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관련 질문과 오해들
“전세사기 피해 왜 세금으로 메우나” 
등기부등본만 봤어도 사기 안 당해
전세사기 피해자가 그걸 몰랐을까
등기부등본에 남지 않는 기록들 
국가 시스템 활용해도 확인 못해 
누구든 전세사기에 걸려들 수 있어
법적‧제도적 빈틈 국가가 메워야 

#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요구에 혈세를 투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피해를 왜 세금으로 메꿔야 하느냐는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온다. 또 누군가는 한발 더 나아가 “등기부등본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전세사기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과연 그럴까. 현 전세 시스템이 그렇게 완벽할까. 그럼 ‘전세사기꾼’은 완벽한 법과 제도 위에서 사기 행각을 벌여온 걸까. 더스쿠프가 이 질문의 답을 풀어봤다.

정부는 전세 사기 대응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피해자들은 오히려 정책 대상자의 문턱을 높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전세 사기 대응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피해자들은 오히려 정책 대상자의 문턱을 높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다섯번째 전세 사기 대책이 나왔다. 이번엔 특별법 형식을 취했다. 정부는 4월 27일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피해자가 ‘직접 매수(경매 우선매수권)’하거나 ‘계속 거주(LH 매입임대)’할 수 있는 길을 터놨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부는 피해자들이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채권 매입’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선을 넘는 것’ 혹은 ‘혈세 투입’이라는 말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단칼에 거절했다.

애초 피해자들은 ‘계약이 끝나면 전세금을 반환한다’는 계약서를 믿고 거래했다. 정부가 제시한 표준 임대차계약서에 있는 내용이다. 그 계약서를 토대로 ‘온전한 독’에 물을 담아 놓고 계약이 끝나면 그 물을 은행으로 옮겨놓거나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DAY-계약 고민하던 그날

하지만 멀쩡한 줄 알았던 독의 밑이 전세사기꾼에 의해 빠져버렸다. 이제 ‘밑 빠진 독’을 채워야 하는 건 피해자의 몫으로 남았다. 이 지점이 피해자들이 지적하는 포인트다. ‘독의 밑’이 빠져버린 게 피해자만의 문제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등기부등본을 제대로 확인했어야지” “국가가 왜 개인 간 거래의 책임을 져야 하냐”는 거다.

정말 ‘등기부등본’을 제대로 확인한다면 피할 수 있는 문제였던 걸까. 한발 더 나아가 건축물대장, 실거래가까지 살펴봤다면 전세사기꾼의 손아귀에 걸려들지 않았을까. 세입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확인해 보자.

■ 표제부 = 2020년 6월 전세세입자 A씨가 공인중개사로부터 전세 매물 B집을 소개받았다고 가정하자. 먼저 무엇을 검토할 텐가. 전세 수요자라면 십중팔구 등기부등본(비주얼❶)을 보여달라고 할 거다. 앞장인 표제부表題部부터 살펴보자. 여기에선 ‘전유專有 부분(일종의 소유 항목)’이 중요하다.

빌리려는 전셋집의 ‘건물’ 면적과 ‘토지’ 면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 면적을 꼼꼼히 봐야 한다. 집의 가격을 계산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서다. B집의 경우, 전체 대지의 11.2%를 이 집의 주인이 가지고 있다. 10호가 있는 이 건물의 세대수와도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로 전세 사기를 피하기에는 부족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로 전세 사기를 피하기에는 부족했다.[사진=뉴시스]
[비주얼➊]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소유’와 ‘빚’이다. 2020년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 계약을 맺을 당시 집주인 윤민철씨는 2011년부터 해당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전세 계약을 맺은 직후 집주인이 바뀌고, 새 집주인에게 체납액이 있을 거라는 건 2020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비주얼➊] 등기부등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소유’와 ‘빚’이다. 2020년 전세사기 피해자가 전세 계약을 맺을 당시 집주인 윤민철씨는 2011년부터 해당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전세 계약을 맺은 직후 집주인이 바뀌고, 새 집주인에게 체납액이 있을 거라는 건 2020년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 소유권(갑구) = 전유 부분에 이어 등기부등본의 갑구(비주얼❶붉은색 박스)를 확인해 보자. B집은 2010년 만들어졌다. 2011년 소유권을 획득한 현재의 집주인(윤민철)은 지금까지 이 집을 갖고 있다. 소유권을 확인했으니 이제 집에 있는 빚은 없는지 확인해 보자.


