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소유분산기업과 권력➌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KT 시스템 농락하는 외풍
민간기업까지 파고든 사람 심기
기업 CEO가 승리의 전리품인가
포스코‧KT&G 밑단에 깔린 입김
자기 통제 하지 않는 권력의 민낯

# 정당한 절차를 거쳐 연임 적격 판정을 받았던 이는 ‘차기 대표’를 뽑는 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구현모 KT 대표다. 구 대표의 낙마로 다시 치러진 ‘국민경선급’ 프로세스에서 대표로 내정된 인물 역시 20여일 만에 그 직을 내려놨다.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이야기다. 

# 세상 사람들은 일련의 사퇴 촌극을 ‘정치권의 입김’ 탓이라 꼬집는다. 특정한 의도를 품은 ‘보이지 않는 손’이 대표를 뽑는 KT의 시스템을 뒤흔든 결과라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고약한 입김이 KT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KT처럼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인 포스코와 KT&G에서도 입김 논란이 벌어질 여지가 크다. 

#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주인 없는 기업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이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더스쿠프가 소유분산기업과 권력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視리즈’ 마지막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KT, 포스코, KT&G 등 소유분산기업의 독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KT, 포스코, KT&G 등 소유분산기업의 독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 권력의 이면 

권력의 속성 중 하나는 분열이다. 권력을 거머쥔 집단은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신봉하기 때문에 반대 의견을 수용하고, 정적政敵의 활동을 용인하는 데 인색하다. 그래서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든 권력의 형상은 ‘분열과 파괴’의 모습으로 표출될 때가 잦다. 많은 전문가는 이를 ‘정치(권력)의 어두운 이면’이라 칭한다.  

# 분열의 본질 

분열의 시작점은 사람이다. 권력집단에 속한 이들은 ‘자기 사람’ 심기를 통해 탐욕의 단면을 드러낸다. 어쩌면 이는 ‘수순’ 같은 일이다. 권력의 생리는 ‘주고받는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승자의 전리품은 대부분 ‘완장’이나 ‘자리’로 이어진다.

당연히 권력집단은 자기 사람을 꽂으려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인사人事·낙하산·공천 등 수많은 이름 만큼 방법도 다양하다. 자기 사람을 위해 ‘없는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이런저런 추문을 뒤집어씌워 멀쩡한 사람을 밀어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권력집단의 인사권을 통제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통제받지 않은 권력집단은 완장과 자리를 볼모로 내편과 네편을 갈라놓기 때문이다. 분열이 또다른 분열을 낳는 셈이다. 

# 입김의 위력 

그렇다면 우리 사회엔 권력집단의 인사권을 통제할 만한 시스템이 있을까. 다행히 ‘있다’. 다름 아닌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다. 2007년 제정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을 근거로 도입한 임추위의 핵심은 공모公募와 다수결이다. 

국내 공공기관의 임원이 되려면 우선 공개모집 절차에 지원해야 한다. 그다음 5~15명에 이르는 임추위 위원들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법적 프로세스만 보면, 밀실 추천은 불가능할 듯하다. 그럼 우리 사회의 권력집단은 임추위가 등장한 이후 ‘자기 사람’ 심기를 단념했을까.

1. ○○○ 정권, 또 무더기 ‘낙하산·보은인사’
2. ○○○ 정부, 5년간 공공기관 낙하산 63명
3. ○○○ 정부, 새 공공기관장 절반이 ‘낙하산’

답을 찾기 전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자. 위에 나열한 것들은 2008년, 2014년, 2022년에 보도된 기사의 타이틀이다. 시간 순서는 살짝 바꿔놨다. 자! 빈칸에 들어갈 이름이 무엇인지 맞힐 수 있겠는가. 십중팔구 고개를 갸웃할 거다. 내용이 엇비슷해서다. 

차기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KT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기 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KT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제 블라인드를 걷어보자. 공란에 들어갈 답은 순서대로 이명박, 문재인, 박근혜다. 이 테스트의 함의는 분명하다.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권력만 잡으면 임추위란 시스템을 패싱한 채 인사권을 맘대로 행사했다는 거다. 

