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노노재팬 운동 4년의 기록
실적 악화에 인력 감축
불매운동 여파 수그러들고
매출 등 실적 회복하자
사회공헌 줄이고 배당 늘려
마케팅 본격화한 기업들
불매운동 무엇을 남겼나

# “노노재팬(No No Japan).” 4년 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확산했다. 일본으로 가는 여행객이 급감했고, 일본 관련 기업 제품 매출액이 고꾸라졌다.

#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방일 한국인 수는 불매운동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 일본 제품 소비가 회복하면서 관련 기업들은 다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7일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렇다면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남긴 것은 뭘까.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한국에선 ‘노노재팬’ 운동이 확산했다.[사진=뉴시스]
2019년 7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한국에선 ‘노노재팬’ 운동이 확산했다.[사진=뉴시스]

2019년 7월 한일 관계가 급랭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하던 부품과 소재를 규제했기 때문이다(수출규제 조치). 일본의 경제보복에 한국 소비자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특히 당시 일본 유니클로 재무담당 임원이 “(한국인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 조롱성 발언이 알려지면서 ‘노노재팬’ 운동에 불이 붙었다.

유니클로뿐만 아니라 아사히‧기린 등 일본 맥주 판매량이 급감했다. 도요타‧혼다‧닛산을 비롯한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여행도 불매운동 중 하나로 포함되면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 수요가 급감했다.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 보지 않습니다”란 취지로 출발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방위로 확산한 셈이다. 


그로부터 3년 9개월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종적을 감췄던 일본 제품들이 다시 매대를 채웠고, 그 결과 매출이 회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니클로(에프알엘코리아)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전년(5842억원) 대비 120.9% 늘어난 7042억원을 기록했다. 종전 1조원대 매출액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영업이익은 큰 폭으로 개선됐다. 불매운동 직후인 2020년 883억원 적자를 냈던 유니클로는 지난해 114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생활용품 전문기업 ‘무인양품’은 2020년 627억원(2019년 1242억원)으로 고꾸라졌던 매출액이 지난해 1238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영업적자는 지속했지만 그 폭은 감소했다(2000년 117억원→2022년 43억원).

[※참고: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의 최대 주주는 모두 일본 기업이다. 유니클로는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과 롯데쇼핑이 각각 지분 51.0%, 49.0%를 보유하고 있다. 무인양품은 일본 양품계획과 롯데쇼핑이 지분 60.0%, 40.0%를 나눠 갖고 있다.]

급감했던 일본 맥주 판매량도 회복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 맥주를 수입‧판매하는 롯데아사히주류의 실적을 보자. 롯데아사히주류는 지난해 전년(172억원) 대비 87.2% 증가한 322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2019년 이후 줄곧 적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엔 흑자 전환(35억원)에도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아사히주류는 2021년 일본에서 출시돼 인기를 끈 ‘아사히 슈퍼드라이 생맥주캔’을 5월 1일 한국에 출시했다. 마케팅을 본격화하는 건데 그만큼 시장이 불매운동의 여파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회사가 ‘아사히’라는 이름을 단 일본 맥주 신제품을 선보이는 건 불매운동 확산 이후 처음이다.

일본을 찾는 여행객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 3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46만6899명으로 불매운동이 확산하기 전인 2019년 3월(58만5586명)의 79.9% 수준을 회복했다. 일본을 찾은 외국인 중 한국인의 비중은 25.6%로 전체 국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4월 29일부터 입국자의 코로나19 백신접종증명서‧음성확인서 제출 의무를 폐지하면서 일본을 찾는 한국인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5월 8일부터 규제를 폐지할 방침이었지만 5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치를 앞당겼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부터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여행객이 급감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불매운동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실패로 규정해야 할까. 하나씩 살펴보자. 사실 일본 여행이 다시 불붙고, 불매운동이 수그러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불매운동의 경우, 핵심 지지층은 유지되더라도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비할 때에는 가치나 의미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용성’을 따질 수밖에 없어서다.

일본 제품 소비가 회복하면서 관련 기업들은 다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일본 제품 소비가 회복하면서 관련 기업들은 다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영애 인천대(소비자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비자는 ‘구매효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불매운동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가치’보다 경제적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진 셈이다.”

여기에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 기조가 달라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영애 교수는 “2019년 당시와 달리 현 정부는 일본과 유화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같은 외생변수도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짚어봐야 할 건 있다. 2019년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할 때, 한편에선 “불매운동을 시작할지 말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다국적기업이 부쩍 늘어난 21세기 시장에서 ‘일본산産’을 온전히 일본 기업이나 일본 브랜드로 볼 순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되레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에 부메랑을 날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역시 예견됐던 부작용이 발생했다.

불매운동 이후 유니클로는 점포 수를 50여개 줄였다. 2019년 180여개였던 점포 수는 현재 128개로 줄었다. 매장 수가 감소한 만큼 고용도 줄었다. 2019년 1355억원이던 유니클로의 인건비 지출은 지난해 854억원으로 감소했다.

롯데아사히주류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불매운동이 확산하자마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두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60%가량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2019년 93억원이던 인건비 부담은 지난해 24억원으로 감소했다. 

이는 다국적기업 등이 늘어난 시장 환경에 맞춰 불매운동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기업의 경우 고용과 창출 유지가 기업의 책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경우 인력 구조조정에서 좀 더 자유롭게 판단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결국 거기에 고용된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기업의 행태도 짚어봐야 한다. 불매운동 이후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손실을 상쇄한 이들은 매출이 회복하자 주주 배당을 큰폭으로 확대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 1400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400억원 증가한 액수다. 유니클로 지분 51.0%를 보유한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은 지난해 714억원의 배당금과 로열티 148억원을 챙겼다. 

반면 사회공헌 비용은 큰 폭으로 줄였다. 불매운동 확산 이후 ‘마케팅’ 대신 ‘사회공헌’에 주력하겠다던 기조가 달라진 셈이다. 유니클로는 2019년 6억원에 불과하던 기부금을 2020년 41억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지난해엔 이보다 23억원 줄어든 18억원에 그쳤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유니클로와 같은 다국적 기업은 현지 소비자의 국민 정서나 가치를 좀 더 적극적으로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애 교수는 “일본계 기업이라도 하더라도 국내에서 인력을 고용하고 국내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기업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두루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노재팬’ 이후 4년, 달라진 게 무엇인지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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