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메기효과의 허상➊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尹 정부 정책적 근간 ‘경쟁’
메기 하나로 시장 바꿀 수 있나
무너지는 골목상권과 무한경쟁
제4이통사 유치 실익 있을까
기울어진 운동장 바꾸는 게 순리
공정한 시장규칙부터 세워야 

#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근간은 ‘경쟁’이다. 유통이든 IT든 통신이든 모든 시장의 구성원을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 밑바탕엔 ‘메기효과’란 경영이론이 있다. 성장이 정체된 산업 생태계에 메기와 같은 포식자가 등장하면 시장엔 다시 활력이 감돈다는 거다. 

# 하지만 메기효과는 국가 정책을 펼칠 때 맹신할 만한 이론이 아니다. 여기엔 뛰어난 메기 한 마리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강자 논리’가 깔려 있는데다, 철학과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도 많아서다. 더스쿠프가 ‘메기효과의 모순과 허상’을 취재했다.  視리즈 첫번째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메기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경영이론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메기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경영이론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 김 사장의 한탄 

후~. 50대 김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생각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문을 닫을까요, 말까요?” 2009년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을 침투하던 그때, 우린 작은 슈퍼를 운영하던 김 사장을 만났다.

그는 생존이란 외나무다리에서 위태롭게 휘청이고 있었다. “SSM은 골목상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거예요. 유통망에 돈까지 거머쥔 공룡이 골목으로 쳐들어오는데, 우리 같은 영세 상인이 당해낼 재간이 있겠어요?” 

# 기업 나름의 논리

하다 하다 골목 안쪽까지 밀고 들어온 대기업도 나름의 논리는 갖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메기효과(Catfish Effect)’, 다른 하나는 ‘고객 편익’이었다. 당시 SSM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대형 유통업체의 임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대기업이 진출하면 골목상권은 더 선진화할 겁니다. 소비자는 골목이 편해지고, 동네 슈퍼는 그 후광을 입겠죠. 메기효과라는 것도 있잖아요.” 

메기효과. 성장이 정체된 산업 생태계에 ‘메기’와 같은 포식자가 등장하면 시장엔 다시 활력이 감돈다는 경영 이론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주창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과연 우리의 골목에서도 유효했을까.

# 메기효과의 이중성 

사실 메기효과를 1차원적 시각으로 다루는 건 간단치 않다. 분석자의 관점이나 철학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커서다. 2020년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한 기사를 보자.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했을 때 우려가 많았다. 국내 가구업계를 흔들어놓을 것이란 우려였다. 마땅히 지적해야 할 내용도 많았지만, 국내 기업에 치우치거나 왜곡된 보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케아 상륙 이후에도 국내 가구 시장은 고사하지 않았다.” 이케아가 숱한 논란을 딛고 국내 가구 시장에서 메기 역할을 해냈다는 요지의 기사다. 

윤석열 정부의 철학적 근간은 무한경쟁이다. 하지만 경쟁이 늘 유효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철학적 근간은 무한경쟁이다. 하지만 경쟁이 늘 유효한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사진=뉴시스] 

오롯이 대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 기사의 논지는 틀리지 않았다. 한샘·리바트 등 대형 가구업체의 매출은 이케아 진출 이후 훨씬 더 성장했다. 하지만 시선을 중소 가구업체로 돌리면, 정반대의 결과가 보인다. 이케아에 맞서던 대형 가구업체들이 소가구·생활용품시장까지 치고들어오면서 중소 가구업계는 설자리를 잃었다. 이케아란 메기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파괴 본능’을 발휘한 셈이다. 

이 때문에 메기효과는 세상의 ‘갑甲’에게 유용한 도구로 악용되곤 한다. 약자를 잡아먹는 포식자의 행위를 합리화하거나, 갑의 으름장을 활력이란 이름으로 미화하는 데도 종종 쓰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메기효과는 커다란 후유증도 남긴다. 메기가 휩쓸고 간 시장엔 필연적으로 독과점이 남고, 다양성은 사라진다. SSM이 골목상권을 침투한 2009년 이후 골목에 대형 유통채널의 간판이 줄줄이 매달린 건 ‘메기효과’의 모순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 일그러진 알뜰폰  

메기가 시장을 왜곡한 사례는 또 있다. 알뜰폰 시장이다. 2012년 도입된 알뜰폰의 처음 취지는 ‘통신비 절감’ ‘이통3사 독과점 해소’ 등 두가지였다. 그런데 정부는 ‘알뜰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기계적 대의명분에 빠져 대기업의 진출을 허용했다. 장벽이 사라진 시장엔 다양한 대기업이 진출했는데, 개중엔 이통3사의 자회사도 있었다. 메기 탓에 왜곡된 시장에 ‘새끼 메기’들이 뛰어든 셈이었다. 

이런 이유로 시장 저변엔 ‘알뜰폰마저 이통3사의 손에 들어갈 것’이란 경고가 넘실댔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이통3사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월 50%를 넘어섰다. 반면, 처음부터 이 시장의 밑단을 지탱해온 중소 사업자들은 파산하거나 하나둘씩 보따리를 쌌다. 메기 무리에 ‘새끼 메기’까지 가세해 시장을 일그러뜨린 결과였다. 

