오너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포함한 각종 사익편취 규제에서도 자유롭다. 계열사가 각종 공시·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총수가 함께 고발될 수도 있는데, 이런 위협을 느낄 필요도 없다.

가뜩이나 플랫폼 독점과 노동 이슈, 검색 알고리즘 문제 등 민감한 이슈로 공정위와 자주 대립하는 쿠팡이다. 이런 까다로운 규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호재다. 그럼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공정위는 “김 의장이 미국 법인을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설명을 이었다.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온 점, 현행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는 데 미비한 부분이 있는 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현재로선 계열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쉽게 설명하면 김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인 데다 관례가 그랬다는 거다.

가령 에쓰오일의 모기업은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이고, 한국GM의 최대주주는 미국 GM이다. 지배력을 기준으로 총수를 정해야 한다면 에쓰오일의 동일인은 사우디 왕실, 한국GM의 총수는 미국 GM 본사의 메리 바라 회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두 회사의 총수로 법인을 지정했다.

언뜻 설득력이 있는 조치인 듯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쿠팡을 에쓰오일·한국GM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쿠팡의 지배구조가 두 회사와 현격히 달라서다. 에쓰오일과 한국지엠의 모기업인 아람코와 미국 GM엔 ‘쿠팡 김범석’과 같은 압도적 지배자가 없다. 또한 아람코와 GM이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 두 회사는 한국에만 주력 사업장이 있는 게 아니다.

반면 김 의장은 한국에서 창업했고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서만 돈을 벌어들인다. 언급했듯 기업의 주요 경영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의결권도 에쓰오일과 아람코와 달리 김 의장이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공정위는 총수를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 또는 법인’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 금지’ 조항을 따로 둔 게 아니다.

곧장 ‘역차별’이란 비판이 공정위에 빗발쳤다. 김 의장이 미국 시민권자란 이유로 쿠팡만 규제당국 감시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불공평하다는 거다. 쿠팡과 극적으로 비교되는 기업도 있다. 함께 ‘빅테크’로 분류되는 네이버다. 이 회사는 2017년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는데, 창업주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총수로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당시 네이버는 “이해진 GIO의 네이버 지분율이 4% 안팎에 불과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로 보기 어렵다”면서 지정 해제를 요구했지만 공정위는 결정을 뒤집지 않았다. 이듬해 이 GIO가 지분율을 3%대로 끌어내렸는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GIO가 네이버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한 거다. 공정위의 판단은 올해까지 이어졌다.

IT 업계 관계자는 “지분율이 낮은 이해진 GIO에겐 총수 지정을 밀어붙였으면서, 김범석 의장은 법적인 이유나 뚜렷한 명분도 없이 예외를 두는 건 형평성이 어긋나는 일”이라면서 “실제로 이해진 GIO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년 연속 국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김범석 의장은 한국 경영과 관련된 일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는 지난 10월 터진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 이후에 더 큰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사태에 휘말린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과 이해진 GIO는 의장직 사퇴로 국내 경영에 공식적으로 손을 뗐는데도 국감 증인석에 섰다. 각 기업을 대표하는 총수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반면 김범석 쿠팡 의장은 단 한번도 국회 증인석에 선 적이 없다. 쿠팡은 지난해만 해도 물류센터 화재, 코로나19 집단감염, 개인정보 유출 등 숱한 이슈에 휘말렸지만 강한승 쿠팡 대표가 불려갔다.

국회 관계자는 “김 의장이 쿠팡 한국 법인의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증인으로 신청할 명분이 없어졌다”면서 “그룹을 대표하는 총수로 지정되지 않는 이상 김 의장을 국감에 부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기업집단은 국내 회사에만 해당하지만, 그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총수는 내국인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면서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국적을 불문하고 동일인 지정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물론 풀어야 할 과제는 있는데, 그건 통상 문제다. 공정위는 당초 지난 8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이 내용을 넣기로 했지만, 발표 당일 총수 지정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통상 문제 탓이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실무회의에서 외국인 개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문제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 뒤 산업통상자원부도 미국과 통상 마찰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공정위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하지만 통상 마찰이 일어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곤 주장이 엇갈린다. 미국의 투자자를 제3국의 투자자와 차별하지 않기로 정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 대우’ 규정에 어긋날 수 있다는 의견이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한동안 총수로 지정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김범석 쿠팡 의장은 한동안 총수로 지정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공정위 사정에 정통한 국회 관계자는 “미국이 통상 마찰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게 아니었는데도 제도 개선을 미룬 건 공정위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응한 것”이라면서 “지난해 IT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역시 통상 마찰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껏 아무런 외교 문제 없이 법을 시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외국인 오너의 총수 지정 문제는 복잡한 이슈로 얽혀 있다. 하지만 외국 국적의 오너 2~3세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 김 의장 같은 한국계 외국인 오너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빨리 풀수록 좋다.

더구나 올 3분기 흑자를 기록한 쿠팡은 이제 로켓처럼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김 의장을 둘러싼 총수 지위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가 지금보다 더 꼬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면서 스텝을 늦추고 있다. 이러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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