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r Look 김지영 이큅 대표
그가 커리어 대신 창업 택한 까닭
과학학습 교구재 ‘똑똑하마’ 론칭
쌍둥이 엄마 CEO에게 필요했던 것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

# 세상이 변하면 세상에 필요한 인재상도 변한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지금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를 인재가 필요하다.

#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교육 방식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학습지가 태블릿PC 속으로 들어왔을 뿐 뻔한 ‘주입식 교육’은 여전하다. 삼성물산 최연소 여성 임원이었던 김지영(50) 대표가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한 채 과학학습 교구재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아이가 배움의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 “왜?” 김지영 이큅 대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메릴린치, 야후코리아를 거친 삼성물산 최연소 여성임원….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그가 ‘오십’이란 문턱에서 스타트업이란 가시밭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 “왜?” 김 대표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20여년 넘게 인정받으며 직장생활을 했지만 스타트업은 차원이 달랐다.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고 알리는 덴 생각보다 더 많은 땀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일을 왜 하는지’ 명확한 소신을 갖는 게 중요했다.

# 김 대표가 이끄는 이큅은 과학학습 교구재 전문기업(2020년 설립)이다. 그는 왜 이큅을 창업했을까. 이큅(EQUIP)이란 사명처럼 아이들이 미래 인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였을까.

김지영 이큅 대표는 “아이들이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한 건 호기심과 배움의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김지영 이큅 대표는 “아이들이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한 건 호기심과 배움의 열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 그동안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창업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창업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었어요. 마흔둘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어요.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앞으로 20년은 넘게 더 일해야 했죠. 문득 위기감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가 가진 경쟁력이 미래에도 충분할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정작 난 ‘회사’라는 온실 속에서 도태되는 건 아닐까? 모든 게 두려웠어요.”


✚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실제 행동에 옮기는 덴 용기가 필요하죠.
“많은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더 늦기 전에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싶었죠.”


✚ 왜 과학학습 교구재였나요.
“무엇보다 제게 필요한 거였어요. 아이들이 다섯살이 됐을 때 처음으로 유치원에 보내면서 다른 학부모를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그제야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았는데, 다섯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수학·국어·한자·과학 학습지를 풀더라고요.”


✚ 다섯살인데요?
“네, 현실이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전 아이들을 20~3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 창업 전부터 문제의식을 갖고 계셨던 거네요.
“맞아요. 제가 늘 바쁜 엄마이다 보니 주말만은 아이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외국인 동료들의 SNS를 발견했어요.”


✚ 특별한 내용이 있었나요?
“아니요. 되레 평범했어요. 아이들과 뭔가를 함께 만들고 체험하면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그래, 이거야’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미국 아마존에서 과학놀이 책 10권을 주문했죠(웃음).”


✚ 일종의 충동구매였네요.
“그런가요?(웃음)”


✚ 성과는 어땠나요?
“기다리던 주말이 왔을 때 아이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과학놀이 책을 펼쳤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요? 제가 생각하던 그림이 아니었어요.”


✚ 왜죠?
“집에 없는 준비물이 너무 많았어요. 베이킹소다, 다 쓴 휴지심, 씻어 놓은 우유팩 등 준비물이 필요했죠. ‘다음에 다시 잘 준비해서 하자’며 아이들을 다독였어요. 그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의 아이디어부터 준비물까지 하나의 키트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 대표의 단순한 아이디어는 현실화했다. 이큅은 창업 직후 ‘STEAM(용어설명 참조)’ 교육 방식을 적용한 과학학습 교구재 ‘똑똑하마’를 개발했다. STEAM은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을 융합해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도록 하는 교육 방식이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똑똑하마는 만 5~8세 아이들을 위한 메이커형 과학놀이 키트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교구재를 가지고 놀면서 과학의 원리를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별도의 준비물이 필요 없어 부모 입장에선 쉽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럼 ‘똑똑하마’의 개발기를 좀 더 들어보자.

