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산유국 美 무시하고 추가 감산
미국에 맞서는 중국 믿는 산유국들
마이크론 심사에 숨은 중국의 기싸움
러시아 곡물 무기화에 나설 가능성
유가, 곡물 등 인플레이션 변수 꿈틀

3월 마지막주 미국발 은행 위기가 진정세를 보이면서 1분기 미국 나스닥 지수가 16% 상승하며 3년 만에 최대 분기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인상을 조기에 종료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 주말 연준의 금리인상 종료 조건인 미국 물가의 하락에 적신호가 켜지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추가 감산을 선언했고, 러시아에선 국제 곡물기업들이 축출됐다.  

세계 곳곳에서 미국 우선주의에 반감을 표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 곳곳에서 미국 우선주의에 반감을 표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 연준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물가상승률은 2%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택 관련 비용이지만, 변동성이 가장 큰 부분은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이다. 그래서 에너지‧농산물 가격을 제외한 근원 물가지수를 따로 발표한다. 

그런데 3월 마지막주 중동 산유국이 미국의 기대와는 반대로 추가 감산에 나섰고, 러시아에선 미국과 스위스의 곡물기업들이 사업을 철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중국은 미국 마이크론 제품들을 안보 위협이란 이유로 심사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트럼프 정권에서 시작해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지는 미국 우선주의를 반대하는 기류가 있다. 그럼 되살아난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국제유가와 국제곡물가격을 통해 살펴보자. 


■ 불씨➊ 국제유가=미국은 지난해 물가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국제유가를 잡는데 주력했다.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다. 지난해 6월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의 의도대로 유가는 하락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한때 60달러대를 기록했다. 

인플레의 불씨는 공교롭게도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했던 사우디에서 되살아났다. 2일 사우디 국영통신사인 SPA는 사우디가 5월부터 원유 생산량을 하루 50만 배럴 줄인다고 보도했다. 이번 감산은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가 지난해 10월 결정한 1일 최대 200만 배럴 감산과는 별개다. 

이번 추가 감산에는 주요 산유국이 동참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5월부터 올 연말까지 하루 14만4000배럴 추가 감산을 발표했다. 이라크는 21만 배럴, 쿠웨이트는 12만8000배럴을 감산한다.

3월부터 6월까지 하루 50만 배럴 추가 감산을 시행 중이던 러시아도 감산 기간을 올해 연말까지로 연장했다. 전체 추가 감산량은 116만 배럴이다. 주요 산유국의 추가 감산 계획은 벌써 유가에 반영되고 있다. WTI 선물 가격은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일 한때 8% 급등한 81달러를 기록했다.  

■ 불씨➋ 곡물가격=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세계 곳곳에서 애그플레이션(국제 곡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전쟁 발발 한달 후인 2022년 3월 밀‧옥수수‧콩의 CBOT 선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7.7%, 102.1%, 72.0% 상승했다.

그만큼 세계 곡물 교역시장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우크라이나 옥수수의 점유율은 14%, 밀은 9%, 보리 10%, 해바라기유는 43% 등이다. 러시아 밀은 20%, 보리 14%, 해바라기유는 20%를 차지한다.

세계 최대 농산물기업인 카길이 러시아에서 거래를 중단했다.[사진=뉴시스]
세계 최대 농산물기업인 카길이 러시아에서 거래를 중단했다.[사진=뉴시스]

이중 러시아의 곡물정책이 특히 문제다. 지난 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농산물기업인 미국의 카길, 스위스 글렌코어의 농산물 자회사인 비테라가 러시아 시장에서 거래를 중단했다. 미국의 ADM(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등의 회사는 러시아 시장에서 사업을 축소한다. 카길과 비테라는 러시아 전체 곡물 수출량의 14%를 담당해왔다.

이들 곡물 기업들이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는 건 러시아 정부가 곡물 주권을 강조하면서 이들 기업에 러시아 내 자산을 포기하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자국 기업들을 통해서 곡물 무기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애그플레이션이 더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또다른 변수 중국=주요 산유국이 감산책을 발표하고, 러시아가 글로벌 곡물기업을 내쫓는 이유는 미국 우선주의를 향한 반감에서 찾아야 한다. 아울러 그 배경은 중국이 제공하고 있다.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일보는 2일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이 지난 31일부터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 제품들을 국가 안보와 관련해 심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론도 중국 당국이 요구한 심사 절차에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의 지난해 중국 매출은 33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10%를 상회한다. 


마이크론의 혐의인 ‘국가 안보 위협’은 미국이 지난 4년 동안 중국 첨단기업들을 미국에서 퇴출한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당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2019년 화웨이를 수출통제 리스트에 올렸다.

미 상무부는 2020년 중국 반도체회사 SMIC, 중국해양석유, 중국건설기술, 드론회사 DJI를 중국군 연관 기업이라며 제재했다.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통신사 3곳도 2020년 뉴욕증시에서 퇴출했다. 2021년에는 1월 샤오미 등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3월에는 화웨이, ZTE 등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

올해 들어서도 미국은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해서 중국 반도체와 광물을 사실상 제재하는 정책들을 발표했다. 중국이 마이크론을 심사하는 이유가 미국의 힘에 밀리지 않겠다는 기싸움의 일환이란 얘기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반격은 중동 지역 국가들이 미국의 기대를 무시하고 감산을 통해 유가 상승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이 미국 중심의 경제질서에 반기를 들고,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등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지난 3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양국이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는 러시아의 중재로 시리아와의 관계 정상화에도 근접해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 [사진=뉴시스]
시진핑 중국 주석과 사우디아라비아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 [사진=뉴시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이집트와 시리아 정상이 4월 중 관계 정상화를 위해 10년 만에 만난다고 보도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 국가들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중동 국가들이 중국과 러시아의 중재로 다시 관계 정상화에 성공하면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예측한 듯 미국도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환경단체 등의 강한 반발에도 알래스카 유전개발을 위한 ‘윌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윌로 프로젝트를 통해서 미국은 30년간 6억 배럴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29일에는 윌로 프로젝트의 2배에 달하는 멕시코만 7300만 에이커 지역을 석유회사들에게 임대 판매하도록 허용해 석유 시추에 쓸 수 있도록 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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