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잡는 불법 사이트
법망 마련 근본 해결책 아냐
막으면 또 생기는 불법사이트
불법 사이트 근절 가능할까

K-콘텐츠가 뜨면서 이를 무단으로 유포하는 불법 사이트도 급성장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게티이미지뱅크]
K-콘텐츠가 뜨면서 이를 무단으로 유포하는 불법 사이트도 급성장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게티이미지뱅크]

“대처 잘하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국내에서 불법으로 콘텐츠를 유통 중인 사이트 ‘누누’의 관계자가 최근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이는 정부와 업계가 나름대로 대처하고 있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불법 사이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들 사이트는 어떤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고 있을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불법 사이트의 그림자를 들여다봤습니다.

K-콘텐츠가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두번째 파트를 선보인 ‘더 글로리’가 대표적입니다. 방영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세계 3위를 기록했고, 공개 후 3일 만에 1위에 오르는 흥행 성적을 거뒀죠. 한국은 물론 브라질·칠레·홍콩·일본·멕시코 등 38개국 TV쇼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작품의 인기가 어찌나 뜨거웠는지 중국도 더 글로리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중국의 콘텐츠 리뷰 플랫폼인 ‘더우반’에선 14일 기준 14만건에 달하는 리뷰가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선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중국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는데 중국 시청자들은 어떻게 더 글로리를 볼 수 있었을까요? 눈치 빠른 이들은 벌써 답을 알아차렸을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콘텐츠를 무단 도용해 송출하는 불법 사이트를 통해서 더 글로리를 시청한 겁니다.

문제는 이같은 불법 콘텐츠 공유가 국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이트는 ‘누누(NOONOO)’입니다. 누누는 더 글로리가 방영을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홈페이지에서 불법으로 스트리밍을 시작했습니다. ‘공짜로 더 글로리를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수많은 누리꾼이 누누로 몰려들었죠.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더 글로리가 한창 방영하던 12일 기준으로 한달 사이에 누누 검색량이 2100%나 증가했습니다.

비단 더 글로리뿐만이 아닙니다. 누누는 지금까지 흥행 콘텐츠를 불법으로 유통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2021년 서비스를 론칭한 지 2년 만인 지난 2월 누누의 월 이용자 수(한달에 1번 이상 접속한 이용자 수·MAU)는 1000만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모바일인덱스). 넷플릭스가 1151만명, 국산 OTT인 티빙이 475만명인 점을 생각하면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자료 | 모바일인덱스·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 참고 | 업계 추정치, 사진 | 더스쿠프 포토]
[자료 | 모바일인덱스·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 참고 | 업계 추정치, 사진 | 더스쿠프 포토]

국내에서 활동 중인 불법 사이트는 누누만이 아닙니다. 마나토끼(만화책), 시크릿벨로(웹소설), 밤토끼(웹툰) 등 불법 사이트들은 하루에도 수백개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불법 사이트가 잘나갈수록 합법적으로 콘텐츠를 제작·송출하는 기업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누누로 인한 국내 콘텐츠 업계 피해 규모가 현재 4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통계자료(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더 큰 문제는 불법 사이트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통3사 등 인터넷제공사업자(ISP)와 협력해 불법 사이트를 폐쇄하고 있긴 합니다. 방통위가 심의를 거쳐 불법사이트 폐쇄를 의결해 ISP에 접속차단을 요구하면 ISP가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는 식이죠.

최근엔 차단 횟수도 늘리고 있습니다. 방통위는 2021년 2회, 2022년 4회에 그쳤던 누누 차단 횟수를 올해 1~2월에만 5회로 늘렸습니다. 심의를 거쳐 사이트 폐쇄를 의결하는 데는 평균 1~2주 가까이 소요되는데, 방통위는 심의 없이 곧장 폐쇄할 수 있는 방법도 고려 중입니다. 그러면 매일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업계 내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OTT 업체·영화제작사·배급사 등이 모여 만든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는 지난 9일 누누를 형사고소했습니다. 협의체 관계자는 “이번 협의체 결성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콘텐츠의 저작권 침해에도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면서 “협의체 공동대응으로 국내 영상산업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누누 등 불법 사이트는 여전히 보란 듯이 운영 중입니다. 사이트 주소가 차단될 때마다 홈페이지 주소 중 숫자만 바꾸는 방식으로 금세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어냅니다.

새 주소는 트위터·페이스북·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실시간 차단이 아니고서야 불법 사이트를 근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법 사이트가 정부의 법망을 피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사업자의 서버를 이용하는 겁니다. CDN은 원활한 접속을 위해 원본 사이트의 내용을 복제해 주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일부 불법 사이트는 이런 CDN을 통해 원본 서버를 해외에 두고, 국내엔 복제본을 두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료 | 더스쿠프,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더스쿠프,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이 방식을 쓰는 건 현재 정부의 불법 사이트 차단 의무를 따라야 하는 사업자가 ISP뿐이기 때문입니다. ISP가 접속을 차단해도 CDN을 통해 접속이 가능하다는 점을 불법 사이트가 악용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매일 불법 사이트를 차단한다 해도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는 건 이런 다양한 ‘꼼수’가 있어서죠.

이런 꼼수가 날로 심해지자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1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ISP에만 해당됐던 불법 사이트 접속 차단 의무를 CDN에도 부과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CDN 사업자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 불법 사이트의 연결망을 끊어내겠다는 게 이 법안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법안의 실효성에도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김승주 고려대(정보보호학) 교수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CDN 사업자의 대부분은 해외 기업이란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들 기업이 정부의 정책에 얼마나 호응해 줄지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관계자는 “복제품을 저장한다는 측면에서 CDN은 따지고 보면 웹하드와 비슷하다”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국내에 운영 중인 수많은 웹하드 중 하나에 접속해 보라. 웹하드 업체가 수시로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자료를 차단하고 있지만 일일이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수많은 불법 콘텐츠가 웹하드에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이렇듯 불법 콘텐츠를 뿌리는 유포자를 잡지 않고선 불법 사이트를 근절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이트 차단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여기에 편승 중인 불법 사이트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정책만으론 불법 사이트를 근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민·관의 적극적인 움직임 덕분인지 불법 사이트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23일 누누는 자사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통해 “국내 OTT가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은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서 “국내 OTT 업체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일괄 삭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료 | 업계 종합]
[자료 | 업계 종합]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릅니다. 누누가 카지노(디즈니플러스TV), 더 글로리(넷플릭스) 등 해외 OTT 업체의 인기 콘텐츠는 물론, 지상파·공중파 콘텐츠를 여전히 송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심을 쓰는 듯한 누누의 태도는 국내 콘텐츠 시장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한국 정부는 난관을 타개할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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