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열리며 외래관광객 급증
문 닫았던 매장들 하나둘 복귀
메인거리 노점들로 야시장 방불
골목 안쪽은 여전히 공실 가득

명동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어두컴컴했던 매장엔 다시 불이 켜지고, 한산했던 거리는 순식간에 야시장으로 바뀐다. 인적 드문 거리였던 이곳에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다. 메인스트리트에서 골목 하나 들어가면 여전히 임대문의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상가건물들이 마치 유령도시 같다. 관광명소, 명동의 두 얼굴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명동의 유동인구가 크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명동의 유동인구가 크게 증가했다.[사진=뉴시스]

“하늘길 열릴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3월, 대선 직후 명동에서 만난 한 상인은 한숨을 내쉬며 얼른 코로나19 시국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먹고살 길 찾아 생업을 접고 하나둘 떠나는 상인들을 볼 때면 남 일 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그의 한숨이 하루가 다르게 깊어졌던 건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명동상권에 깊은 침체가 내려앉은 탓이었다. 그렇다면 1년이 흐른 지금의 명동은 어떨까. 봄볕이 내려앉은 어느 금요일 오후 3시, 명동 거리로 들어가 봤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6번 출구로 나오면 쇼핑몰로 운영하다 2015년 호텔로 리뉴얼한 ‘밀리오레 호텔 서울 명동’이 가장 먼저 명동 입성을 반긴다. 주말마다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지던 무대는 관광객들의 휴식 장소가 된 지 오래인데, 이날도 서너명의 관광객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맞은편 타비빌딩은 2021년 1월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이 나간 자리가 여전히 공실로 남아 있다. 이 건물 1층부터 4층까지 사용하던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유니클로 플래그십 스토어였지만 명동상권의 침체와 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파로 10년 만에 문을 닫고 떠났다. 그 뒤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4년부터 단 한번도 ‘전국에서 가장 비싼 땅’ 타이틀을 놓치지 않고 있는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은 외관 정비에 한창이었다. 이 매장을 시작으로 명동의 메인스트리트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데, 1년 전엔 황량하기만 했던 이곳에 전에 없던 활기가 감돌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여행 가방을 끄는 외국인 관광객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었다. 그들은 낯선 나라의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오갔다. 다양한 언어들이 들리는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였다. 코로나19 이전 같으면 가는 곳마다 중국어 일색이었는데 일본어·영어 등이 뒤섞여 들리고 있었다. 

엔데믹(풍토병·endemic) 전환으로 국가 간 하늘길이 열리고, 지난해 10월엔 한국과 일본 간 무비자 자유여행이 재개된 영향이 컸다. 실제로 올해 1~3월 한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일본이 35만3611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미국(18만1754명)과 대만(16만951명)이 이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일본(5493명)은 6337.5%, 미국(4만8383명)은 275.7% 증가했다(이하 한국관광공사). 

그렇다고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없는 건 아니다. 3월 1일부터 중국 입국자 검역 조치가 완화하면서 중국에서도 14만4220명이 한국을 방문해 전년 동기(4만967명) 대비 252.0% 늘었다.

늘어난 관광객들 덕에 문을 닫았던 명동의 매장들도 하나둘 재오픈을 하고 있다. 지난해 초 명동점을 폐점했던 아디다스는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ZARA)’가 있던 엠플라자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하며 명동에 다시 돌아왔다. 아디다스 명동 플래그십스토어는 2501㎡(약 757평)로 국내 최대 규모다.

화장품 브랜드 로드숍도 속속 복귀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는 아직 비교하기 이르지만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K-뷰티를 경험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다시금 이어지고 있다. 간판만 남겨뒀던 토니모리 1호점은 지난해 하반기 재오픈하며 다시 손님맞이에 나섰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좋은 마스크팩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올마스크 스토리’의 매장 안에는 손님들로 빼곡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에 치인다”는 중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인과 모처럼 쇼핑하러 명동에 왔다는 장명숙(가명)씨는 “명동상권이 살아난 건 다행이지만 이젠 정비도 좀 필요해 보인다”면서 “노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 정작 내국인들의 불편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토로와 함께 한껏 달라진 명동 풍경을 실감하며 명동예술극장 앞에 다다르자 이번엔 가로로 길게 늘어선 노점상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최근 붐이 일어 채널만 돌리면 등장하는 여행프로그램에서 본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야시장 풍경이 눈앞에 서서히 펼쳐지고 있었다.

화려한 불쇼로 호객을 하는 스테이크부터 앙증맞은 과일찹쌀떡, 다코야키, 추로스, 떡볶이, 탕후루 등 인기메뉴를 판매하는 노점 앞엔 주문하는 관광객과 구경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한줄로 띄엄띄엄 있던 노점들이 보행로만 남겨둔 채 두줄로 빈틈없이 늘어선 것이 명동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명동예술극장 앞엔 단체 관광객 한 무리도 보였다. 인솔자는 기다란 막대기 끝에 곰돌이 인형을 달아 관광객들을 이끌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귀환을 알리는 환전소 앞도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이처럼 겉으로 보이는 명동상권 메인스트리트는 서서히 회복하고 있지만, 몇걸음만 옮겨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졌다. 골목 안쪽은 몇년 전과 다름없이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코로나19로 임시휴업 중이라는 안내문을 내건 유명브랜드 키즈 매장은 그대로이고,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은 매장들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 골목은 마치 시간이 멈춘 유령도시와도 같았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전부였고, 실제로 이따금 몇몇 사람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 담배를 피우고 다시 자리를 뜨길 반복했다. 

골목 안엔 여전히 공실이 넘쳐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골목 안엔 여전히 공실이 넘쳐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명동상권의 중대형 상가(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 330㎡ 초과) 공실률은 여전히 높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공실률은 43.5%로, 서울 평균 9.1%보다 약 5배 높다.

2021년 4분기 50.1%와 비교하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절반에 가까운 건물들이 공실로 남아 있다. 그나마 소규모 상가(2층 이하면서 연면적 330㎡ 이하) 공실률이 50.3%에서 21.5%로 낮아진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음식점을 하는 우숙경(가명)씨의 봄도 아직 오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주말에만 장사를 해 온 그는 엔데믹 기대감에 가게를 늘렸다. 옆 가게를 얻어 외국인들이 좋아한다는 치킨을 팔았지만, 기대만큼 손님이 오진 않았고, 대신 빚만 쌓였다. 결국 그의 치킨집은 잠정 휴업에 들어갔다.

우씨는 “이제 명동상권이 좀 살아나나 싶어서 가게를 확장했는데, 잘되는 집만 잘되나 보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불야성을 이루는 메인스트리트의 노점들과 달리 골목골목의 자영업자들에겐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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