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음식 가격 모조리 올라
식용유 등 원재룟값 인상 여파
원재룟값 탓에 장사 접는 상인 많아

앱을 켠다. 지도를 본다. 현재 내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이콘을 누른다. 정보를 확인한다. 지도의 위치를 찾아간다. 목표물 획득. 게임이 아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붕세권’ 앱이다. 붕어빵 파는 곳을 찾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아서 등장한 앱인데, 그 배경에 고물가와 그로 인해 신음하는 노점 상인들의 눈물과 한탄이 있다.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많으면 서민들은 지갑을 닫기 마련이다. [사진=뉴시스]
경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많으면 서민들은 지갑을 닫기 마련이다. [사진=뉴시스]

매서운 추위가 옷자락을 파고들던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랑구의 한 전통시장 앞에 섰다. 맛있는 먹거리가 많기로 소문난 이곳 우림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한 분식집 앞에 어묵과 튀김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기자도 그 틈에 끼어들어 어묵 한 개를 집어 베어 물고, 뜨거운 국물까지 한 모금 들이켰다. 한입, 두입, 세입 만에 사라진 어묵. 아쉬운 마음에 꼬치 한개를 더 집어 들었다. 방금 튀겨낸 노릇한 오징어튀김에 눈길이 갔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어묵값을 지불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한 청년이 노점으로 다가왔다.

“어묵 얼마예요?” “튀김은요?” 메뉴 가격 하나하나 묻던 청년은 지갑을 열어 5000원짜리 한장을 만지작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떡볶이 1인분을 주문했다. 이 분식집은 지난 2년간 두 차례 가격을 올렸다.

2020년엔 떡볶이 1인분 가격이 3000원, 튀김과 어묵은 두개에 1500원이었다. 그러다 2021년엔 떡볶이 1인분을 3500원, 튀김과 어묵은 한 개당 1000원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어 올해엔 떡볶이를 4000원, 튀김을 1500원(고구마튀김은 1000원)으로 인상했다. 너무나 많이 오른 가격 탓에 ‘지갑 가벼운 그 청년의 오늘 첫 끼니가 4000원짜리 떡볶이 1인분은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상상이 머리를 맴돌았다. 

버틸 재간 없는 시간 

절기 탓인지 마음 탓인지 유난히 날카롭게 느껴진 칼바람을 피해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붕어빵과 국화빵, 호떡을 파는 노점이 나왔다. 이날 기자의 목적은 붕어빵을 사는 것이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붕어빵은 ‘잠시 휴업’ 상태였다. 대신 호떡을 사기로 하고 국화빵에 팥소를 떼어 넣던 상인에게 “호떡 한개 먹고 가도 되죠?”라고 말을 건넸다. 

호떡을 먹으며 시선을 돌리자 낯선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호떡 한개 1500원, 붕어빵 두개 1000원, 국화빵 4개 1000원.’ “물가가 많이 올랐죠?”라고 묻자 국화빵을 뒤집던 상인은 당연할 걸 입 아프게 왜 물어보느냐는 듯 “그렇죠”라며 짧게 되받아치고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호떡 한개 가격으로 낯설기만 한 1500원을 지불하고 나니, 지난 주말에 들렀던 동원시장(중랑구) 호떡집이 떠올랐다.

주말에만 반짝 장사를 하는 이 호떡집은 중랑구 호떡 맛집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가게 앞은 늘 장사진이 펼쳐지곤 한다. 이곳도 최근 가격을 올렸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찹쌀 쑥호떡 한개에 1000원, 어묵 한개에 500원이었는데 여름 비수기를 지나고 다시 문을 열면서 각각 1300원, 700원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호떡집 앞에서 만났던 40대 직장인 김재오씨는 “가격이 올랐지만 다른 물가 생각하면 아직까진 착한 가격이라 먹을 만하다”면서도 “몇년째 단골이지만 여기서 가격이 더 오르면 예전만큼 자주 올 거 같진 않다”라고 말했다.

길거리간식 가격이 오른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대학생들이 많은 신촌역 일대 노점에도 고물가의 그림자가 엄습했다. 중랑구에서 서대문구로 이동한 기자는 신촌에서 떡볶이와 어묵을 파는 오명숙(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원재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10월 메뉴 가격을 올렸다. 3500원이던 떡볶이는 4000원으로, 700원 하던 어묵은 1000원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오씨는 “한여름 장사를 쉬고 나왔더니 원재료 가격이 몽땅 올라 있더라”면서 “이렇게 힘든 건 장사하면서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웬만큼 팔아서는 방법이 없다. 장사 안돼서 나가떨어진 사람도 많다. 예전엔 원재료 가격이 일년에 한번만 올라도 난리였는데, 올해는 네댓번 올랐다. 그전에는 식자재공급업체가 가격 인상되기 한달 전쯤 ‘오를 것’이라고 예고라도 해줬는데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올랐어요’ 하면 끝이다. 요즘 좀 잠잠해서 ‘이젠 오를 만큼 다 올랐나 보다’하고 웃고 말았다.”

실제로 길거리간식의 주요 원재료인 식용유, 밀가루, 설탕 가격이 몽땅 다 올랐다. 그중에서도 식용유 가격이 무섭게 치솟았다. 지난해 3만4000원이던 식용유 한통(18L) 가격은 올해 5만8000원까지 올랐다. 1년 새 70.6%나 오른 거다. 붕어빵에 들어가는 팥 가격도 뛰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7일 기준 수입 붉은팥 40㎏의 평균 도매가격은 27만600원이다. 2020년 22만6200원에서 2021년 25만9400원으로 오른 데 이어 올해 또 한번 상승세를 타며 2년 새 19.6% 올랐다. 

벼랑 끝에 놓인 이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가 부담을 느낀 노점 상인들이 가격을 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오씨 말처럼 상인들 중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장사를 접는 경우도 있다.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예전처럼 붕어빵을 파는 노점을 찾기 어려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참고: 붕세권은 붕어빵을 파는 가게 인근에 자리 잡은 주거지역 또는 권역을 뜻한다. 겨울철 인기 있는 길거리간식인 붕어빵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만들어진 신조어다. 관련 앱까지 출시됐다.]

전문가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보호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을 보호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뉴시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경기가 침체돼 있으면 열악한 위치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경기를 회복시킬 만한 해결방안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정부에선 그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벼랑 끝에 놓인 그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걸까. 전현배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돈 푸는 정책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며 말을 이었다. “내년 경기가 더 어려워질 거란 전망이 많으면 서민들은 당연히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인다. 그러면 자영업자들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이 오락가락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서민들이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걸 너무 모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던 한 노점 상인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추운 하루였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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