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병풍의 나라2 전시
시대의 문화 깃들어 있는 병풍
활용 목적에 따라 소재도 달라
공간에 그림 넣어 다른 차원 인식

호피장막도 8폭 병풍, 종이에 채색.[사진=뉴시스]
호피장막도 8폭 병풍, 종이에 채색.[사진=뉴시스]

화장품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의 철학 중 하나는 아마도 ‘관계성’일 거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화장품이란 결국 관계를 위해 사용하는 물품이어서다. 흥미롭게도 아모레퍼시픽의 이런 개성은 그들의 창업자가 만든 미술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본사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지하층부터 2층까지는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상업용 공간을 배치했는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그곳에 있다. 주변의 상업적인 공간을 통해서 흘러들어온 발길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측이 아마도 ‘일상 속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열린 공간, 그리고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장소로서의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얼마 전 이곳에서 ‘조선, 병풍의 나라2’를 관람한 필자는 마음과 몸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있다. 그럼 전시회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언급했듯 ‘조선, 병풍의 나라2’다. 4월 30일까지 미술관1 6전시실에서 진행한다. 

이 전시에선 2018년 ‘조선, 병풍의 나라’에서 소개하지 않은 작품들과 새롭게 수집한 병풍을 다수 내놨다. 조선시대부터 근대기까지의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을 망라해 소개했는데, 근대병풍은 별도로 공개했다.

귀로 10폭 병풍, 종이에 수묵.[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귀로 10폭 병풍, 종이에 수묵.[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병풍엔 그 시대의 문화가 깃들어있다. 민간병풍과 궁중병풍은 활용의 목적이 달라서인지 소재도 다른 경우가 많다. 혹자는 병풍을 인테리어의 한 부분으로 규정하곤 하지만, 그 시대의 감성으로 보면 제사나 공식적인 행사에서만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박물관이 소장한 병풍은 마치 ‘박제’한 것 같았는데, 이곳에서 본 병풍은 좀 더 생동감이 넘치고 신선했다.

자!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호피장막도8폭병풍’은 가로 355㎝, 세로 128㎝ 크기의 8폭 병풍이다. 그중 여섯폭에는 호피 장막만 그려져 있다. 장식으로 쓰인 호피는 기풍이 넘친다. 다만, 이 장막은 실은 호피가 아닌 ‘표범 가죽’을 그린 것이다. 당시 호랑이 가죽이 얼마나 귀한 물품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머지 두폭에는 표피 장막 아래 책상과 각종 중국 고기물을 그려 넣었다. 귀한 것을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제작한 병풍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지금부터다. 병풍 그림 안엔 서첩이 펼쳐져 있는데, 정약용의 차운시다. 차운시는 남의 운자를 써서 지은 시를 의미하는데, 서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산정에서 대작하며 진정국사의 시에 차운(山亭對酌次韻眞靜國師)” “산정에서 꽃을 보다가 또 진정국사의 시운에 차운하다(山亭對花又次眞靜韻).” 마지막 시는 5행 중 2행만 있다.

곤여전도 8폭 병풍, 비단에 채색.[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곤여전도 8폭 병풍, 비단에 채색.[사진=아모레퍼시픽 제공]

특색 있는 병풍은 또 있다. 외국 선교사가 조선의 왕족에게 선물한 세계지도가 그려진 병풍이다. 당시 민중은 기복신앙을 믿고 있었지만 지배층 사람들은 이미 차원이 다른 세계를 인식하며 살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만난 병풍이란 매체엔 다른 차원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병풍이란 공간에 그림을 넣어 다른 차원을 인식하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도 어림잡을 수 있다.

전시를 보다 보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병풍이 지금의 메타버스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스친다. 이렇게 병풍에 숨은 조용하면서도 획기적인 기법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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