[자료|이큅, 사진 | 이큅 제공]
[자료|이큅, 사진 | 이큅 제공]

✚ 교육 분야는 처음이신데요. 어떻게 똑똑하마를 개발하셨나요.
“먼저 육아와 교육 면에서 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동료들로 팀을 꾸렸어요.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쏟아낸 아이디어를 모아 교구재를 구상했죠. 실제 제품 개발 과정에선 유아교육 전문가(좋은부모연구소), 현직 국제학교 과학교사, MIT 공학박사 등 교육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어요.”


✚ 기존 STEAM 교구재들과 똑똑하마의 차별점은 뭔가요.
“똑똑하마는 미국 국립과학교사연합회가 제정한 ‘차세대 과학 교과 기준’에 따라 만 5~8세에 필요한 교육 목표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어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중요한 과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36개월 과정)을 만들었죠.”


✚ 커리큘럼에 따라 프로그램을 구성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 프로그램 기간인 36개월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기 같습니다. 만 5~8세 아이들에겐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불가능하죠. ‘지식을 어떻게 연결할지’ ‘지식을 활용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등을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제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별 소용 없어요. 그래서 똑똑하마는 아이들이 직접 만들고, 탐구하면서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맞췄어요. 참, 부모와 함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똑똑하마엔 부모를 위한 ‘교수법 지침서’가 포함돼 있어요. 처음 똑똑하마를 만들었을 땐 아이들에게 과학 원리를 설명해주는 ‘원리 교재’와 직접 만들고 놀 수 있는 ‘키트·가이드’ 정도가 전부였어요. 시제품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여러 피드백을 받으면서 부모를 위한 지침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아이들의 두뇌 성장이 완성되는 만 5~8세 시기엔 부모와의 교감을 쌓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때 아이의 지적·언어능력, 사회성이 발달하고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건 수많은 연구에서 입증된 결과다. 영국 옥스퍼드대 국립아동발달연구소는 “33년간 1만7000명의 아이들을 추적 연구한 결과, 부모가 육아에 많이 관여한 아이들이 사회성이 좋고 성공한 어른이 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 대표님도 두 아이의 엄마이신데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공부를 위한 학원엔 보내지 않고 있어요. 지금 아이들이 어떤 지식을 쌓고, 무엇을 배우느냐가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흥미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궁금해 하고,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길러주려 합니다.”


✚ 교육 일을 하시는 만큼 아이들과 접점도 많아지셨을 듯합니다.
“직장생활할 때보다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난 건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분명 달라진 건 있어요.”

[자료|이큅, 사진 | 이큅 제공]

✚ 뭔가요?
“아이들이 제가 개발한 제품을 깐깐하게 피드백해줘요. 아이들의 의견을 제품에 반영하면 또다시 피드백을 하죠. 이런 과정이 진짜 교육 같아요. 사실 창업하기 전엔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엄마, 엘리베이터 광고를 하면 어때?’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이뤄집니다라고 소개해봐’ 등등 조언까지 해준답니다.”


✚ 이큅은 최근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를 발판 삼아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으신가요.
“만 3~5세를 대상으로 미술과 수학 중심의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있어요. 올해 5월 론칭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연령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선 먼저 똑똑하마를 널리 알려야겠죠(웃음). 지금까지 똑똑하마를 개발하고, 콘텐츠를 쌓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 좀 더 인지도를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 교육 분야의 종사자로서 한국의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향했으면 하시나요.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야 행복한 세상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미래의 다양한 인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이큅·equip) 돕고 싶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김 대표가 ‘세상의 시간표’대로 살아온 건 아니다. 마흔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남들이 안주를 택할 때 도전을 택했다. 그는 교육계에 새 길을 낼 수 있을까. 지금 출발점에 섰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참고: 이 기사는 더스쿠프 매거진 516호 기사를 근거로 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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