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킴, 그리고 그리다 전展
무겁지만 심플한 선과 색 구현
욕심과 잡담 솎아낸 회화들
씨킴의 능숙함 엿볼 수 있어

오랜만에 흥미로운 전시회가 개막했다. 제주도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에서다. 전시명은 ‘그리고 그리다 전展 Draw and Draw’. 작가는 필자가 몇차례 소개한 씨킴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씨킴은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지금까지 설치작품을 주로 공개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변신이라면 변신이다. 

CI KIM, Untitled, 2022, oil pastel on paper, 29.7×41.9㎝.[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CI KIM, Untitled, 2022, oil pastel on paper, 29.7×41.9㎝.[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작가 씨킴은 자신의 작품에 철학과 생각, 그리고 삶을 녹여낸다. 사회를 풍자하기보단 에세이를 담으려 한다. 이런 기법은 요즘 시대를 상징하는 트렌드이자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탄생한 배경이다. 최근엔 내러티브(narrative·연결성을 갖는 서사)나 사상을 작품 속에 잘 넣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미학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월드와이드웹(www)과 함께 등장한 현대 아트시장에선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생각을 전달하는 작가가 인정을 받는다. 이는 공평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는 인종, 국력, 나이, 경력 등을 초월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설私說이 약간 길었다. 다시 씨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설치작품과 달리 회화작품은 2차원적이다. 단순한 캔버스에 물감을 입혀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브제(상징적 물체)나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온 씨킴은 어떤 방식으로 회화를 완성했을까. 

흥미롭게도 그의 회화는 단순했다. 아크릴 물감과 크레용 등의 재료를 활용해 무겁지만 심플한 선과 색을 구현했다. 어떤 면에선 욕심을, 또다른 면에선 잡담을 솎아낸 듯하다. 마치 잡다한 글을 늘어넣고 간결하게 정리한 느낌이다. 

CI KIM, Untitled, 2018, crayon and pencil on paper, 32×44㎝.[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CI KIM, Untitled, 2018, crayon and pencil on paper, 32×44㎝.[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씨킴은 작가노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느날 한 작가가 내게 물었다. 가장 처음 그렸던 그림이 무엇이었느냐고. 잠시 기억을 더듬던 나는 대답했다. 원, 동그라미였다고. 완전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 비뚤어진 동그라미 주변에 선을 긋고 또 긋고 이유도 모른 채 끊임없이 덧그렸다고.”

선은 심플하고, 원은 무심하다. 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이 없으면, 선뿐만 아니라 원도 그릴 수 없다. 그만큼 ‘단순한 작품’을 그릴 때엔 능숙함이 필요하다. 심플함의 미학을 보여준 이번 작품전을 통해 씨킴이 ‘능숙함’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씨킴은 이번 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어디에서부터 작품을 그려가기 시작했는지’를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일기를 쓰듯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잊고 있던 또다른 내 모습을 마주했다. 그 위에 내 꿈을 펼쳐나갔다.”

CI KIM, Untitled, 2023, mixed media, 45.8×60.7㎝.[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CI KIM, Untitled, 2023, mixed media, 45.8×60.7㎝.[사진=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공]

작가에게 ‘시간의 소환’은 중요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를 좇는 탐구는 작품을 만드는 데, 더 나아가 인생을 가꾸는 데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잘 살아왔든 그렇지 않든 삶의 어느 지점에 서서 자신과 진솔하게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씨킴의 전시회를 통해 본인을 찾는 길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전시는 6월 9일까지 열린다.

김선곤 더스쿠프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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