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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원자재 가격↓ 공식 깨져
곡물 생산량-수출량 괴리 심각
변동성 더 커진 지정학적 위험

역사적으로 석유‧밀‧콩 등 원자재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달러가치, 생산량, 경기, 국제정세 등 네가지 변수였다. 그런데 최근엔 원자잿값과 네 변수의 관련성이 약화하고, 심지어 역전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왜일까. 

이전과 달리 달러가치와 석유가격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독일 석유회사 윈터셸의 시추 시설. [사진=뉴시스]
이전과 달리 달러가치와 석유가격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독일 석유회사 윈터셸의 시추 시설. [사진=뉴시스]

■ 변수➊ 달러가치=석유를 포함한 모든 원자재 가격은 통상 달러가치와 반비례해왔다. 미국 달러가 유로‧엔화 등 주요 통화에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면, 원자재 가격은 통상 떨어졌다. 지금도 그럴까. 

먼저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를 살펴보자. 최근 3개월 동안 달러 인덱스는 5월 말과 6월 초에 104를 넘기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100~101 수준이던 달러 인덱스는 지난 6월 17일 100 아래로 떨어졌고, 8월 7일 현재 101.9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달러가치가 하락한 이유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한 결과다. 통화의 가치는 이자율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러가치가 하락하던 6월 초에서 중순까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오르지 않고 함께 내리며 최근 3개월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달러 인덱스는 6월 중순 이후 꾸준히 상승했는데, WTI 가격도 함께 상승해 배럴당 80달러대를 돌파했다. 과거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올해 3월 ‘원자재 가격과 미국 달러’라는 보고서에서 “미국 달러와 원자재 가격의 역사적인 관계가 최근 음의 관계에서 양의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BIS는 그 이유로 미국의 교역조건이 개선된 것을 꼽았다. 미국은 2010년대 이후 석유 순수출국으로 등극했고, 밀 등 곡물에서도 여전히 순수출국이다.

■ 변수➋ 생산량=생산량과 수출량은 밀 등 곡물가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 7일 발표한 7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3.9로 6월보다 1.3% 상승했다.

곡물의 경우 생산량이 수출량과 비례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FAO는 7월 세계 곡물 생산량이 1년 전보다 1.1% 증가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세계 곡물 무역량은 7월에 1년 전보다 오히려 0.9% 감소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뉴욕상업거래소]
[자료 | 뉴욕상업거래소]

더구나 지난 7월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하면서 향후 곡물 수출량 감소로 인한 가격 상승세가 다시 시작할 전망이다. 미국의 밀 생산량이 50년 만에 최소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어려워 보이는 점도 문제다. 

석유 생산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의 인위적 감산이 있었다. OPEC플러스는 지난해 원유 가격이 안정세를 찾은 후 감산에 돌입했지만, 가격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7월부터 자체적으로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해왔는데, 최근 이를 9월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9월에 하루 30만 배럴 감산에 돌입한다. 

■ 변수➌ 경기=원자재는 경기침체기에 수요가 감소하면서 가격이 내린다. 특히 석유·석탄 등 에너지나 구리·니켈과 같은 원자재는 경기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특히 경제 규모 1·2위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는 원자재 가격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의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4%로 시장 전망치를 크게 상회했다. 중국은 디플레로 인한 경기침체가 우려되자 인민은행이 지난 6월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인하하고, 7월에는 동결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6일 ‘하반기 중국경제 전망 및 주요 이슈’ 보고서에서 “중국이 조만간 부동산 경기부양 조치를 검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곡물 가격도 경기에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2020년 10년간 농산물 가격 전망치를 발표하며 “지속적인 경기 회복세로 미국 및 글로벌 소득이 증가하면, 내수·수출 수요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다. [사진=뉴시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다. [사진=뉴시스]

■ 변수➍ 지정학적 위험=지정학은 지리·정치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지정학적 위험은 무력을 사용한 전쟁부터 관세를 통한 무역규제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올해 미국 주도의 중국 디커플링 등이 모두 포함된다. 

레바니즈 아메리칸 대학의 엘리 보우리 부교수는 2022년 발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원자재 시장의 지정학적 위험과 구조적 위험’ 논문에서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 변동성이 35%에서 85%로 증가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변동성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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