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거품의 경제학
1년 만에 중고 되는 최신폰
중고 모델 가격 고만고만
최신폰은 갈수록 비싸져
스키밍 가격 전략의 함정

큰맘 먹고 비싼 돈을 들여 산 가전제품이 1년 만에 반값이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낄 겁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시장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신모델 출시를 앞두거나 경쟁사가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이유로 이전 모델에 수십만원의 지원금이 쏟아지고 출고가가 떨어집니다. 이게 과연 정상인 걸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스마트폰 시장에 낀 거품을 걷어내 봤습니다.

최신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S22가 1년 만에 반값으로 떨어졌다.[사진=뉴시스]
최신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S22가 1년 만에 반값으로 떨어졌다.[사진=뉴시스]

‘역대급 성능’ ‘스마트폰의 끝판왕’…. 신종 스마트폰은 매년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쏟아져나옵니다. 지난해 2월, 삼성전자가 선보였던 갤럭시S22도 그랬습니다. 수식어만큼 성능도 뛰어났죠. 고해상도의 4K(QHD)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1억 화소에 100배 줌이 가능한 카메라는 DSLR 카메라 못지않은 성능을 뽐냈습니다.

여기에 ‘스마트폰의 두뇌’ 격인 AP(Appli cation Processor)에는 업계 최고 수준의 모델(퀄컴 스냅드래곤8 1세대)을 탑재했습니다. ‘GOS 논란’ 같은 잡음도 있었지만, 당시 갤럭시S22가 스마트폰의 기술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참고: 당시 삼성전자는 발열 문제를 막기 위해 ‘GOS(Game Optimizing Service)’를 기기에 탑재했습니다. GOS의 기능은 게임 등 고사양을 요구하는 앱 실행 시 스마트폰 성능이 제한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소비자들이 문제 삼으면서 집단소송으로까지 번진 바 있습니다.]

이런 스마트폰은 성능만큼 가격도 비쌉니다. 가장 뛰어난 스펙을 갖춘 갤럭시S22 울트라의 경우, 가격이 145만2000원(256GB 기준)에 달합니다. 용량을 1TB로 늘리면 가격은 174만9000원까지 치솟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랬던 갤럭시S22가 최근 ‘반값’이 됐다는 점입니다. 이동통신3사가 일제히 갤럭시S22 공시지원금을 최대 60만원으로 늘리면서입니다. SK텔레콤은 기존 17만원에서 62만원으로 늘렸고, 24만·23만원이었던 KT와 LG유플러스도 60만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제조사가 갤럭시S22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이통3사에 주는 지원금 액수를 키웠다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현재 출고가 145만2000원인 갤럭시S22 울트라(256GB)를 단말기 할인방식으로 구매할 경우 최저 76만2000원에 살 수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할인을 받으려면 12만~13만원대 요금제를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합니다만, 할인폭만 놓고 보면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스마트폰이 1년 사이에 ‘중고폰’으로 전락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자료 | 업계 종합, 사진 | 뉴시스]
[자료 | 업계 종합, 사진 | 뉴시스]

비단 갤럭시만의 얘긴 아닙니다. 할인하지 않기로 유명한 아이폰도 가격을 큰 폭으로 낮춘 전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5월 LG유플러스는 당시 최신폰이었던 아이폰13(2021년 9월 출시)의 공시지원금을 기존 18만6000원에서 43만원으로 인상하는 행사를 한시적으로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럼 소비자는 아이폰13을 얼마나 싸게 구입할 수 있었을까요? 출고가 107만8000원이던 아이폰13을 8만9000원짜리 요금제를 6개월 쓰는 조건에 사면 공시지원금 43만원을 적용받아 그 가격이 58만3500원으로 떨어집니다. 출시한 지 7개월 만에 ‘반값폰’이 된 셈입니다.

