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의 또다른 단면
런치플레이션 직장인 압박
점심 먹으러 편의점 가는 사람들
편의점 도시락 가격도 맛도 좋아져
영세 상인 위협하는 규모의 경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인

편의점이나 마트처럼 가성비 제품을 내놓을 여력은 애초에 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물가가 치솟은 상황이라면 가격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 점심에 ‘편의점’에 가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다. 이전엔 ‘때우기’ 정도였다면, 지금은 맛도 좋고 값도 좋아서 찾는 이들이 많다. 이젠 편의점과도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인 영세 상인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수록 골목상권은 침체할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수록 골목상권은 침체할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 고물가 탓에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물가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은 팍팍해진 우리 삶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런치플레이션이 심화하자 편의점 업계는 가성비 높은 도시락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GS25는 6년 만에 ‘김혜자 도시락’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고, 이마트24는 6가지 반찬에 3900원인 ‘39도시락’을 선보였다. CU는 가성비 도시락의 상징과도 같은 ‘백종원 간편식 시리즈’를 강화하고 있다. 고물가가 만들어낸 웃픈 시대상이다. 

문제는 물가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지수상승률은 4.8%(전년 동월 대비)로, 20 22년 4월(4.8%) 이후 8개월 만에 4%대를 기록하며 다소 주춤해졌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다. 그중에서도 외식물가는 지갑을 열 때 손이 떨릴 정도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칼국수 한 그릇 평균 가격(2월 서울 기준)은 8731원, 냉면은 1만692원이다. 1년 전과 비교해 9.7%, 7.3% 올랐다. 삼겹살과 비빔밥은 1만원이 넘는다. 삼겹살은 전년 대비 12.1% 올라 1만9236원, 비빔밥은 8.7% 올라 1만115원을 기록했다. 하루 한 끼는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특히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소비자들을 잡기 위해 편의점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성비 도시락을 출시함과 동시에 소비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해 가격을 뚝뚝 떨어뜨렸다. 지갑이 가벼워진 소비자는 열광했고, 이내 완판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그에 가려 우리가 잊고 있는 것도 있다. 편의점의 운영 주체인 대기업이 실현하고 있는 규모의 경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영세 상인들이다. 지난해 12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의 68.6%가 2022년 매출이 2021년에 비해 감소했다고 답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지만 골목상권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데다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다.

지난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그랬다. 이곳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현순(가명)씨는 요즘 하루도 한숨을 거르는 날이 없다. 가스요금, 전기세 뭐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어서다. 

그런데도 김씨는 음식가격은 올리지 않고 있다. 그의 가게에선 김밥이 두줄에 5000원이다. 서울시 김밥 한줄 평균가격이 3100원인 것을 생각하면 평균가격보다 600원이나 저렴한 셈이다. 김씨 말마따나 안 오른 게 없는 데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건 손님이 끊길까봐서다. “시장 장사라 가격을  올리지도 못해요. 비싸면 누가 사먹겠어요.”

한해가 다르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종업원이라도 한명 채용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올해 최저시급은 9620원으로, 월급으로 계산하면 201만원이다. 김씨가 김밥 804줄을 팔아야 한명 월급을 줄 수 있는 셈이다.

인근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 정인철(가명)씨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이제나저제나 손님이 올까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 횟집 종업원으로 일하다 독립해 가게를 차린 지 8년째인데,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기는커녕 상황이 갈수록 더 열악해지고 있다. 오후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 월급을 주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다. “공공요금도 그렇지만 원자재 가격이 더 많이 올랐습니다. 임대료 안 오른 걸 감사할 정도죠.” 

잠시 말을 멈춘 그의 시선이 가게 한쪽에 높다랗게 쌓인 포장용기 쪽으로 향했다. “공산품까지 안 오른 게 없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다. 뚝 끊긴 손님의 발길이다. “경기가 계속 안 좋긴 했지만 코로나19로 더 악화했어요. 그냥 버티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그의 고충은 더 깊어질 공산이 크다. 하루 전인 지난 13일 GS리테일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GS더프레시는 싱싱한 회를 당일 배송받을 수 있는 ‘싱씽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12시 전에 주문을 하면 GS리테일이 지정한 회 가공센터에서 표준화된 작업 공정을 거친 회를 서울·인천 전 지역과 수원·과천·고양 등 경기도 내 주요 도시까지 당일 오후 8시 안에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편의점 CU는 수산물 전문 유통 플랫폼인 인어교주해적단과 손잡고 활어회 픽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애써 횟집까지 걸음하지 않아도 편의점에서 싱싱한 회를 수령할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선 편리하지만, 정씨처럼 소규모 횟집을 운영하는 이들까지 반가울 순 없는 소식이다.

사실 편의점이 골목 상권을 위협한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물가 국면에서 편의점의 경쟁력은 더 강해졌다. 언급했듯 값싸면서도 품질 좋은 도시락을 내놓았고, 그 때문인지 ‘점심은 이제 편의점에서 사먹는다’고 말하는 직장인도 부쩍 늘어났다. 그렇다고 이런 편익을 규제를 통해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된다. 시장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소비자의 편익에서 나온다. 

영세 상인들의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영세 상인들의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영세 상인들이 고물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값을 내린 품질 좋은 상품을 내놓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지만, 현 정부가 내밀한 부분까지 챙길 정도로 세심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그동안은 현금성 지원 등 단발성 정책이 많았다”면서 “그런 정책은 끝나고 나면 사후관리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편의점. 그럴수록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영세 상인들. 이 고물가가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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