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시장 걷다
자고 나면 값 오르는 고물가 시대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힘겨워

# 명절을 앞둔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족과 친지가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해놔야 한푼이라도 아낄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번 한가위는 예년보다 더 차갑다. 

# 김칫값은 천정부지로 오른 지 오래다. 쪽파김치 1근(400g)을 7000원에 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5000원이나 더 올랐다. 1단 가격이 7980원까지 오른 시금치는 귀한 몸이 돼 시장에서 찾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아직 오를 일이 더 남았다고 한다. 

# 가파르게 상승한 물가 탓에 올해는 크고 둥근 ‘한가위’가 ‘한寒가위’로 얼굴을 바꾼 듯하다. 도대체 물가는 얼마나 오른 것이며, 언제까지 오를까. 기자가 시장 속으로 들어가봤다.

고물가에선 시장 상인들의 시름도 깊다.[사진=뉴시스]
고물가에선 시장 상인들의 시름도 깊다.[사진=뉴시스]

고물가 행렬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2분기 전국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 상승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기준으로 1998년(8.2%) 이후 24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도 7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47(2015 =100)로 전월(120.10) 대비 0.3%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해선 9.2% 상승했다. 선행지표의 오름세가 지속하고 있으니, 소비자물가는 앞으로도 상승세를 탈 가능성이 높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는 명절을 준비해야 하는 서민들은 물론 대목을 기다리던 상인들에게도 반갑지 않다. 서민들은 팍팍한 살림살이 안에서 최대한 아껴가며 명절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상인들은 꽁꽁 닫힌 지갑이 열리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가는 대체 얼마나 오른 걸까. 기자는 평소 자주 다니는 전통시장을 찾아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동원전통시장(이하 동원시장)은 6년 차 중랑구민이자 주부인 기자가 하루 두번 오가는 길이다. 출근길엔 잠에서 덜 깬 시장과 인사하고, 퇴근길에 사람들과 정겹게 어깨를 부딪히며 시장을 걷는다.

고물가는 서민은 물론 상인에게도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고물가는 서민은 물론 상인에게도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동원시장은 1970년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전국의 많은 전통시장이 나랏돈으로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곳은 2018년까지 무등록시장이었던 탓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2018년 상점가상인회에 등록하며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되면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동원시장 규모는 5300㎡(약 1600평)에 이른다. 7호선 면목역 1번 출구와 맞닿은 입구부터 동원사거리 쪽으로 600m가량 길게 늘어서 있다. 기자는 지난 8월 29일 오후,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 동원시장으로 향했다. 

면목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살짝 돌면 동원시장이 펼쳐진다. 언제나처럼 손님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시장 입구 오른쪽에 있는 만둣집이다. 왼쪽의 안경원은 터줏대감처럼 그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지만 오른쪽의 만둣집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기자가 결혼 후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만 해도 김밥·떡볶이 등을 파는 분식집이었는데, 몇번의 변화 끝에 지금의 만둣집이 들어섰다. 이 가게의 사장은 종종 밖에서 떡갈비를 굽곤 하는데, 그 두툼한 자태가 손님을 홀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오늘은 계획한 쇼핑리스트가 있으니 눈 질끈 감고 그곳을 지나쳤다.

만둣집에서 몇걸음 더 걸으면 ‘가성비 좋은 빵’으로 동네 주민들에게 사랑받던 빵집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불과 두어달 전까지 그랬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빵집이 빠진 그 자리엔 젊은 상인이 하는 반찬가게가 들어섰다. 최근 동원시장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반찬가게다. 한두달 새 반찬가게만 서너개가 늘었다. 어느 곳이든 언제나 손님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기자의 시어머니는 올 추석엔 김치를 담그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일을 쉬는 날이면 종종 김치를 담가 나눠 주시던 시어머니는 언젠가부터 동네 반찬가게에서 김치를 조금씩 사다 드신다. “재료비에, 김치 담그느라 쓰는 시간과 정성까지 생각하면 그냥 사 먹는 게 낫더라.”

반찬가게가 이렇게 많아진 게 그런 이유 아닐까 생각하며 걷다 보니 기자의 단골 가게인 두붓집이 나왔다. 기자는 이곳에서 종종 두부를 산다. 한여름엔 시원한 콩국물을 사고, 묵사발과 육수를 사서 친정 가는 길에 들고 가기도 한다. 

고물가 행렬에 묵사발 가격도 1년 사이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상인 조성철(가명)씨는 “그 안에 들어가는 채솟값이 올랐는데 별수 있느냐”며 “최근에 도토리묵 가격도 500원 올렸다”고 말했다. “그래도 두부는 아직 2500원이에요. 이것도 언제 오를지 몰라요. 오르면 오르는 대로 드셔야지 어쩌겠어요.” 그렇다. 비싸더라도 먹고 싶으면 비싼 대로 먹어야 한다. 조씨의 말처럼 방법이 없다.