더 심각한 건 ‘자기 사람’을 앉히려는 권력집단의 입김이 공공기관에서만 맴도는 게 아니란 점이다. 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에도 불편한 입김이 전달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KT의 CEO 잔혹사다.[※참고: KT는 소유분산기업이다. 민영화 과정에서 소유지분을 분산해 뚜렷한 대주주가 없다. 포스코, KT&G가 이런 유형의 기업이다.] 

# 구현모 촌극 

관점을 잠깐 KT로 돌려보자. 구현모 KT 대표는 2020년 3월 임기 3년의 선장에 올랐다. 당시엔 낯설었던 ‘탈통신’을 기치로 내세워 세간의 비아냥을 사기도 했지만, 나름의 성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구 대표가 밀어붙인 ‘디지코(DIGICO·디지털 플랫폼 기업) 전환’ 전략은 통신이란 낡은 틀에 묶여 있던 KT의 한계를 극복하는 발판 역할을 해냈다.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KT 사상 첫 ‘연 매출 25조원’을 일궈낸 주역도 구 대표다. 

좋은 성적표 덕분에 그는 차기 대표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다. 실적이란 명분만큼 합당한 근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가 총 5차례 진행한 심사에서 구 대표는 줄줄이 ‘연임 적격’ 판정을 받아 단독 후보로 추대됐다. 

보이지 않는 손의 흔적들 

그럼에도 스스로 ‘복수 경선을 하겠다’고 선언해 7차례 심사 과정을 다시 거쳤고, 끝내 경쟁자 26명을 물리친 후 최종 후보자로 확정됐다. 하지만 그는 연임은커녕 대표 선출 무대에도 오르지 못했다. 정치권의 입김 탓이었다. 

표면적 문제점만 파악한 숱한 미디어가 “정치권의 외풍이 KT의 취약한 지배구조 시스템을 파고들었다”고 꼬집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2020년 KT의 선장에 오를 때 구 대표는 이전 CEO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그 전엔 CEO추천위원회에서 후보를 선정한 후 주주총회에 안건을 상정해 통과하면 끝이었다. 

구 대표는 ‘지배구조위원회→대표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주총’으로 세분화한 의결 절차를 모조리 거쳤다.  이렇게 높은 장벽을 넘었던 구 대표가 연임에 도전조차 못 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철저하고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정치권의 외압과 입김 앞에선 무용지물이란 점이다.

공교롭게도 KT의 새 대표로 내정됐다가 사의를 표명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역시 외압을 피해가지 못했다. 윤 부문장은 말 그대로 ‘역대급’ 선임 절차를 거쳤지만, 차기 대표로 선택받을 기회를 상실했다. 정치권에서 쏟아낸 불신과 의혹이 그의 자진 사임을 부추긴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입김 탓이었다는 얘기다. [※참고: 윤경림 부문장은 27일 KT 대표이사 후보직에서 공식 사퇴했다. KT 이사회는 사퇴를 만류했지만, 윤 부문장은 끝내 뜻을 접지 않았다.] 

문제는 ‘소유분산기업 CEO’ 잔혹사가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KT와 마찬가지로 주인이 없는 포스코와 KT&G도 ‘입김의 영향권’에 들어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백복인 KT&G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에 끝나는데, 모두 연임을 확신하기 어렵다.

두 기업 모두 선진화한 인사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별 쓸모가 없다. 권력집단은 ‘자기 사람’을 내리꽂기 위해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분열을 꾀할 공산이 커서다. 

# 뻔뻔한 본능 

이제 결론을 말해보자. 1년 전 대선이 끝났고, 1년 후엔 총선이 열린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벌써부터 ‘선거 모드’에 돌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권력을 노리는 이들이 꿈틀대면 사단이 만들어지고 무리가 형성되게 마련이다. 이는 조만간 ‘주고받는’ 정치가 시작될 것을 예고한다. 

그 무리 중 누군가는 승리의 나팔을 불 테고, 누군가는 전리품을 거머쥘 것이다. 혹시 아는가. 저기 저 무리 속에 파묻혀 있는 누군가가 공공기관이나 소유분산기업의 수장에 오를지….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잔혹사는 늘 반복해 왔고, 지금 우리 눈앞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 정부의 문제만도 아니다. 전 정부도 다르지 않았고, 그 전의 전 정부도 매한가지였다.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권력집단의 뻔뻔한 본능. 우린 언제쯤이면 이 본능의 폭주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김다린·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 참고: 538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3월 27일 발간한 더스쿠프의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파트 기사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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