■ 빚(을구) = 등기부등본의 을구(비주얼❶파란색 박스)에는 ‘빚’과 관련한 내용이 적혀있다. 흔히 말하는 ‘근저당’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2010년에 근저당이 있었지만 2011년 모두 사라졌다.

이 집엔 더 이상 ‘빚’이 없다는 거다. 근저당이 없으니 전세 수요자로선 ‘전세보증반환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가능하다.[※참고: 전세보증반환보험은 전세금으로 낸 돈을 계약 종료 후에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책임지는 보험을 말한다.]
 
등기부등본을 모두 확인했다. 언급했듯 이 집엔 빚이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A씨는 계약서에 특약을 넣었다. ‘전입신고ㆍ확정일자를 받기 전까지 근저당을 받지 않으며 그 이전에 근저당을 받을 경우 계약금을 반환하고 계약은 무효로 한다.’ 이 정도면 임차인이 모르는 빚을 임대인이 몰래 받을 걱정은 없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했고 안전장치도 걸었으니 다음 서류로 넘어갈 차례다. 건축물대장이다.

■건축물대장(비주얼❷) = 건축물대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위반건축물’이다. 위반건축물이라면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지면 세입자가 집을 비워야 한다. 그럼 건축물대장을 통해 위반건축물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까. 있다. 위반건축물일 경우, 건축물대장의 1쪽 오른쪽 상단에 ‘위반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는 도장이 찍혀 있다. 다행히 B집의 건축물대장엔 그런 표식이 없다.

■전세가율(비주얼❸) =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모두 ‘깨끗’하다. 이제 B집이 혹여 ‘깡통전세(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집)’는 아닐지 체크할 차례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를 확인하는 방법은 쉽다. 전세가는 지금 체결하는 금액이고 ‘집값’은 국토교통부가 제공하는 실거래가를 확인하면 된다.


꼼꼼하게 살펴보니, 2개월 전 B집과 면적이 같은 호실이 전세보증금보다 1200만원 많은 가격에 팔렸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는 90% 정도다. ‘빚’이 없는 데다 집값도 전세보증금보다 높다. 이쯤 되면 B집은 ‘깡통전세’와 무관하다.

[비주얼➋] 건축물대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건 위반건축물 여부다. 건축물대장의 표제 옆에 표기되거나 위반건축물로 등록된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주택은 위반건축물이 아니었지만 전세사기 수단으로 사용됐다.
[비주얼➋] 건축물대장에서 확인해야 하는 건 위반건축물 여부다. 건축물대장의 표제 옆에 표기되거나 위반건축물로 등록된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주택은 위반건축물이 아니었지만 전세사기 수단으로 사용됐다.
[비주얼➌]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로 계산한다. 전세 계약 시점과 가장 가까운 날짜에 거래된 매매가를 기준으로 전세가율을 계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감정가로 계산할 수도 있지만 감정평가사를 통해 감정가를 받으려면 최소 3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또 이번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감정평가사까지 전세사기에 가담한 정황이 포착됐다.
[비주얼➌]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로 계산한다. 전세 계약 시점과 가장 가까운 날짜에 거래된 매매가를 기준으로 전세가율을 계산하는 게 일반적이다. 감정가로 계산할 수도 있지만 감정평가사를 통해 감정가를 받으려면 최소 3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또 이번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감정평가사까지 전세사기에 가담한 정황이 포착됐다.