동원시장 안엔 슈퍼마켓(진흥마켓)도 있다. 기자는 간단하게 장을 볼 때 이곳을 주로 이용한다. 시장에 찾는 물건이 없을 때도 온다. 규모가 제법 커서인지 채소와 정육은 물론 온갖 공산품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다. 어지간한 건 다 있어서 기자에게 진흥마켓은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마켓을 지나면 호떡집이 나온다. 한여름에는 문을 닫는 날이 더 많지만 날이 선선해지면 줄을 서서 먹는 동원시장의 명물 중 하나다. 그 맞은편엔 김치맛집이 있다. 이곳 역시 새로 담근 김치가 매대에 올라오면 한순간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늘 만든 김치를 거의 다 팔았다는 김근수(가명)씨 뒤로 가격표가 슬쩍 보였다. 채솟값이 오르니 가격표 숫자도 자꾸 바뀐다. 쪽파김치 1근(400g)을 7000원에 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날 가격표엔 1만2000원이 적혀 있었다. 그새 5000원이 오른 셈이다. 순간 한숨이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자도 장을 보기로 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과 된장찌개다. 조금 전 두붓집에서 두부를 샀으니, 이제 삼겹살과 상추만 사면 된다. 아차, 대파도 떨어졌다. 편식이 심해진 아이가 ‘시금치는 먹겠다’고 해 시금치도 꼭 사야 했다.

먼저 정육점으로 갔다. 항상 “맛있는 고기예요”라는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정육점 주인 이정형(가명)씨는 기자에게 삼겹살 한근을 썰어줬다. 오늘도 그는 “맛있을 겁니다”란 말을 빼놓지 않았다.

대목을 앞두고 손님이 좀 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손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년만 못하다”고 말했다. “물가가 워낙 비싸니 소비를 줄이는 거 같아요. 손님들이 고기 먹고 힘이라도 내셔야 할 텐데….” 혼잣말인 듯 나지막이 들리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채소가게로 향했다.

상추 먼저 고른 뒤 시금치를 찾는데, 아무리 봐도 없었다. “시금치 있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청과상회 상인 오정임(가명)씨는 “비싸서 우리도 못 갖다 놔요”라고 답했다.

“시금치 한단에 7000~8000원 하는데 누가 사겠어요. 그래서 갖다 놓지를 못해요. 채소 장사 오래 했지만 이렇게 비싼 건 또 처음이네요.” 그때 기자 옆을 지나던 한 시민이 대파 가격을 묻고는 “3000원”이란 말에 이내 발길을 돌렸다. “이거 봐요. 비싸면 손님도 힘들지만, 파는 우리도 힘들어요.”
 

상인 오씨의 말처럼 채솟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시금치 가격은 1년 새 30%가량 올랐다. 지난해(8월 31일 기준) 1㎏ 평균 2만2691원이던 시금치가 현재 3만418원에 판매되고 있다. 

어디 시금치뿐일까. 배추, 오이, 열무 할 것 없이 모조리 비싸졌다. 배추는 1포기 평균 가격이 7032원으로 전년(4660원) 대비 50.9% 올랐고, 오이(다다기 10개)는 44.3%, 열무(1㎏)는 69.0% 치솟았다. 호박(51.3%), 상추(42.4%), 고추(46.9%), 대파(43.6%)도 큰 폭으로 뛰었다.

고물가 시대가 힘든 건 옆 떡집도 마찬가지다. “손님들이 오시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얼마나 올랐어요?’예요. 안 올랐다고, 지난해하고 똑같다고 해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더라고요.” 남영숙(가명)씨는 “그래도 대목인데, 장사를 안 할 순 없지 않냐”며 갓 쪄낸 떡을 고루 펼쳐놓았다.

인근 도넛 가게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꽈배기 도넛까지 산 기자는 마지막으로 시금치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더 둘러봤지만 시금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 나에겐 최후의 보루가 있었지.’ 기자는 발길을 돌려 진흥마켓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곳 채소코너에도 시금치는 없었다. 매대 정리를 하던 종업원에서 물었다. “시금치는 어디 있나요?”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쌈채소 코너. 신선한 냉기를 희뿌옇게 내뿜고 있는 그곳에서 쌈채소들과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시금치를 만났다. ‘국내산 초특가세일’이란 문구에 홀린 듯 시금치 1단을 집어 들려는 찰나, 7980원이라는 가격표가 눈에 들어왔다.

시금치 한단에 7980원이라니, 짧은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루 전 대형마트에 갔을 때 6980원도 비싸다고 사지 않았는데 차라리 그걸 살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살짝 들었다. 하지만 이걸 계기로 아이의 편식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날 기자가 동원시장에서 구입한 건 시금치 1단(7980원), 대파 1단(3000원), 삼겹살 1근(600g·1만6500원), 두부 1모(2500원), 상추(3000원), 도넛 3개(2000원), 그리고 반찬 3팩(5000원)이다. 몇 가지 안 산 거 같은데, 3만9980원을 썼다. 고물가가 또 한번 실감 났다.

이날 동원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말처럼 물가가 오르면 사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라 파는 사람도 힘들다. 비싼 값에 물건을 떼 와야 하고, 얇아진 손님들의 지갑도 어떻게든 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최근엔 대형마트 의무휴일제 이슈까지 불거지며 그들의 한숨을 깊게 만들었다. 
 

지난 7월, 대통령실은 국민 제안 중 톱10를 추려 이중 3가지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며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그중 하나였고,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어뷰징(조작) 논란 탓에 ‘없던 일’이 됐지만 그걸 바라본 상인들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조영태 동원시장상인회장은 “우리 상인회도 난리가 났었다”며 “느닷없이 의무휴업제 폐지 얘기가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동원시장에서 식당을 하고 있지만, 원재료 가격이 안 오른 게 없어요. 다 올랐어요. 그런데 또 오른대요. 상인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의무휴업제 폐지 얘기까지 나오니, 난리도 아니죠. 왜 손대려고 하는 걸까요?”

저기 저 멀리서 서민에게도, 상인에게도 시린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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