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미혼 1인가구와 퇴사 경제학
은퇴 후 발생하는 ‘외로움 비용’
개인 아닌 사회 몫의 경제 문제

해외에선 코로나19가 변곡점이었지만, 국내에선 그 이전부터 1인가구가 급증하면서 퇴사가 흔한 일이 됐다. 그러면서 혼자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의 범주도 넓어졌다. 이 때문에 영국, 호주 등의 국가에선 ‘외로움의 비용’까지 사회적 비용으로 계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희화화’하기 바쁘다.

퇴사를 선택하는 1인가구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은 지금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많은 미국 직장인이 퇴사를 선택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에만 453만명이 직장을 관뒀다. 전월인 10월엔 436만명이 퇴사했는데, 이보다도 8.9%나 늘어났다. 해당 통계가 작성된 2000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지난해 내내 2%대를 기록하던 월간 퇴직률도 3.0%로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퇴사 붐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던 현상이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후 조기 은퇴하는 파이어족(FIREㆍ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란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벌써 5년 전이다. 지금의 퇴사 붐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급을 주는 곳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있다.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재택근무를 하던 근로자들이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명령에 반발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중엔 자신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1인가구도 적지 않다. 많은 1인가구들이 자의와 타의가 겹친 상황에서 대거 퇴사를 감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비미혼非未婚으로 인한 1인가구가 퇴사를 선택할 때 좀 더 자유로울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기혼과 비미혼의 직업관을 이야기해보자. 


직업은 생계의 수단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무대기도 하다. 기혼 직장인은 사회와 가정에서의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비혼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신을 표현하는 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리빙스턴은 「노 모어 워크」라는 저서에서 “일은 중요하다. 적어도 1650년 이래 우리는 품성이 일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믿어왔다”고 말한다. 

1650년은 종교개혁이 완성된 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질적인 두가지 충동으로 사랑과 일을 꼽았다. 프로이트는 강박증의 하나로 ‘일’을 꼽기도 했다. 분쟁해결 전문가인 도나 힉스의 저서 「일터의 품격」도 일을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취급한다. 도나 힉스는 직장인들의 면담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며 이렇게 묻는다. 

“직원들은 왜 모두 그토록 불행하다고 느낀 걸까?” 그는 직원들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그 이유로 꼽는다. 한 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는 게 업무의 일부분이에요.”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받는 건 비혼족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다. 직장생활에서 인내를 필요로 하는 구간은 반드시 존재하지만, 인내할 필요가 없는 구간에서도 인내를 요구하는 조직이 많아서다. 비혼족은 퇴사에서 좀 더 자유롭다. 인내심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발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퇴사’를 선택한 1인가구가 돈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느냐다. 미혼未婚이든 비혼非婚이든 생계를 걱정하는 건 기혼旣婚과 마찬가지여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인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132만원이고, 2인가구의 지출은 월 204만원이었다. 70만원 이상이 가구원 수와 상관 없이 기본적으로 나가는 지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인가구든 2인가구든 한달에 132만원을 벌지 못하면 생활이 불가능하다. 

통계적으로 보면,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1인가구는 충분히 생활비 충당이 가능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다소 벅찰 수 있다. 통계청의 지난해 도시근로자 소득 자료를 보면 1인가구의 월 소득 평균은 299만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직장을 그만둔 이들은 ‘외로움의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AgeingㆍNIA)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서 외로움으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매년 70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자영업자들 위주로 400만명 이상의 회원을 지닌 생활협동조합(Co-ops)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매년 25억 파운드(약 30억 달러)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외로움에도 비용이 든다면  


외로움의 비용 중 상당 부분은 의료 비용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더 자세한 명세서가 있다. 영국 생협은 ▲외로움으로 인한 병가 관련 의료비용으로 2000만 파운드 ▲외로움 때문에 병을 앓는 이들을 간호하느라 일을 하지 못하는 비용이 2억2000만 파운드 ▲여기서 기인하는 생산성 하락으로 6억6500만 파운드 ▲이와 관련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직원들과 관련된 간접 비용으로 16억2000만 파운드가 든다고 설명한다.

이런 외로움의 비용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외로움은 성별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통계상 남성 1인가구들의 삶을 좀 더 심하게 파고든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최근 펴낸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남녀 간 차이가 나는 것은 1인가구 생활의 고충이다. 

오히려 혼자 사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보다 외로움을 더 큰 문제로 느낀다. 30대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외로움’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답했다. 20대 남성들조차 경제문제에 이어 외로움을 2위로 꼽았다. 여성은 조금 달랐다. 20대 이후 전 연령층에서 경제문제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외로움은 30대에서만 2위를 기록했고 20대는 3위로, 40대는 4위, 50대는 3위로 꼽았다. 

하지만 국내에선 미국이나 영국처럼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보고 경제적 비용을 산출하려는 시도가 아직 없다. 영국이 지난해 외로움 담당 부처를 지정하고 장관을 겸직 형태로 임명했는데, 국내 언론은 이를 가십 형태로 다루면서 희화화했다. 이는 외로움이 경제적 문제라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현재 1인가구 중에서 앞으로도 10년 이상 혼자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보고서는 “최근 사회 분위기도 혼자 사는 삶을 개인의 선택이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감지된다”고 주장했다. 결혼에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결혼 계획이 없는 1인가구가 직장생활 등 생업과 취미활동, 여행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외로움은 남녀 모두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다. 혼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에 만족감을 표하는 경우가 60%였다. 경제적 만족도가 가장 높은 40대 남성 1인 가구의 생활 만족도는 오히려 20대 여성들보다도 낮았다. 

보고서는 “1인가구는 현재 ‘외로움’ 해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성들은 다른 사람을 찾아보면서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성들은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외로움 전담 부처 만든 영국 


호주에서도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놓고 해결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10월 ‘영국 외로움 담당 부처가 호주의 사회적인 고립을 막을 방법을 제안했다’는 기사에서 “호주 빅토리아주 주의회 의장이 외로움은 심각한 문제이며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어 주 정부 차원에서 영국처럼 외로움 담당 부처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비미혼에 따른 1인가구가 늘고, 그중 퇴사를 선택하는 이들도 증가세를 띠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뭘 해야 할까. 

한정연 더스쿠프 칼럼니스트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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