# 흔들리는 시장의 룰 

그럼 메기가 뒤흔든 시장을 복구할 방법은 없을까. 답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이럴 때면 꼭 규제책이 거론되지만, 이는 단편적인 솔루션일 뿐이다.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규제는 시장의 성장판에 대못을 박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인지 몇몇 전문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영역을 구분 짓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가령, SSM과 동네슈퍼를 품목으로 나누려 한다면 ‘언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분류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합의점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답은 하나다. 시장의 규칙을 올곧게 세우는 거다.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만들자는 얘기다. 사실 덩치 큰 기업이 거대 자본을 무기로 덤핑이나 불법판촉행위를 일삼으면 작은 기업은 당해낼 수 없다. 알뜰폰 시장의 중소 사업자든, 가구시장의 작은 제조업체든, 유통시장의 동네슈퍼든, ‘게임의 룰’이 지켜졌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그들만의 가치를 뽐냈을지 모른다.  

# 경쟁의 그림자 

시장의 규칙을 바로 세울 때 중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때론 감시자, 때론 조정자를 자임해야 한다. 어쩔 땐 시장의 파수꾼 역할도 맡아야 한다. 그럼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공교롭게도 윤 정부는 ‘메기가 무너뜨린 시장에 메기를 넣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정책적 배경은 경쟁이다. 현 정부는 유통이든, IT든, 금융이든, 통신이든, 모든 시장의 구성원을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시장엔 대놓고 입김을 불어넣어 경쟁 모드를 조성한다. 입김이 통하지 않으면 직접 ‘경쟁자’를 투입하겠다면서 공포감을 자아낸다. 여기엔 뛰어난 메기 한마리만 있으면 침체한 시장이 활기를 띨 것이란 전형적인 강자의 논리가 녹아 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제4통신사 밀어붙이기’다. 

# 제4통신사 딜레마  

관점을 잠깐 통신시장으로 돌려보자. 이통3사가 과점한 통신시장의 왜곡을 없애는 방법은 출혈경쟁을 법과 제도로 막아 공정경쟁의 틀을 만드는 거다. 시장의 룰이 제대로 서야 이통사의 소모적 지출이 줄어들어 소비자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서다. 

그런데 윤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거대 자본이 필요한 제4통신사를 유치하는 거다. 새로운 메기를 시장에 끌어들여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기존 메기들과 경쟁시키겠다는 건데, 벌써 일곱차례나 실패한 이 전략이 성공할지 의문이다. 

국민 대부분이 이통3사의 가입자란 점을 감안하면, 제4통신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도 딱히 없다. 혹여 누군가 제4통신사를 설립하더라도 소비자가 이득을 볼 공산은 적다. 새 이통사는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입한 만큼, 하루라도 빨리 수익을 창출하려 들 거다.

하지만 통신시장이란 레드오션에서 단기간에 수익을 올릴 방법은 ‘남의 고객’을 뺏어오는 것뿐이다. 메기들이 점유한 연못에 또다른 메기를 넣더라도 ‘출혈경쟁’이란 악순환을 피할 순 없다는 얘기다. 

# 메뚜기 연구의 시사점 

자!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2011년 히브리대학(Hebrew University·이스라엘)과 예일대학(Yale University·미국) 과학자들은 메뚜기를 활용한 독특한 연구를 진행했다. 가설은 다음과 같았다. “천적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메뚜기는 사후死後 느리게 부패한다.”[※참고: 이 연구의 학술적 가설은 ‘거미에게 겁먹은 메뚜기들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이다. 이 기사에선 다소 어려운 학술적 내용을 배제하고, ‘단순 결과’만 인용했다.] 

히브리대‧예일대 연구팀이 만든 가설을 메기효과에 적용해 보자. 연못 속에서 메기를 만난 미꾸라지가 ‘메기효과의 통설’대로 활력을 찾았다면, 그 사체死體의 분해 속도는 빠를 거다. 몸에 생생한 기운이 남아 있어서다. 반대로 미꾸라지가 ‘메기효과의 통념’과는 달리 겁을 먹었다면 분해 속도는 느릴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정부가 제4이통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연 이 카드로 이통3사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정부가 제4이통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과연 이 카드로 이통3사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연구팀은 두개의 사육장 중 한곳엔 메뚜기를, 다른 한곳엔 거미와 메뚜기를 함께 넣었다. 몇달 후 메뚜기의 사체를 각각 다른 곳에 묻은 연구진은 석달을 더 기다린 다음 꺼내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거미와 함께 지낸 메뚜기의 분해 속도는 홀로 지낸 메뚜기들보다 62~200%나 느렸다. 메뚜기가 천적 앞에서 주눅든 채 살았다는 방증이다. 이듬해 연구팀은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2012년)」에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를 게재했다. 

“포식자인 거미를 두려워한 메뚜기는 스트레스 상태에 빠져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물을 더 많이 먹었다. 그로 인해 부패 속도가 느려졌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이 단 것을 먹는 것처럼 메뚜기도 그랬다는 얘기다. 이 결과는 역설적으로 메기가 상대적 약자에겐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히브리대와 예일대의 공동연구는 윤 정부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메기효과는 ‘국가 정책을 펼칠 때’ 맹신할 만한 이론이 아니다. 시장은 ‘메기 하나’로 혁신할 수 없고, 예측불가능한 변수도 숱하다. 지금 필요한 건 메기를 풀어놓는 게 아니라 메기와 미꾸라지가 공존할 수 있는 규칙과 연못을 만드는 일이다. 메기의 역설, 어쩌면 해답은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이지원·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 참고: 537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3월 20일 발간한 더스쿠프의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파트 기사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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