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애프터마켓 두가지 함의
정비·전기차 충전·폐배터리 산업 주목
위기와 기회 동시에 불러온 시장 혁신

내연차에 초점을 맞춘 애프터마켓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그곳 종사자는 향후 어디로 갈 것인가. 전기차 시대가 자동차 애프터마켓에 던지는 두가지 질문이다. 13년 후인 2035년 유럽에서 ‘내연기관차’가 퇴출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두 질문은 서둘러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 10월 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EU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은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사진=연합뉴스]

지난 10월 27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은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만한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자동차 제조업체의 탄소 배출 규제 법안’을 시행하기로 최종 확정한 거다.

이로써 EU의 27개 회원국은 2030년까지 신차의 탄소 배출량을 2021년의 55% 수준으로 줄이고, 2035년부터는 시장에서 내연기관차를 퇴출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졌다.  EU의 강력한 규제에 반발하던 유럽의 완성차기업들도 수순처럼 ‘친환경’에 초점을 맞춰 경영전략을 바꾸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진 기술을 보유한 메르세데스-벤츠는 2023년 출시하는 신형 ‘E클래스’ 세단을 끝으로 내연기관을 장착한 신차의 생산을 중단한다. 이후 출시하는 모든 차종은 전기차 전용 기술과 부품을 적용해 제조ㆍ생산할 예정이다. 

유럽 최대의 완성차기업인 폭스바겐은 ‘한발 앞선’ 전기차 전환을 경영목표로 제시했다. 토마스 셰퍼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2033년부터는 유럽 공장에서 전기차만 생산할 것”이라며 EU의 규제 시점(2035년)보다 앞당겨 내연기관차를 퇴출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이대로라면 적어도 10년 안에는 지구상에서 내연기관차가 완전히 사라질 거다. 굴지의 글로벌 완성차기업들도 미국의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메이커’로 탈바꿈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판매는 물론 정비ㆍ충전ㆍ폐배터리 등의 애프터마켓(After Market) 분야에도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달라지는 판매 서비스 = 자동차 판매 영역에선 이미 과거와 다른 방식의 문화가 새롭게 등장했다. 테슬라를 기점으로 제너럴모터스(GM), BMW, 메르세데스-벤츠까지 자신들의 차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거다.

차를 사려면 직접 오프라인 대리점에 방문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소비자들은 이제 ‘내집 앞’ 시승 예약부터 구매계약까지 온라인 스토어에서 해결할 수 있다.  온라인 스토어는 소비자들의 신차 구입 절차를 간소화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도 메리트가 있다.

기존의 오프라인 판매 방식에선 완성차 제조사→대리점ㆍ딜러사→딜러 순으로 유통망을 구성하면서 단계별로 유통마진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차종이라도 개별 딜러들이 지원하는 프로모션 혜택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온라인 스토어에선 완성차 제조사가 대리점이나 딜러를 거치지 않고 차를 직접 판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제조사는 과도한 유통마진은 줄이고 일률적인 프로모션 이벤트를 적용해 소비자들에게 더욱 공정한 가격과 공평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판매 방식의 변화가 결과적으론 소비자들의 편익을 제고한 셈이다. 

■애프터마켓❶ 정비업 = 물론 산업의 혁신이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분야도 있다. 바로 자동차 정비업이다.

지금까지 자동차 정비업계의 수요는 내연기관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과 변속기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배터리와 모터를 탑재한 전기차에선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지면서 정비업계의 수요도 7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 

더욱이 전기차에 필요한 전체 부품의 수는 내연기관차보다 30~40%가량 적다.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부품도 제동ㆍ조향(방향 조정) 장치 정도가 전부다. 기존 정비업체가 전기차를 수리하려면 관련 기술을 새롭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 11월 기준 국내엔 5만개의 정비업체가 있는데, 이중 전기차를 정비할 수 있는 곳은 300개 남짓에 불과하다. 국내 정비연합회에서 정부에 전기차 기술 교육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기존의 기술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전기차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미래차 맞춤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2027년까지 1053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요한 건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고등교육기관뿐만 아니라 기술직업훈련학교 학생들, 정비업계 현직자는 물론 실직자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관점에서 인재 육성 계획을 설계해야 한다. 

■애프터마켓❷ 파생 산업 = 앞선 정비업의 사례는 두가지 함의를 갖는다. 첫째, 자동차산업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노동시장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둘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내 자동차업계가 대규모 실업 위기에 놓일 수도, 새로운 기회의 문 앞에 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기존의 인력도 무용해질 수 있는 판국에 기회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개화開花가 가져온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무궁무진하다. 전기차 충전 산업, 배터리 리사이클링(recyclingㆍ재활용) 산업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전기차 충전소 시장과 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은 향후 각각 65조원(2027년), 87조원(2025년)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한국과학기술정보원연구원ㆍSNE 리서치) 

자동차 시장의 혁신은 역설적으로 정비업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동차 시장의 혁신은 역설적으로 정비업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유업계와 배터리업계에선 이들 시장의 잠재력에 이미 베팅하고 있다. 국내 4대 정유사 중 하나인 SK에너지는 지난 2월 서울시 금천구 소재 주유소를 전기차 충전 시설을 갖춘 ‘종합에너지스테이션’으로 재탄생시켰다. 

국내 배터리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부터 미국, 중국 등 해외기업과 손잡고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기업이 뛰어든 두 시장에 다른 민간사업자들까지 가세하면 경쟁을 통해 합리적인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애프터마켓은 부품ㆍ제철 등 자동차 제조와 직결된 비포마켓(Before Market)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시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애프터마켓은 글로벌 기업들의 미래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시장에선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다. 규칙을 만드는 건 시장의 주도권자다. 그렇다면 애프터마켓의 게임체인저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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