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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국채 수익률 관리폭 넓혀
긴축 전환 조건 임금 3% 상승
최저임금 7년 연속 3%대 올려

일본은행이 최근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상한을 1%까지 확대했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긴축’으로 받아들였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를 종료하는 시점을 예측하려면, 환율이나 물가보다는 임금 상승률을 봐야 한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인 상황에서도 2016년 이후 최저임금을 3%대 이상으로 밀어붙인 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 전광판. [사진=뉴시스]
일본 닛케이225 지수 전광판. [사진=뉴시스]

■ 세번째 ‘사실상 긴축’=지난 7월 28일 일본이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지 10년 만에 세번째 ‘사실상의 긴축’을 선언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수익률 변동폭을 ±0.5%로 유지하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 상한을 최대 1%까지 용인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이 긴축 프로세스를 시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엔화 가치와 일본 국채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일본의 단기 기준금리는 여전히 -0.1%다. 


먼저 일본은행의 특이성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기준금리는 그대로 두고,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통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수익률 통제 정책은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을 정해진 범위에서 고정하고, 이보다 수익률이 더 높거나 낮으면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무제한 매입 혹은 매도해 허용 범위 내로 조정하는 정책이다.

일본은행은 경기 부양을 이유로 자국 주식시장에서 직접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매입한 세계 유일의 중앙은행이기도 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당시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가 증시 직접 개입을 시작했다. 이후 구로다 하루히코 전 총재, 올해 4월 취임한 우에다 가즈오 현 총재 체제에서도 ‘수익률 관리’ ‘증시 직접 개입’이라는 일본은행의 실험은 유지되고 있다.

일본의 ‘사실상 긴축’ 결정은 2018년 7월, 2022년 12월에 이어 세번째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와 디플레이션을 끝내기 위해서 양적·질적 통화완화(QQE) 정책을 시작한 것은 2013년 4월이다.

지난 4월 취임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체제에서도 ‘수익률 관리’ ‘증시 직접 개입’이라는 일본은행의 실험은 유지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4월 취임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체제에서도 ‘수익률 관리’ ‘증시 직접 개입’이라는 일본은행의 실험은 유지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 10년물 국채의 수익률 상하한을 0% 부근으로 설정해 관리하는 수익률 곡선 통제 정책(YCC·Yield Curve Control)을 시작했다. 2018년 7월에는 수익률 변동 폭이 좁아 시장 거래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목표를 ‘±0.1%포인트의 약 2배’로 재지정했다. 명료하게 설명하면 ±0.2%다.

여기서 서구권과 일본은행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전 총재는 변동폭 목표를 2021년 3월 ±0.25%로 확정했고, 2022년 12월에 이를 ±0.5%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로다 총재는 긴축의 시작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금리 인상도 아니고, 완화정책의 출구 조치도 아니다”고 부인해 사실상의 긴축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노구치 아사히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위원은 지난 6월 오키나와 지역 지도자들과의 회의에 참석해 “지난해 12월 (10년물 국채 수익률 변동폭 목표치를) ±0.5%로 확대했다”며 “물가 2%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장기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유지돼야 하지만, 금리를 억제하는 것도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조치가 긴축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 일본 긴축의 조건=일본은행이 단계적으로 수익률 곡선 통제 정책, 양적완화 정책을 포기하고 세계적인 긴축 대열에 낄 수 있으려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본이 결국 긴축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건 시장의 왜곡 때문이다.

오랜 기간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자산시장, 특히 일본은행의 개입 규모가 큰 채권과 주식시장에선 상당한 왜곡이 발생했다. 

일본 긴축의 첫번째 조건은 연간 물가상승률 2%다. 디플레이션이 확실히 끝나야 다음 행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엔화 가치하락이 수입 물가에 영향을 미쳐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의 지지율이 지난 7월 출범 후 최저치인 35.0%를 기록한 이유 중 하나도 물가 상승이었다.

일본의 긴축 조건은 인플레이션 2%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진은 일본은행 전경. [사진=뉴시스]
일본의 긴축 조건은 인플레이션 2%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진은 일본은행 전경. [사진=뉴시스]

지난 7월 요미우리신문의 지지율 조사에서, 응답자의 79.0%가 정부의 물가 상승 억제 정책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의 6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했지만, 일본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하반기부터는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화정책만으로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물가 2%의 안정적인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임금 상승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면서 “물가상승률 2%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상승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우에다 총재도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으로 2%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려면 임금도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일본 긴축의 두번째 조건은 연간 임금 상승률 3%다. 비둘기파에 속하는 노구치 아사히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위원은 지난해 4월 “일본은행이 초완화정책을 전환하려면 임금 인상률이 반드시 3% 가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최저임금 다루는 방법=경제 매체 로이터는 지난해 10월 “일본이 초저금리에서 벗어나는 방아쇠(트리거)는 환율이 아닌 임금 상승”이라고 보도했다. 구로다 전 총재도 지난해 12월 참의원 연설에서 “내년 봄 노사 임금협상에서 과거보다 높은 기본급 3% 인상이 이뤄지는지 주목하겠다”며 “임금 인상이 본격화되면,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가계 소득이 개선돼 총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의 바람대로 올해 봄 큰 폭의 임금 인상이 있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연합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에 따르면 올해 주요 회사 노조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3.58%였다.

올해 5월 일본 근로자들의 명목 소득도 전년 동월 대비 2.5% 증가했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임금이 3% 이상 늘어나면 올해 일본의 개인 소비는 0.6%포인트, 국내총생산(GDP)은 0.4%포인트 증가한다. 

[자료 | 일보 후생노동성]
[자료 | 일보 후생노동성]

일본 정부는 아베 정권 시절부터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약속하면서까지 임금 인상을 유도해왔다. 최근 일본이 완화정책에서 긴축으로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었던 이유는 최저임금이 꾸준히 인상되며 기업들을 압박한 결과다. 일본 최저임금은 2016년 이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사실상의 긴축 움직임을 보인 지난 7월 28일 일본 후생노동성 중앙최저임금심의회 소위원회도 올해 최저임금을 전국 평균 4.3%로 인상했다. 시간당 1002엔이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지역별로 다르다. 도쿄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1072엔이다. 지난 6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발표한 ‘새로운 자본주의’ 전략의 핵심도 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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