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상담법 24편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학폭
학폭 관련 미투 끊이지 않아
피해자 트라우마 크다는 방증
가해자 처벌 제도 강화하는 추세
중요한 건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

유명인의 과거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학폭 미투(METOO)’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 중엔 수십년 전 학폭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학폭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성인이 된 이후에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이들이 학폭을 당했던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학폭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폭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야 할 3~4월 신학기가 온통 학교폭력(이하 학폭)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학폭 피해자의 복수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가 인기를 끈 데 이어,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가 아들의 학폭 논란으로 낙마하면서다. 최근 수년간 학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지금처럼 뜨거운 이슈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피해자들의 학폭 ‘미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폭을 견디지 못해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고 고백한 유명 유튜버부터 드라마 더글로리에 나온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데기 고문을 당했다는 피해자까지…,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폭 피해를 고백하는 이들 중엔 10~20년 전 학폭을 당했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학폭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과거의 치명적인 상처들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학폭으로 인해 느낀 모멸감, 공포감, 분노, 외로움, 자책감은 오랜 시간 생생하게 살아남아 피해자를 괴롭힌다.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잊히지 않는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학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겠는가.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다녔다는 서울대 인터넷 커뮤니티엔 또다른 학폭 피해자의 글이 올라왔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저지른 학폭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피해자에게 쓴 글인데, 이 글에서 학폭 피해자들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 저 또한 학교폭력 피해자 중 한명입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가해자들의 괴롭힘, 방관하는 또래의 무시, ‘네가 문제’라는 담임교사의 조롱으로 매일 ‘살기 싫다’는 생각만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학교는 지옥이었고, 부모님조차 정서적 환경보다는 학업 성적에 관심을 두셨기에 집조차 안식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 부끄러워하고 숨어야 할 쪽은 가해자인데 손가락질당하는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학교 밖으로 뛰어나가 한참을 울었습니다. 며칠 뒤 학교에 가니 제 생기부에는 무단결석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가해자들은 몇마디 훈계만 들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어떤 사과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한 가해자가 ‘걔 자살했으면 학교 문 닫았을 텐데 아깝다’는 말까지 했다더군요….” 

학폭이 만연하게 만든 우리의 학교, 가정, 또래집단,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 글을 쓴 학생은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학폭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학폭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어지는 글을 조금 더 소개하고자 한다. 

“저는 학생들이 폭력 없는 환경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습니다. 가해자가 발도 못 들일 교실, 피해자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교실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언급했듯 대다수의 학폭 피해자들이 회복되지 않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지금 우리가 ‘피해자가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가해자의 학폭 사실을 폭로하면서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이냐는 거다. 가해자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걸까. 

필자는 학폭을 폭로하는 이들이 ‘가해자가 잘 사는 모습에 분노하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이들로 비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이 미투를 선언하는 건 ‘가해자가 자신처럼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사죄를 받지 못한 현실에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정순신 변호사 아들에게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필자는 무엇보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만이 피해자의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학폭의 충격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는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주인공 문동은을 괴롭힌 가해자 무리들은 “나는 잘못이 없다”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다. 철이 들고 성인이 된 후인 데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는 거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가해자는 학폭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인정하고 반성하는가 하면 어떤 가해자는 부인할 수 없을 때까지 버티곤 한다. 

학폭 가해 사실이 밝혀지면서 촉망받던 운동선수가 제명당하고, 드라마 주인공 배우가 교체된다. 음악 경연대회 우승 후보가 하차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사과를 할 땐 내 기준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바란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해서 사과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반성하는 마음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때 진정한 사과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학폭을 우려하는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도도 다듬어지고 있다. 학폭 기록이 수능 정시에 반영되도록 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가해자에게 더 큰 불이익을 줘 학폭을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런데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필자로선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모든 게 어른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오래전 개봉한 영화 한편을 빗대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 ‘친구(2001년작)’에서 건달이 된 ‘준석(유오성 분)’은 모범생 친구 ‘상택(서태화 분)’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집에 삼촌들이 참 많아서 좋았거든. 근데 내가 중학교 때 한번 가출하고 들어오니까 한놈도 내를 뭐라 하는 놈이 없는 기라. 그때 한놈이라도 내를 패주기라도 했으면 내가 정신을 차렸을지도 모르는데….” 

학폭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사진=뉴시스]
학폭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어린 시절 나쁜 짓을 하는 데 빠져 건달이 될 때까지도 자신을 말려준 어른이 없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고백한 셈이다. 학폭을 저지르는 아이들 중에도 준석 같은 아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가해자들 주위에 좋은 어른이 있다면 이들을 나은 길로 안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에선 내 자녀가 학폭 가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자녀의 장래가 망가질까봐 무마하려는 부모들이 많다. 필자는 부모들이 자녀가 다시는 학폭을 저지르지 않도록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달라져야 아이들이 달라지고 세상도 변한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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