섈 위 아트 | 김혜리 개인展 : PLOT 플롯 리뷰

김혜리_분-합문_156×54㎝_ 종이에 먹, 문고리_2020.[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김혜리_분-합문_156×54㎝_ 종이에 먹, 문고리_2020.[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대학 졸업 전시회를 다녀보면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이론인 ‘집단무의식(선천적 무의식의 심층)’이라는 개념이 떠오를 만큼 비슷한 소재들이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기린, 화분, 해체된 공간 등이 대표적이다. 비교적 최근 도입된 미디어아트의 졸업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파도, 도형이 중첩되는 이미지들이 주로 보인다. 

하지만 석사 이상의 졸업전은 분위기가 다르다. 석사 과정은 프로 작가로 활동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밟기 때문에 그들의 졸업전엔 학부 졸업전과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흐른다. 당연히 박사졸업전은 더 심오하다. 박사학위 청구전엔 학계에서 유명한 평론가, 갤러리 관계자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박사학위 청구전을 자주 간다. 여기서 미래 아트계를 주도할 열정적인 작가를 만난 경험이 있어서다.

갤러리 그림손에서 11월 15일까지 진행한 김혜리 작가의 개인전 ‘PLOT 플롯’은 이런 유형의 전시회였다. 이 개인전은 김 작가의 박사학위 청구전이었다. 그는 성신여대에 출강하고 있다. 강사생활을 하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립하고 논문과 작품을 준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 작가는 먹, 목재, 영상 등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개념과 다양한 이미지를 결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행한 작업인 듯하다. 전시 제목을 ‘플롯’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플롯의 사전적 의미는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 스토리다. 쉽게 말해, 여러 요소를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 서술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이런 플롯의 개념을 작품에 넣었다. 방법은 대략 이러한 듯하다.

자유롭고 다각적인 연상 기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을 서술한다. 그 의식의 흐름은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의 심상心象으로 나타난다. 심상이란 이전에 경험한 것이 마음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상을 뜻한다. 백두산을 머리에 그리면 ‘천지’가 떠오르는 식이다. 이게 백두산의 심상이다.

김혜리_곤丨_40×40×30㎝_항아리, 고서, 영상_2022.[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김혜리_곤丨_40×40×30㎝_항아리, 고서, 영상_2022.[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다시 말해 김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에서 무의식적이고 경험적인 ‘상’을 표출하고 있다는 거다. 이를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비시각적 심리서술’,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하면 ‘인지상태’와 ‘몰인지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김 작가는 이를 수렴적 사고와 발산적 사고를 통한 의식의 흐름으로 본 것 같다. 안으로 말려드는(수렴) 의식이 경험적으로 표출되는(발산) 심상이나 현상과 연결되면서 또 다른 관점과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거다. 

이런 김 작가의 스타일은 종이 위에 먹으로 작업한 작품을 보면 엿볼 수가 있다. 일반적인 동양화의 방식은 작품이 담긴 화선지를 액자에 넣는 것이다. 액자가 너무 고전적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은 유리를 떼고 프레임만 사용한다. 이쯤 되면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들이다.

김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정적인 동양화를 조형적인 구조물 위에 얹어 동적인 성격을 불어넣는다. 이는 기존 흐름을 뛰어넘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 ‘곤’이라는 작품은 더 혁신적이다. 일반적인 도자의 형태이지만, 내부를 보면 책을 쌓아서 항아리를 만들었다. 무언가를 담기 위해 비워놓기 마련인 항아리의 통념을 깨는 작품이다. 

김혜리_I3-6FO_90×850㎝_종이에 먹, 목제_2020.[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김혜리_I3-6FO_90×850㎝_종이에 먹, 목제_2020.[사진=갤러리 그림손 제공]

‘분-합문’이란 작품은 한옥의 문이 갖고 있는 형상에 변화를 줬다. 한옥의 문은 나무틀과 화선지 창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분합문은 대청과 방 사이, 또는 대청 앞쪽에 다는 네쪽 문을 말한다. 여름에는 둘씩 접어서 올려 트인 공간을 만들어주는 문이다. 

김 작가는 이런 분합문에 먹그림을 그려넣었다. 그래서 문을 내릴 때만 또다른 세계가 드러난다. 일반적인 흐름과 인식을 뒤집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과 개념을 살펴보길 원하는 김 작가의 성향이 십분 묻어나는 작품이다. 

깊어가는 초겨울에 냉철하게 사물을 바라보며 사람과 삶에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김 작가의 작품을 추천한다. 오프라인 전시회는 마무리됐지만, 갤러리 그림손의 웹사이트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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