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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美 신용등급 하향 조정
러시아 경제성장도 보조금 영향
재정발 인플레 후폭풍 우려

재정 지출을 통제하지 않은 러시아 경제가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란 뉴욕타임스 기사가 나온 다음날인 1일(미국 현지시간),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재정 악화 우려로 강등했다. 피치의 결정이 재정으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까.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사진=뉴시스]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사진=뉴시스]

#1. 8월 1일(미국 현지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피치는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재정 악화와 정부부채 증가, 이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이 그 이유다.

2011년 메이저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단계 떨어뜨린 후 12년 만이다. 당시에도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을 놓고 미국 양당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게 주요 이유였다. 이제 미국에 최고 신용등급을 적용하는 신용평가회사는 무디스밖에 없다. 


#2. 지난 7월 31일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의 재정지출이 거품경제를 불러왔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 정부가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러시아 은행 20곳이 상반기에 주택담보대출을 63% 늘렸고, 1분기 신규 주담대 2건 중 1건이 정부의 보조였다”고 밝혔다. 

러시아 중앙은행 고문을 역임한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경제학자로서 러시아 경제의 거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재정발 인플레=미국과 러시아의 재정지출 문제가 거의 동시에 불거지면서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더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강수가 이런 우려를 해소할지는 의문이다. 미국 정부가 이번 피치의 강등 조치를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피치는 지난 5월 미 의회가 부채한도를 상향하기 위해서 움직이자 “최고 신용등급에서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시 상태인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경제 포럼’에서 “서방의 예상과는 달리 올해 러시아 경제는 1.5~2% 성장할 것”이라고 연설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가 0.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공급망 문제로 에너지‧곡물 등 가격이 폭등하면서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주요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찾은 팬데믹 이후에도 ▲시장지배적 기업 중심의 과도한 가격 인상, ▲주요 국가들의 막대한 재정지출 등으로 형성된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재정지출은 중앙은행이 직접 국채를 매입하지 않는 한 통화량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재정 보조를 받은 경제주체의 수요가 높아지면 물가가 상승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최근 개인소비지출(PCE)을 주요 물가 지표로 삼은 이유도 경제주체의 지출에서 재정적 인플레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은 소비자물가지수(CPI)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PCE에는 포함된다. 

크리스 머피 호주국립대(경제학) 교수는 지난 6월 발표한 논문에서 “팬데믹으로 1달러의 피해가 발생하면 2달러를 재정으로 보상하는 호주 정부의 ‘공격적 재정 지원(aggressive fiscal support)’으로 물가상승률이 추가로 3.0%포인트 더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팬데믹 기간 미국은 부양책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썼고, 호주는 GDP의 16%를 썼다. 

■ 더 많은 재정의 문제=재정적 인플레는 앞으로가 더 문제다.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보호무역이 ‘디폴트값’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해 8월 발효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자동차, 에너지 산업 등에 7730억달러 예산을 쓰는데, 이중 4330억 달러가 직접 보조금과 세액공제로 집행된다. 미국의 반도체과학법(칩스법) 예산은 2800억 달러이며, 이중 527억 달러를 반도체에 투입한다. 

재정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미국만의 특수성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도 보조금 지원이 골자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 20조엔을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의 재정 적자 규모도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3.0%다. 

피치도 미국의 재정 적자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치는 미국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6.3%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도 올해 112.9%에서 2025년 118.4%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에 강경 대처를 예고하는 모순도 발생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7월 26일 “데이터가 뒷받침된다면 9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다시 올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지난 7월 30일 “한편에서 9월이 마지막 기준금리 인상일 것이라고 하는데, 금리 추가 인상도, 동결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뉴시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뉴시스]

오른손으로는 돈을 풀고, 왼손으로는 돈을 거둬들이는 듯한 정부의 모순에 투자은행들조차 제대로 된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는 올해 초 상반기에 하락장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CPI는 개선되는데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연착륙 기대감이 높아졌고, 미국 증시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대형 투자은행의 펀드 매니저들이 뒤늦게 추가 매수에 나서는 포모증후군(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을 보였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6월 상승장의 원인으로 이런 현상을 지적하며 “FOMO 랠리는 전문 투자자들이 주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클 하트넷 뱅크오브아메리카 최고투자전략가는 올해 초 “다음 강세장은 연준이 미국 정부를 구제하기 전에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트넷은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노트에서 “현재 31조 달러인 미국 정부부채는 10년 후면 50조 달러를 넘길 것”이라며 “하루에 52억 달러, 시간당으로 계산하면 2억1800만 달러씩 빚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지출을 이 정도로 늘리는데 실업률 등 경기침체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 5월 3.4%로 1969년 이후 5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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