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길어지면 실물경제에 악영향
대공황 당시 감산서 악순환 시작
감산→투자실종→실업→소비실종
생산감소 회복하는데 10년 걸려
정부 역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초격차 유지를 위해 인위적인 감산을 하지 않겠다던 삼성전자가 끝내 메모리 반도체 감산을 선언했다. 최근 산유국들과 중국 리튬업계가 생산량을 줄이는 등 세계적으로 감산 바람이 불고 있다. 잇단 감산 선언이 혹시 장기 불황으로 연결되진 않을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더스쿠프가 1929년 터진 대공황의 사례를 통해 감산과 장기불황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세계 경제에 ‘감산 바람’이 불고 있다. 자칫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뉴시스]
세계 경제에 ‘감산 바람’이 불고 있다. 자칫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뉴시스]

■ 감산의 필요조건=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의 감산을 결정했다. 4월 첫째주 삼성전자가 최악의 1분기 실적을 발표했지만, 주가 폭락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감산 결정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량을 줄여서 가격을 끌어올리면 비용이 줄면서 수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감산을 통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 손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체재를 찾기 어렵거나 가격이 비싸서’ 수요를 갑자기 줄이기 힘든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만이 감산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이를 수요의 가격탄력성이라고 한다. 꼭 필요한 필수재는 수요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탄력적이라 하고, 그 반대인 사치재를 탄력적인 재화라고 한다. 1주일 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깜짝 감산을 발표하자 국제유가가 다시 80달러대로 상승할 수 있었던 것도 현재 에너지 체계에서 석유를 대체할 만한 수단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배터리 산업을 보면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이해하는 게 쉽다. 지난 3월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린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연례회의에선 중국 중소 배터리 생산기업들이 늘면서 2025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량이 수요의 4배 가까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기차 배터리는 생산하는 기업들이 너무 많고, 중국 회사들 외에도 한국 등 대체할 수 있는 기업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감산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탄산리튬에서는 감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재 폭락세인 탄산리튬 가격도 방어하고, 전기차 배터리의 감산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호주, 칠레, 중국이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90%를 움켜쥐고 있어서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감산이든 이를 시행하는데도, 다시 증산에 나서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수요에만 가격탄력성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격이 오른다고 즉시 증산할 수 없는데, 이를 공급의 가격탄력성이라고 한다.

주택이나 농산물처럼 공급량을 갑자기 늘리기 힘든 비탄력적인 부문과 달리 반도체 등 제조업은 비교적 탄력적이지만,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조업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체로 반도체 생산라인을 조정해 본격적인 감산 혹은 증산에 돌입하는 데만 3개월이 걸린다.

이번 삼성전자의 감산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는 주기가 있다. 과거에 통용되던 실리콘사이클이 4년을 주기로 봤다면, 최근 많이 쓰는 슈퍼사이클에서는 이 주기를 약 5~7년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어떤 종류의 산업에서든 감산은 결국 고용에 직적접인 영향을 미친다. 고용 동결 혹은 축소 시기에 실업은 늘어나고, 가계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1929년 터진 대공황은 ‘생산감소’가 첫번째 악순환의 고리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29년 터진 대공황은 ‘생산감소’가 첫번째 악순환의 고리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감산의 나쁜 예 ‘대공황’=계획된 감산의 여파도 크지만, 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생산감소는 장기불황으로 연결된다. 대표적인 예는 1929년 대공황이다. 

대공황은 그해 10월 미국 뉴욕 증권시장의 신뢰 붕괴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작됐다. 대공황의 저점을 일반적으로 4년 후인 1933년으로 본다. 이 기간 주가는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4년 동안 46% 감소했다. 도매가격은 32% 폭락하고, 무역량은 무려 70%나 축소됐다. 3.2% 수준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6배 이상 늘어난 24.9%까지 치솟았다.

