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호텔 한정판 케이크 경쟁
초고가에도 예약 경쟁 치열
케이크 25만원 시대의 자화상

“금가루 뿌린 케이크, 없어서 못 산다.” 특급 호텔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정판 케이크를 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비싼 가격이다. 조선팰리스와 서울신라호텔은 모두 25만원짜리 한정판 케이크를 선보였다. ‘헉’소리 나는 가격이지만 인기는 뜨겁다. 케이크 25만원 시대, 어떻게 봐야 할까.

특급 호텔들이 20만원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보이며 경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특급 호텔들이 20만원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보이며 경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는 12월은 연중 케이크가 가장 많이 팔리는 대목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파티가 많은 데다, 요즘은 고생한 나를 위한 ‘작은 사치’로 케이크를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아서다. 이런 수요를 잡기 위해 최근 특급 호텔들이 ‘통 큰’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통상 10만원 안팎이던 호텔 베이커리 케이크 가격을 25만원까지 끌어올렸다. 

이른바 ‘케이크 20만원 시대’를 처음 연 건 신세계 계열의 ‘조선팰리스(조선호텔앤리조트)’다. 이 호텔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화이트 트리 스페셜’ 케이크를 25만원에 한정 판매했는데, 초고가인데도 이슈몰이에 성공하면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참고: 조선팰리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화이트 트리 스페셜 케이크’를 25만원에 선보였다.] 

올해엔 서울신라호텔(호텔신라)이 가세했다. 지난 1일 크리스마스 케이크 3종을 출시한 호텔신라는 이중 ‘얼루어링 윈터’ 케이크의 가격을 조선팰리스와 같은 25만원으로 책정했다. 이 케이크는 ‘겨울에 피어나는 꽃’을 콘셉트로 최고급 초콜릿을 사용하고, 금박 장식을 더한 게 특징이다. 제아무리 ‘금가루’를 뿌렸다지만,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신라호텔이 지난해 선보인 크리스마스 케이크 2종 가격은 각각 7만7000원(위싱리스)·8만8000원(화이트 홀리데이)이었다. 

20만원이 훌쩍 넘는 케이크는 흥미를 유발함과 동시에 비판도 받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하기 위해 신라호텔에 수십~수백통의 전화를 걸었다”는 후기가 숱하게 올라오고 있지만 다른 의견도 많다. 직장인 김은영(28)씨는 “아무리 특급 호텔의 브랜드 가치가 있고, 한정판 케이크라지만 지나치게 비싸다”고 꼬집었다. 

호텔 측은 ‘원재료 가격 상승’과 ‘섬세한 작업 공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높은 연차의 셰프도 쉽게 작업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함을 요한다”면서 “이 때문에 수량이 제한적이어서 가격을 높게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호텔 관계자 역시 “파티셰의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한 제품”이라면서 “최근 초콜릿·우유 등 원재료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호텔 측의 설명처럼 원재료 가격이 급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초고가 케이크가 등장한 진짜 이유는 호텔들의 ‘프리미엄 경쟁’에 있다는 분석도 많다. 케이크 하나라도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럽게 팔려는 호텔들의 경쟁이 배경이 됐다는 거다. 값비싼 케이크에 ‘거품’이 껴 있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초고가 케이크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건 조선팰리스와 신라호텔이 각각 강남·북을 대표하는 특급 호텔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5만원 케이크의 등장 뒤에는 몇가지 함의가 숨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 베블런 효과 = 한국 사회를 비꼴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다. 주로 사치재 구매에서 나타나는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는 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으로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샤넬·루이비통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가 유독 한국에서 가격을 자주 인상하는 이유도 ‘베블런 효과’에 빠진 국내 소비자가 많아서다.

일례로 샤넬은 올해에만 4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11월엔 모든 제품 가격을 13.0% 올렸다. 이로써 샤넬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클래식 플립백(스몰 기준)’의 국내 가격은 1160만원에서 1237만원이 됐다. 이같은 베블런 효과가 케이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사치재는 비쌀수록 잘 팔린다. 가격이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을 때 그만큼 더 남들과 차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먹지 못하는 초고가 케이크일수록 더 인기가 높아지고 이슈가 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애간장 마케팅 = 호텔 업계의 ‘줄 세우기’ 마케팅도 초고가 케이크의 인기를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일례로 신라호텔은 케이크 예약을 전화나 방문을 통해서만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수십통의 전화를 걸거나, 호텔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 소비자가 쉽게 구매할 수 없도록 ‘장벽’을 높인 셈이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학) 교수는 “전화로만 주문을 받는다거나, 예약을 받지 않고 줄서서 기다리게 하는 등 소비자의 접근을 어렵게 할수록 제품과 서비스의 희소성은 더욱 강해진다”면서 “더 갖고 싶어지는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SNS 세상 = 비싼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리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로는 SNS가 꼽힌다. 사진을 찍어 인증하고 공유하는 게 일상이 된 젊은층에게 케이크는 주목받기 좋은 ‘아이템’이다. 이은희 교수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들은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면서 “그래서 케이크 하나라도 더 독특하고, 더 화려하고, 남들은 갖지 못하는 것을 구매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샤넬은 올해 한국에서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사진=뉴시스]
샤넬은 올해 한국에서 4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초고가 케이크가 다른 케이크의 가격까지 끌어올리게 마련이란 점이다. 조선팰리스의 지난해 크리스마스 케이크 가격은 7만5000원~25만원선이었지만 올해에는 8만5000원~25만원으로 올랐다. 신라호텔 역시 7만7000원~8만8000원선이던 케이크값을 올해 13만원~25만원으로 인상했다. 이은희 교수는 “초고가 제품을 출시하면서 중저가 제품 가격을 함께 끌어올릴 경우 소비자는 중가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용구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기업이 가격을 책정할 땐 경쟁사의 가격에 맞추거나, 마진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거나, 소비자의 가치를 따져 가격을 매긴다. 비싸더라도 소비자가 가치가 있다고 보고, 제품을 지속 구매하면 기업은 거기에 맞춰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 한편에선 ‘경기 침체’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리지만, 다른 한편에선 초고가 케이크가 불티나게 팔린다. 머지않아 ‘30만원대’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웃픈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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