■ 중개대상물 설명서 = 마지막으로 공인중개사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중개대상물 설명서’를 보자. 이는 대부분 ‘집 상태’와 관련이 있다. ‘중개대상물 설명서’에서 내 보증금과 관련한 항목은 ‘권리관계’다. 토지와 건축물의 소유권, 토지와 건축물의 소유권 외 권리 사항(근저당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등기부등본과 크게 다르진 않다. 이 때문에 등기부등본이 알려주지 않는 내용은 ‘중개대상물 설명서’에서 확인할 수 없다. 아울러 ‘민간임대주택에 등록했는지’ 여부도 여기서 체크하는 게 가능하다. 등록임대주택은 보증금이 기준을 밑돌지 않거나 임차인이 거부하지 않는 한 전세보증반환보험에 가입돼 있다. 정부가 규정한 내용이다.

자! B집 주인(윤민철)과 전세계약을 체결한 A씨는 이처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체크했다. 그런데도 ‘전세사기’ 사건에 휘말려 전세보증금을 모두 떼일 처지에 몰렸다. 어떤가. 이래도 ‘등기부등본을 떼보면 알 것 아니냐’며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세울 수 있겠는가.

모든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그렇듯, 전세 시스템에도 허점이 있다. 등기부등본에 변동이 생겼을 때 전세 수요자에게 따로 알려주는 친절한 시스템 따윈 없다. 전세 수요자가 변동 사항을 매일 떼보지 않는 한 위험요인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몇주 혹은 몇개월 만에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이 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DAY-전세사기 당한 그날

A씨의 사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앞선 절차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사실 B집의 주인은 등기부등본에 적시된 윤민철씨가 아니었다. 이미 ○○하우징으로 변경된 상태였고, 그 주인이 바로 ‘전세사기꾼’이었다. A씨는 모든 절차를 꼼꼼하게 밟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A씨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소유권(갑구) = 자! 다시 등기부등본(비주얼❹붉은색 박스)을 보자. 소유자는 세입자가 모르는 사이 윤민철에서 ○○하우징으로 바뀌어 있다. 이 사업체에 빚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혹시 을구를 확인하면 새 집주인에게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진 않을까.

■ 빚(을구) = 을구(비주얼❹파란색 박스)에도 아무런 변동이 없다.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전 집주인(윤민철)과 현 집주인(○○하우징)이 소유권 이전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등기부등본엔 곧바로 흔적이 남지 않는다.

현행법에 따르면, 30일 이내에 실거래를 신고해야 하는데, 등기부등본은 그 신고와 함께 변경된다. 그렇다고 거래가 이뤄진 사실을 세입자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 집주인도, 현 집주인도, 하물며 공인중개사도 세입자에게 ‘집주인이 바뀌었다’고 알려줄 법적 의무는 없다.

[비주얼➍] ○○하우징 자산을 압류한다는 결정은 2022년 1월에야 이뤄졌다. 집주인 윤민철에서 ○○하우징으로 바뀐 시점보다 1년 반이나 늦다. 피해자가 ○○하우징의 국세 체납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2020년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비주얼➍] ○○하우징 자산을 압류한다는 결정은 2022년 1월에야 이뤄졌다. 집주인 윤민철에서 ○○하우징으로 바뀐 시점보다 1년 반이나 늦다. 피해자가 ○○하우징의 국세 체납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2020년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빚 역시 마찬가지다. 이 집에 걸린 빚이 아니라면 새 집주인의 빚이 등기부등본에 남을 리가 없다. 현 집주인이 소유권 계약을 체결한 후 근저당을 잡았을 경우에도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 집주인이 다른 집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이 집의 등기부등본만으로 알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다. 세입자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려도 피해자의 보증금은 집에 묶여 있고 집값이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계약을 맺은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정부가 특별법을 발의한 다음날인 4월 28일.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보증금반환채권의 정부 매입’을 대책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들이 ‘보증금반환채권 매입’으로 전세보증금 전체를 보전받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피해자들은 알고 있다.

다만 정부가 ‘보증금반환채권’을 매입하면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을 정부와 나눌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요구에 정부는 ‘선 넘는 대책’이라고 답했다. 피해자들이 넘었다는 ‘선’은 대체 어디에 그어져 있는 걸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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