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실책 반면교사 삼아야
적립금 쌓아만 두면 보장성 낮아져
문재인 정부 보장성 강화는 국민 덕
尹 정부, 건보 개혁 딜레마 해결할까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15일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건강보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15일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건강보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사진=뉴시스]

# 한동안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운영체제를 상징했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바로 ‘문케어(문재인 케어)’입니다. 문재인 케어란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가계의 병원비 부담을 낮추고, 이를 통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한다는 목표로 수립한 전임 정부의 보건ㆍ의료 정책을 말합니다. 

# 이런 문케어는 탄생한지 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케어’ 중심의 건강보험에 메스를 대고 있어서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건강보험의 정상화가 시급하다”면서 문케어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 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 제도 근간을 해치고, 결국에는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건강보험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 윤 대통령의 강한 발언엔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향한 위기감이 들어 있는 듯합니다. 정부에선 건강보험공단의 적립금이 나날이 줄어 2028년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적립금이 바닥난다는 건 건보공단에서 국민들에게 줄 수 있는 보험금이 한푼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들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죠. 

# 하지만 윤 대통령의 생각처럼 건보공단의 적립금을 많이 남긴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무조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스쿠프가 아이러니한 사실관계를 확인해봤습니다.[※참고: 이 기사는 더스쿠프 매거진 486~487호 기사를 근거로 재작성했습니다. 더스쿠프 홈페이지에선 ‘건강보험의 진실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의 질병ㆍ부상을 예방ㆍ진단ㆍ치료ㆍ재활하고, 출산ㆍ사망 및 건강증진을 위해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보건을 향상하고 사회보장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명시된 건강보험의 목적입니다. 건강보험이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설문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6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로 응답자의 94.0%가 ‘국민들이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해 온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참고: ‘코로나19 이후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실시한 건보공단의 설문조사는 전국의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국민들이 ‘보험료 납부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지탱한 근거’라고 답한 덴 나름의 이유와 근거가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인 2021년까지 국민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연평균 3.4% 인상됐습니다. 19년간 건강보험료 인상률이 동결됐던 건 2009년과 2017년 단 두차례뿐이죠.

보시다시피 국민들은 매년 오르는 건강보험료를 착실하게 부담해왔습니다. 국민들이 ‘내가 낸 보험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건강)보장 효과는 어떤지 관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렇듯 국민들이 예리한 눈초리로 건강보험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건보 개혁’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으로 건강보험 재정, 다시 말해 건보공단이 쌓아둔 적립금이 점점 줄어들어 5~6년내 모두 소진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입니다.

괜한 기우는 아닙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1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난해 재정수지가 2조8000억원의 혹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는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심각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보험의 적자폭이 커질 것이란 점입니다. 기재부와 복지부에선 건강보험 수지 적자가 2024년 2조6000억원→2025년 2조9000억원→2026년 5조원→2027년 6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적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건보공단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써야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정부에선 적자가 쌓이다보면 2028년쯤엔 건보공단의 저금통이나 다름없는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건보 적립금 안 쓰면 무의미 

이런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현행 제도를 손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개혁 명분’은 일견 합당해 보입니다. 윤 대통령 역시 “건강보험의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며 재정건전성에 방점을 두고 건강보험을 대폭 손질하겠다고 강조했죠(12월 13일 국무회의).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립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민들이 받는 혜택도 커지느냐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적립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정작 필요할 때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곳간(건강보험 재정)이 두둑해져도 정작 국민들이 받는 혜택(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은 적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역대 정부(노무현 정부~문재인 정부) 중 건강보험 적립금을 가장 많이 비축한 박근혜 정부를 사례로 들어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당시 전임 정부(이명박 정부)에서 넘겨받은 건강보험 적립금(누적)은 4조5757억원(2012년 결산 기준)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2016년  20조657억원까지 불렸습니다. 4년간 누적 적립금이 4배 넘게 증가한 셈입니다. 


적립금을 많이 쌓았으니 건보공단이 보험급여로 지출할 비용에도 꽤나 여유가 생겼을 겁니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한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에게 건강보험의 혜택을 줬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건강보험 적립금을 쌓았다.[사진=뉴시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건강보험 적립금을 쌓았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달랐습니다. 2012~2016년 박근혜 정부의 건강보험 평균 보장률은 62.8%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낮았습니다.[※참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각각 63.2%, 63.6%입니다. 단, 이 수치는 각 정부가 출범한 해를 제외한 4년 동안의 평균값입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낮다는 건 국민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할 때 나라에서 지급받는 보험급여가 적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4년간 건강보험료는 계속해서 올랐습니다. 국민들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가 늘어나니 건보공단의 수입도 당연히 커졌습니다.

그 결과, 박근혜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평균 수지율은 91.5%로 역대 정부 중 가장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참고: 건강보험 재정수지율은 100%를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흑자, 그 이상이면 적자를 뜻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평균 수지율은 96.2%, 이명박 정부는 98.0%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한 4년간 건강보험 재정수지율이 100%를 초과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쉽게 말해 건보공단이 매년 벌어들이는 돈이 지출하는 돈보다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수입에서 지출을 제하고 남은 돈(잉여금)을 적립금으로 쌓아두기만 하고, 정작 사용하는 덴 인색했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보장률은 되레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죠.

자! 그렇다면 ‘문케어(문재인 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던 문재인 정부는 어땠을까요?

박근혜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가 쓰지 않고 쌓아둔 적립금을 넘겨받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보장률(2017~2020년 평균 64.0%)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높아졌지만 재정수지율은 가장 악화(평균 101.1%)됐죠.


그런데 2021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먼저, 2020년 적자(3531억원)였던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1년 흑자(2조8229억원)로 전환했습니다. 같은 기간 누적 적립금은 17조4181억원(2020년 현금흐름기준)에서 20조2410억원(2021년)으로 늘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문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률은 높이고 재정수입과 누적 적립금은 늘리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하지만 이를 ‘문재인 정부가 잘해서’ 거둔 결과로 보긴 어렵습니다. 이 성과의 이면엔 국민들의 ‘공功’이 숨어 있습니다. 또다른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2017년 50조99억원(현금흐름 기준)이었던 문재인 정부의 보험료 수입은 2020년 62조4849억원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2021년 보험료 수입은 69조2270억원으로 1년 만에 다시 10.8% 증가했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과 비교하면 5년 동안 보험료 수입이 38.4% 늘어난 셈입니다.[※참고: 문재인 정부의 보험료 수입이 늘어난 주요 원인으론 보험료율 상승, 보험료 부과 체계 개편을 통한 직장가입자의 부담 증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 기준인 부동산 공시지가 상승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보험료 수입 덕분에 같은 기간 건강보험 총수입도 큰 폭으로 증가(2017년 57조9990억원→2021년 80조4921억원ㆍ현금흐름 기준)했습니다. 그만큼 건보공단이 쓸 수 있는 돈도 많아졌죠. 

결국 문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지출을 늘려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재정 여건을 개선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건강보험료를 많이 낸 덕분이었던 겁니다.

문케어의 성과 이면에는 국민들의 공이 있다. 사진은 2019년 문재인케어 성과보고대회 현장.[사진=연합뉴스]

건강보험 재정 확충 혹은 보장성 강화에 편중했던 역대 정부의 정책은 건강보험을 수술대 위에 올리겠다고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참고해야 할 본보기입니다. 무작정 적립금만 쟁여놓으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아지고(박근혜 정부), 보장성을 늘리면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는(문재인 정부) 딜레마 앞에서 윤 정부도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이번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는 정의로운 보험 제도’란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요?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