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한국 화백과 콜라보
K-컬처 위상 높아진 결과물
명품족 겨냥한 고도의 마케팅
순수미술 성장세 노린 전략의 일환

최근 루이비통이 한국의 박서보 화백과 협업한 제품을 출시했다.[사진=루이비통 제공]
최근 루이비통이 한국의 박서보 화백과 협업한 제품을 출시했다.[사진=루이비통 제공]

루이비통이 처음으로 한국 미술계와 손을 잡았습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K-문화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올해 유난히 뜨거웠던 한국 명품시장과 미술시장의 수혜를 입겠다는 루이비통 특유의 전략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 미술이 명품을 만났다.” 지난 10월 20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한국 단색화의 거장’인 박서보 화백과 함께 디자인한 가방 ‘아티카퓌신’을 선보였습니다. 루이비통이 국내 작가와 협업해 제품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소식에 국내 패션업계와 순수미술계가 들썩였습니다. 단지 최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루이비통은 당시 총 6명의 아티스트와도 협업했는데, 그중 아시아인은 박 화백이 유일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술업계의 한 관계자는 “순수예술 작가들과 활발하게 콜라보하는 루이비통이 서양 미술계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이나 14억명의 인구를 거느린 중국이 아닌 한국의 아티스트를 선택한 건 의미가 깊다”면서 “그만큼 한국 예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럼 루이비통이 한국 미술을 ‘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자는 ‘한류’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BTS(엔터테인먼트)·기생충(영화)·오징어게임(드라마) 등 한국이 전세계 무대에서 통하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으니까요.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에 루이비통이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박서보 화백과의 콜라보로 이어졌다고 해도 틀린 분석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이유’로만 루이비통이 콜라보를 진행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루이비통은 이보다 훨씬 더 전략적인 셈법을 통해 콜라보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이 콜라보의 두 키워드이기도 한 ‘명품’과 ‘미술’ 분야에서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어서입니다.

■전략적 키워드➊ 명품의 유혹 = 무엇보다 국내 명품 소비시장이 무시하지 못할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명품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4.6% 증가한 141억6500만 달러(18조4074억원)로 커졌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마켓이 됐죠. 성장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2025년까지 한국 명품 소비시장이 연평균 6.7%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명품을 향한 소비층의 충성도가 높다는 점도 우리나라의 특징입니다. 일례로, 샤넬은 지난 11월 핸드백·주얼리·의류 등의 가격을 최대 12%까지 인상하는 등 올해에만 가격을 네번이나 올렸습니다. 루이비통도 2월(8~26%)과 10월(3%)에 가격을 두차례 인상했죠. 그럼에도 샤넬과 루이비통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경쟁사들도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은 지난 4월 30일 이화여대에서 패션쇼를 개최했습니다. 디올이 국내에서 패션쇼를 연 건 2007년 이후 15년 만입니다.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구찌가 서울 한남동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차린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루이비통이 한국 작가와 협업한 건 한국 소비층의 수요를 충실히 좇은 선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략적 키워드➋ 미술의 성장 = 이번엔 루이비통이 한국 화백과 콜라보를 택한 두번째 이유를 살펴보시죠. 일단 순수미술과의 협업으로 얻는 기대효과를 계산했을 겁니다. 정재윤 세종대(패션디자인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최근 럭셔리 브랜드가 현대미술을 적용함으로써 브랜드로서의 희소성과 독점적인 특성을 높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루이비통의 콜라보도 브랜드를 예술화하는 전략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루이비통이 한국미술의 예술성만을 높게 평가한 건 아닙니다.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은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세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3242억원으로 전년(1139억원) 대비 184.6%나 성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9월엔 세계 3대 아트페어(미술품 거래행사) 중 하나인 ‘프리즈(FRI EZE)’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4일간의 작품 거래액이 6000억원(업계 추정치)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죠. 온라인에서도 열기가 뜨겁습니다. 미술품 중개앱인 아트시(Artsy)의 카린 카람 부사장은 지난 7월 “한국의 앱 다운로드 횟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렇듯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한국 미술 시장을 루이비통이 모를 리 없습니다. 한국 미술가와 콜라보를 한 루이비통의 선택엔 브랜드 명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 미술 시장을 이용하는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루이비통의 이번 콜라보엔 한국 미술 시장의 파급력을 이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루이비통의 이번 콜라보엔 한국 미술 시장의 파급력을 이용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5년 전, 루이비통은 패션브랜드 슈프림(Supreme)과 콜라보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콧대 높은 프랑스 명품 기업이 스케이트보더용 옷으로 출발한 스트리트 브랜드와 손을 잡은 것에 많은 이가 의구심을 표했지만, 둘의 협업은 단순한 화제몰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흥행까지 이어졌죠. 상극인 슈프림과 손을 잡았을 때 어떤 이득이 있을지 루이비통이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린 덕분에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로부터 또 5년이 흐른 지금, 루이비통은 한국 미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명품시장과 미술시장이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이번 콜라보는 끝이 아닌 시작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루이비통의 행보에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김선곤 미술평론가는 “루이비통은 순수 예술작가들과 협업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도 우려의 일단을 내비쳤습니다. “과거엔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미술시장이 경제력과 K-문화를 등에 업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다만, 명품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흐름을 좇는 소비산업이다. 루이비통의 움직임을 단지 K-문화의 위상과 연결지어선 곤란하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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