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소유분산기업과 권력➋
왜곡되는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에 개입 가능한 명분 줘
기업가치와 접점 많지 않은데도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만 앞세워
경영 좌지우지하려는 탐욕 줄여야

정치권의 ‘인사 개입’이 도마에 올랐다. 공공기관을 넘어 금융그룹으로, 이젠 KT 등 소유분산기업으로 향했다. 개입의 선봉장으로 국민연금이 나서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악용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정치권의 지긋지긋한 인사 개입,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안타깝지만 그 방도는 그리 많지 않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험대에 올랐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험대에 올랐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이 애써 만든 지배구조 시스템을 말 몇마디로 무력화하면 정치권은 관치 논란이란 역풍을 맞는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은 학계와 시장전문가로부터 ‘관치’ ‘연금 사회주의’란 비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있는 건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란 명분이 있어서다. 이는 지난 1월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현황 및 개선방향 세미나’를 주최한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김 의원은 “단기적으로는 관치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치를 자처해서라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이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얘기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목적은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경영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고객과 주주의 권익을 극대화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거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주주들의 이익도 보장하는 윈윈 전략인데, 이런 이유라면 오히려 박수를 받아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이 이들 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목적이 더 나은 지배구조를 만들고, 차기 CEO를 깐깐하게 심사하기 위해서라면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인사 개입 의도가 선하지 않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훈 변호사(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그동안 국민연금이 다른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다가, 급작스레 소유분산기업의 주총을 앞두고 동원되는 행태를 보인 게 문제”라면서 말을 이었다.

“지배주주가 있는 다른 기업도 문제가 숱한데 정부가 소유분산기업에만 선별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국민 입장에선 정치권이 주인 없는 기업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 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논평을 통해 “정권의 인사 개입에 동조하는 명분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왜곡해선 안 된다”면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걸 스튜어드십 코드 범주에 포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금운용 원칙이나 수탁자책임 원칙에도 명백히 위반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치권이 강조한 스튜어드십 코드는 고객과 주주의 권익과는 무관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정치권의 인사 개입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KT는 ‘CEO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기업가치가 추락했다. 올해 들어 KT의 주가 수익률은 -11.09%(3월 23일 기준)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최근엔 사상 초유의 ‘경영 공백’ 위기를 맞았다. 3월 31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내정된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탓이다.

최근 사의를 표명한 윤경림 부문장.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최근 사의를 표명한 윤경림 부문장.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윤경림 부문장은 대표이사에 정식 취임하더라도 정상 경영을 이어가는 게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으로부터 “이권 카르텔” “구현모 현 대표의 아바타”란 비판을 받으면서 압박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검찰이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업무상 배임ㆍ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둘러싼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윤 부문장의 사의 표명이 알려진 23일엔 3만원대를 유지하던 주가가 장중 2만원대로 주저앉으면서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명분이 무색해졌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셀프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국민 노후자금을 이용해선 안 된다는 거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총장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칫 국민연금이 국민의 집사가 아니라 정권의 집사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면서 “정권이 국민연금기금을 장악하고 그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정치권의 ‘엄격한 금욕주의’만이 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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