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회적 화두 ‘학교폭력’
피해자가 원하는 건 진심 사과
가해자 처벌 강화 방향 옳지만…
부작용도 고려할 필요 있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학교폭력’이다. 드라마에서도 뉴스에서도 학폭 관련 소식이 연일 쏟아져 나온다. 교육부도 학폭 근절대책 마련에 나섰다. 핵심 내용은 ‘생활기록부상 학폭 기록 보존 기간 연장’ ‘학폭 기록, 대학 입시 반영’ 등이다. 그렇다면 가해학생의 학폭 기록을 오래 남기고, 입시에 불이익을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학폭  피해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건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폭 피해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건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교폭력(이하 학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학폭을 소재로 삼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가 흥행한 데 이어 논란 끝에 낙마한 고위공직자(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과거 학폭 파문이 맞물리면서다. 그러자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설자리도 좁아지고 있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출연자는 학폭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스로 경연을 포기했다. 한 유명 유튜버 역시 학폭 폭로가 터져 나오면서 채널을 닫아야 했다. 

이처럼 학폭을 예방해야 한다는 경각심이 높아지자 대통령까지 나서 학폭 근절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부는 지난 9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학폭 근절대책 추진방향’을 제출했고, 3월 중으로 관련 대책을 구체화해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학폭 근절대책 추진방향의 내용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 보존기간 연장 ▲학폭 기록, 대학 입시 전형에 반영 ▲가해학생과 피해학생 즉시 분리 조치 ▲교내 학폭 전담기구 역할 강화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학폭 기록 보존기간 연장’ ‘학폭 기록, 대학 입시 반영’이다. 여기엔 앞서 언급했던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사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피해학생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학폭을 저지르고도 서울대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도록 돼 있지만, 이런저런 빈틈으로 (그의 학폭 여부가) 입시에서 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빈틈이 있었을까. 먼저 학폭 기록의 보존기간부터 살펴보자. 현행 ‘학교폭력 예방법(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경미한 처분(1호 서면사과, 2호 피해학생 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 3호 교내봉사)을 받은 경우엔 생활기록부 기재를 유보한다. 다만 가해학생이 2차 가해를 하거나 징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 

반면 ‘4호 사회봉사’ ‘5호 특별교육 이수’ ‘6호 출석 정지’ ‘7호 학급 교체’ ‘8호 전학’ ‘9호 퇴학’ 처분의 경우 징계가 내려진 즉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 그중 퇴학 처분의 기록은 생활기록부에 영구보존한다. 4호 처분부턴 졸업 후 최대 2년까지 유지하고, 그 후엔 삭제해도 괜찮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현행 2년인 보존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대학입시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더 오래 남기고, 가해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교육부는 ‘학폭을 저지르면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활용해 학폭을 줄일 의도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학폭의 근절대책은 가해학생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지가 아니라 피해학생의 ‘보호’에  맞춰야 한다. 실제로 학교폭력 예방법의 첫번째 목적은 피해학생 보호다. 실제로 학폭을 신고한 피해학생 대부분은 징계보단 재발 방지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란다. 

그런데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등 학폭이 중대한 불이익의 전제가 된다면, 가해학생은 되레 격렬하게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할 가능성이 있다. 사과와 반성은 뒷전이고 ‘생활기록부에 남느냐 마느냐’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도 부담을 느껴 가해학생에게 선뜻 징계를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피해학생으로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기회를 잃을 뿐만 아니라 가해학생이 징계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 되레 커질 수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학폭 발생 즉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분리해 남은 학교생활을 안전하게 마치도록 돕는 것이다. 학폭 사실이 가해학생 생활기록부에 10년간 남든, 가해학생이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못 하든 당장 피해학생의 학교생활엔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학폭을 예방하는 방법은 피해학생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다. 피해학생이 신고만 하면 학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믿음 말이다. 그래야만 큰 용기 없이도 학폭 여부를 신고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는 주변 친구들이 학폭을 신고하는 계기가 될 여지도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선 학폭 피해자가 되레 사실을 숨기려 했다. 더 큰 보복을 당할 것이란 두려움이 컸기 때문일 거다. 지금은 다르다. 가해자가 자신의 과거 학폭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 만한 환경은 마련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학폭 인식이 개선됐다는 방증이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사건이 공분을 일으켰다.[사진=뉴시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사건이 공분을 일으켰다.[사진=뉴시스]

중요한 건 이런 인식을 학교 안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거다.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가해학생들이 떳떳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생활한다. 피해학생이 등교하지 못하거나, 학폭을 당했다는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사례만 봐도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당장 알아챌 수 있다. 

필자는 가해학생에게 가장 무서운 처벌은 ‘부끄러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건 기성세대이고, 교육부의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더글로리’를 통해 학폭 인식이 달라진 지금이 어쩌면 기회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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