물론 스마트폰 제조사가 가격을 떨어뜨리는 덴 이유가 있습니다. 제조사들은 신모델을 출시하기에 앞서 이전 모델의 가격을 낮추는 마케팅 전략을 지금까지 고수해 왔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월 2일 최신 모델 갤럭시S23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구형 모델’이 된 갤럭시S22 수요가 줄어들 건 어찌 보면 분명합니다. 그러니 재고를 빨리 털어내려면 가격을 내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1년 만에 중고 된 최신폰

새 스마트폰을 향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1년 만에 가격을 내린 간접적인 요인입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23개월이었던 스마트폰 평균 교체 주기가 2018년엔 33개월로 10개월이 늘어났습니다. 스마트폰 가격이 점점 오르면서 가격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교체주기를 늦추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 자료가 다소 오래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교체주기는 더 길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선 또다른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1년 만에 가격을 ‘반값’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스마트폰 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거품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엔 아이폰을 예로 들어볼까요? 언급했듯 2021년 9월 출시한 아이폰13의 가격은 기본모델 기준 107만8000원이었습니다. 이듬해 10월 7일에 론칭한 아이폰14는 125만원으로 아이폰13보다 17만2000원이 더 비쌉니다. 1년 새 스마트폰 가격이 17만2000원 올라간 셈입니다.

스마트폰 가격에 거품이 껴있다는 건 중고폰 가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스마트폰 가격에 거품이 껴있다는 건 중고폰 가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아이폰14의 최상위 모델인 ‘아이폰14 프로맥스’와 아이폰13을 비교하면 가격 차이가 더 벌어집니다. ▲화면 상단에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다이내믹 아일랜드’ ▲스마트폰을 꺼도 화면에서 최소한의 전력으로 시간과 음악 재생 정보를 알려주는 ‘상시 표시형 디스플레이’ 등 최신기술을 몰아넣은 아이폰14 프로맥스의 가격은 175만원. 아이폰13의 론칭 가격(107만8000원)보다 무려 67만2000원이 더 비쌉니다.

여기에 최근 아이폰13 출고가가 인하했다는 걸 감안하면 격차는 더 커집니다. KT는 지난 3월 22일 107만8000원이었던 아이폰13의 출고가를 74만8000원으로 30.6% 낮췄습니다. 갤럭시S23 출시를 앞두고 아이폰 재고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아이폰14프로맥스와 현재 아이폰13의 가격 차이는 100만2000원에 달합니다. 1년 5개월 만에 이런 가격 차이가 형성됐으니, 소비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만합니다.

새 스마트폰에 거품이 껴있다는 걸 입증할 만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아이폰13보다 구형 모델인 아이폰11과 아이폰12 출고가는 현재 각각 69만9600원·82만5000원입니다. 이를 보면 구형 아이폰의 가격대가 60만~ 80만원대에 꾸준히 형성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갤럭시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갤럭시S21(256GB 기준)의 출고가는 현재 89만98 00원으로 기존 가격(99만9900원)보다 10만100원 인하됐습니다. 지금은 이통3사가 판매를 중단한 갤럭시S20도 2020년 10월 출시한 지 10개월 만에 출고가를 124만원에서 99만원으로 대폭 낮춘 바 있습니다.

갤럭시S20이 다른 구형폰보다 비싸긴 하지만, 당시 브랜드 론칭 10주년을 맞아 평소보다 비싸게 출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갤럭시S20에도 비슷한 인하폭이 적용된 셈입니다.

[자료 | 업계 종합]
[자료 | 업계 종합]

이렇듯 구형 스마트폰은 어떤 브랜드든, 언제 출시했든 큰 차이 없는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최신 스마트폰은 앞서 언급했듯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비싸지고 있습니다. 제조사가 신제품 가격을 한껏 끌어올린 다음 1년만 지나면 ‘고만고만한’ 가격대로 낮추는 판매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이런 스마트폰 시장의 가격 거품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제품의 초기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가 점점 낮추는 걸 ‘스키밍 가격 전략(skimming pricing)’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구매 욕구가 극에 달하는 론칭 초반에 가격을 한껏 높여 판매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건 스마트폰이 충성 고객층이 두꺼워서다. 제조사들이 이를 믿고 ‘배짱 장사’를 하는 셈이라고 봐야 한다.”

어떤가요. 이제 스마트폰 시장에 낀 가격 거품의 크기가 눈에 보이나요? 갤럭시도 이런 거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갤럭시S22가 1년 만에 ‘떨이’가 됐듯, 내년이 되면 갤럭시S23도 신모델 출시를 앞두고 ‘반값 행사’를 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서입니다. 치솟는 물가로 신음하는 요즘, 스마트폰을 사기 전 한번 더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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