미국 실업률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면서 2차 세계대전으로 노동인구가 급감하기 전까지 15% 내외를 기록했다. 원인은 갑작스러운 생산감소에 있었다. 대공황 시기 제품 생산이 급감하면서 기업 투자 실종→대량실업→소비 실종이란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던 거다. 

대공황 이후 미국이 만성적인 불황에 시달린 데는 당시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던 허버트 후버의 실정失政이 큰 영향을 미쳤다. 후버가 증시 폭락 사태에서 가장 먼저 손을 본 곳은 노동시장이었다.

후버 정부는 생산감소가 소비감소로 이어지지 ‘악순환’을 막으려면 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기업들은 임금 수준을 유지해 달라는 정부의 압박에는 굴복했지만, 노동자를 위해 일자리 자체를 지켜주진 않았다. 

후버의 두번째 실책은 역시 소비감소를 막기 위해서 외국 제품의 수입을 막자는 주장이었다. 후버는 대공황 발생 6개월 후 일시적으로 주가지수가 회복세를 보이자 “공황이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만개 제품의 관세를 최고 400% 인상하는 내용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후버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문제는 미국의 무역상대국이 이에 맞서 일제히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발생했다. 그 결과, 대공황 4년 동안 미국 무역량의 70%가 실종됐다. 결국 후버는 과잉공급된 재화를 무역으로 해소하는데 실패했고, 고임금까지 유지하는 바람에 대량실업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재화가격이 더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사려는 사람들의 심리도 반전시키지 못하면서 미국을 장기 불황에 빠뜨렸다. 

후버의 뒤를 이은 루스벨트 정부는 대규모 공공사업 등이 포함된 두차례의 뉴딜정책을 시행했지만, 그렇게 큰 효과를 봤다고 보기는 힘들다. 실업률도, 산업생산도, 소비도 극적으로 바꿔놓진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을 장기 불황에서 구해준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무기와 군수품 생산을 최대치로 올리자,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4년 만에 두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이 지금까지 압도적인 경제력 1위를 차지하게 된 데는 전쟁과 재건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된 특수가 있었다. 

■ 감산의 기술=이처럼 감산이 하나의 기업 혹은 산업이 아니라 경제 전체에서 발발하면 대공황 당시의 미국에서처럼 문제가 커진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대공황의 원인을 ▲유동성 축소 ▲디플레이션 기대 ▲금융 붕괴 측면에서 설명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긴축 통화정책을 펼쳐 시중 유동성을 줄이자 투자감소로 이어졌다는 설명이 유동성 축소 이론이다. 가격이 더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구매·투자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불황이 장기화됐다는 게 디플레이션 기대 이론이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가 기업의 대출 여력을 줄여놓은 탓에 기업투자가 쪼그라들어서 대공황이 발생했다는 설명도 존재한다. 결국 핵심은 기업 투자가 실종되고, 소비가 줄면서 장기불황으로 빠지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우리의 상황은 좋지 않다. 우선,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가 대립하면서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무역이 가로막혀 있다. 9일 중국 관영 영자신문인 글로벌타임스는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이 급감한 것은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무기화에 나서면서 글로벌 수급 불균형을 일으킨 게 삼성전자 부진의 이유라면서 “중국은 자체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군이 지난 주말 대만을 사실상 포위하는 형태로 포진하고, 미국은 10일 이지스 구축함을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에 보내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전쟁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과 결합해 세계 무역량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무역량이 5~6%대 증가율을 보였지만, 2023년은 전년보다 3.4% 축소된 1%대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산의 시대에서 중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는 적절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감산의 시대에서 중요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는 적절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미국발 은행 위기로 금융 시스템을 신뢰하던 분위기에 문제가 발생했고, 가격하락을 예측하는 디플레이션 기대심리도 팽배해 있다. 이 때문인지 부동산 거래업체 직방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집값이 향후 더 내려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이 무역보다는 자국내 생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불안요소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반발에도 첨단 반도체만은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기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CEO는 한술 더 떠 석유도 미국 내 생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일 CNN과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석유를 더 생산해야 한다”며 “알래스카 석유 시추 허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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