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전세대책 힘 없는 이유
당해세 밀려도 조세채권 남아
경매조차 불가능해 출구 없어
특별법 통과 필요한 이유

정부는 급할 때마다 정책을 쏟아냈다. 부동산 정책이 그랬고 전세사기 대책도 그랬다. 한달 새에 추가 대책까지 나왔지만,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필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에 얽힌 주택을 ‘우선매수’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특별법’도 발의됐다. 정부는 과연 전세사기 피해자의 눈물을 어디까지 닦아줄 수 있을까.

전세사기 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특별법’ 제정이 우선이라고 말한다.[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 대책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특별법’ 제정이 우선이라고 말한다.[사진=연합뉴스]

3월 6일 지하철 1호선ㆍ인천 2호선 주안역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추모제가 열렸다. 속칭 빌라왕의 죽음 이후 연이어 터져나온 전세사기 피해에 얽혀든 이들은 이날 눈물과 함께 호소했다.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여전히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거였다.

“전세사기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 거래가 아니라 정책이 만들어냈고, 정부가 방치한 사회적 재난입니다. 정부는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추모제가 끝난 지 4일 만인 3월 10일 정부는 추가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에도 피해자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요구한 대책(우선매수권ㆍ경매중지)은 빠져있었다.

정부 대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세 대출 연장이 가능하도록 시중은행과 협조하겠다. 또 우선 순위인 세금(당해세)을 세입자 보증금보다 후순위에 놓겠다. 6개월 선납해야 했던 임시거주주택의 월세도 매월 납부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

이중에서 주목받은 건 ‘당해세’ 대책이다. 당해세는 주택에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ㆍ상속세 등을 말한다. 원래는 세입자의 확정일자보다 당해세의 부과 기일이 더 늦어도 우선해서 지급해야 했다. 한마디로 개인의 보증금보다 늦게 고지되더라도 국가의 세금을 먼저 가져가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3ㆍ10 전세 대책으로 우선권이 사라졌다. 법정기일이 더 늦은 당해세는 전세보증금보다 뒤로 밀려나 전세보증금이 우선 변제된다. 그럼 이 대책은 모든 전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까. 

■ 한계➊ 법적 공백 =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여기엔 두가지 문제가 숨어 있다. 먼저 법적 공백부터 살펴보자. 정부의 ‘당해세 대책’의 실제 적용일은 4월 1일이다. 이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이 묶인 집이 3월 31일 경매에서 낙찰되면 보증금은 당해세 뒤로 밀린다.

20여일에 불과한 듯하지만, 그 숫자가 적지 않다.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 중 한곳인 인천 미추홀구에선 3월 한달간 매각 기일을 맞이한 주택만 100여건에 달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명은 이렇게 말했다. “정부에 피해 현황을 전수 조사해 달라고 했지만 악성 임대인 공개 법안이 통과됐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해자들이 알아서 센터에 신고해야 한다는 황당한 답변도 내놨다. 피해 상황별로 수립해야 할 대책조차 만들지 않고 있다는 거다.” 

■ 한계➋ 실질적 공백 = 이를 두고 누군가는 ‘4월 1일부터는 당해세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니 그럼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 역시 그렇지 않다. 세금엔 숨은 걸림돌이 적지 않다. ‘당해세’는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하지만 ‘당해세’ 외 세금도 부동산에 걸려있다. 바로 이 세금을 가져갈 권리가 ‘조세 채권’이다. 문제는 당해세가 보증금보다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더라도 ‘조세 채권’은 그대로인 데다, 이게 훨씬 더 무겁다는 점이다. 

‘김대성피해자대책위원회’의 이철빈 위원장은 2022년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대성에게 3건의 조세 채권이 걸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2억5000만원짜리 1건, 30억원짜리 2건이다. 30억원짜리 조세 채권에 묶여있는 당해세는 각각 250만원 정도로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당해세의 순서를 전세보증금의 뒤로 밀었지만, 조세 채권에 묶여 있으면 효과는 말짱 도루묵으로 전락한다.[※참고: 김대성피해자대책위는 서울 수도권에 1000채 이상의 집을 소유한 집주인 김대성으로 인해 피해를 본 세입자들의 단체다. 김대성은 갑작스럽게 사망했던 ‘빌라왕’의 실명이다.] 

더 큰 문제는 경매 1건당 조세 채권 1건이 대응된다는 데 있다. 가령,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이 묶인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낙찰 금액으로 조세 채권을 해결할 수 없다면 법원은 경매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 무의미한 경매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 위한 조치다. 그러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뺄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조세 채권이 버티고 있는 한 집은 진공 상태에 갇힌다. 

이렇게 진공 포장된 집에 살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은 어떤 상황일까. 일단 피해자들은 전세 대출을 연장해야 한다. 3ㆍ10 전세 대책으로 은행이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대출을 연장해줘야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강제 조치는 아니다. 대출 연장도 ‘상수’가 아닌 ‘변수’란 얘기다. 

대출이 연장됐다고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집주인이 없는 주택은 애물단지가 된다. 집이 망가지기 시작하면 원래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해야 한다. 집주인의 재산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경우엔 수리를 요청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하지도 않다. 당장 집을 쓰고 있는 세입자가 집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내 집’도 아닌 집에 들어가야 할 비용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일 피해자들이 국회에 모였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30일  대표발의한 ‘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특별법의 골자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던 ‘정부의 우선 매수’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판명된다면 정부는 해당 주택을 자산관리공사 등을 통해 사들이고 다시 팔거나 공공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세입자들은 경매 결과에 마음 졸일 이유가 사라진다. 

정부가 문제의 주택을 우선 매수하는 데 정부가 파산할 정도로 과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2021년, 2022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울ㆍ경기 매입임대주택에 투입한 추정 비용은 각각 3조원, 4조4000억원에 달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주택 가격을 2억5000만원이라고 단순 가정해보면, 2022년 매입임대주택 추정 예산으로 1만7600호를 감당할 수 있다. 특별법이 통과돼 정부가 우선 매수권으로 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한다고 가정했을 때 비현실적 금액은 아니라는 거다. 

연이은 대책에 피해자들이 정말 원했던 대책은 빠져 있었다. 정부가 여러 차례 대책을 내놓으며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피해자에게 와닿은 건 없었다. 결국 정부가 매번 내놓는 대책마다 빠뜨렸던 내용을 포함한 ‘전세사기 특별법’까지 나왔다.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말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어떤 응답을 내놓을까. 이번에도 핵심은 비껴간 ‘추가 대책’일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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