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2023년 직장인별곡➋
2019~2022년 직장인 삶 분석
코스닥 300대 기업 3년의 기록
근로여건 전반적으로 개선
민생 악화 고려되지 않아
팬데믹 영향 업종별 희비 뚜렷
반도체‧바이오 등 주력 산업 악화
IT‧게임 등 팬데믹 특수 업고 개선

# 근속연수가 길어졌고, 평균연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더스쿠프가 코스닥 3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의 근로여건 변화를 추적한 결과다.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한 가운데 많은 직장인의 삶이 개선됐다는 걸까.

#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양극화가 만들어낸 착시효과가 섞여있는 데다 미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의 벌이로는 삶을 지탱하는 게 만만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내 직장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어떻게 변했을까. 팬데믹 후 펼쳐진 2023년 직장인별곡 두번째 편을 살펴보자. 

코로나19 국면에서 직장의 체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국면에서 직장의 체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2막 : 기업 = ‘2023년 직장인 별곡’  첫번째 편에서 살펴봤듯, 팬데믹 기간 직장인의 처우는 꽤 괜찮아졌다. 팬데믹이 휩쓸기 전 2019년 말 코스닥 300대 기업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5.28년, 평균연봉은 5299만원이었다. 몹쓸 바이러스의 공포가 수그러든 2022년 말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평균 근속연수는 5.72년으로 2019년 대비 0.44년 길어졌다. 이 기간 300대 기업의 평균 직원 수가 늘었다는 점(2019년 414명→2022년 465명)을 고려하면 실제 회사를 버티는 직원들이 그만큼 많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부분이 버티고 또 버티면서 팬데믹이란 긴 터널을 통과했단 거다.

이렇게 버텨서 얻는 성과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2022년 말 평균연봉은 6043만원으로 팬데믹 전과 비교해 14.0% 증가했다. 한달에 62만원가량 더 쓸 수 있게 된 셈인데, 이 기간(2019~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8.2%)보다 폭이 컸다. 자연스레 평균 근속연수만큼 일을 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총괄수익)도 2억7998만원(2019년)에서 3억4587만원(2022년)으로 23.5%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경기침체, 고물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이자 증가 등 민생을 괴롭힌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였다. 

업종별 양극화 문제도 심각했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과 일터의 체질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어떤 기업엔 기회로, 어떤 기업엔 악재로 작용했다. 당연히 직장인의 근로 여건도 자신이 속한 기업이 어떤 업종이냐에 따라 출렁였다. 


대표적인 게 반도체다. 현재 반도체 재고는 전세계에 잔뜩 쌓여있다. 삼성전자 상반기 영업이익이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SK하이닉스가 매 분기 수조원의 적자를 발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제는 부족하다고 난리였던 반도체가 이렇게 남아도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격수업과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PC 같은 IT기기를 향한 수요가 폭증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데이터 수요가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수요에 맞춰 반도체 업계는 물량을 쏟아냈고,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치명률이 떨어지고, 팬데믹이 종식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요가 뚝 떨어졌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반도체의 겨울이 시작됐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이 수치만큼 개선됐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이 수치만큼 개선됐는지는 의문이다.[사진=뉴시스]

이런 극단적인 변화는 코스닥에 상장해 있는 반도체 기업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코스닥 상장기업 대부분이 장비ㆍ소재ㆍ부품 등을 다루는 후방산업에 속해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더스쿠프가 조사한 코스닥 300대 기업 중 반도체 기업의 근무여건은 대부분 정체했다. 반도체 업종에 속한 34개 기업의 평균근속연수는 팬데믹 기간(2019~2022년) 0.14년이나 짧아졌다. 평균 연봉 증가율도 전체 평균치(14.0%)를 밑도는 10.0%에 그쳤다. 

한때 코스닥 시장을 호령하던 제약ㆍ바이오 업종의 상황도 반도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단키트 제품을 중심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몇몇 기업에 그쳤다. 신약 개발이 실패하거나 자진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잔뜩 끼어있던 거품이 빠졌고, 실적도 신통치 않았다. 자연스레 기업들의 근무여건 변화도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300대 기업 중 제약ㆍ바이오 업종에 속한 62개 기업 직원의 평균연봉은 2019년 5376만원이었는데, 지난해 말엔 6027만원을 기록하면서 12.1%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평균연봉 증가율(14.0%)보다 낮은 수치였다.

지난해 코스닥 제약ㆍ바이오 기업이 기록한 평균 근속연수 역시 4.24년으로 5.72년이었던 300대 기업의 평균보다 짧았다. 3년간 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이 모두 감소한 기업 27개 중 제약ㆍ바이오 업종이 7개로 가장 많았다는 건 바이오 업종의 현 상황을 잘 드러내는 통계다. 

여행ㆍ레저 업종은 기업마다 희비가 극적으로 엇갈렸다.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하늘길이 막히면서 고사 상태에 놓인 곳이 있는가 하면 해외여행 수요가 국내로 몰리면서 골프ㆍ호캉스 붐의 수혜를 누린 곳도 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 여행ㆍ레저 기업을 다니는 직원의 근로여건은 나빴다. 여행ㆍ레저업을 영위하는 5개 기업 직원의 평균연봉은 2019년 4028만원에서 2022년 4054만원으로 0.6%(26만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300대 기업 평균연봉 증가율(14.0%)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률(8.2%)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다.

5G 이동통신 설비투자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걷는 코스닥 이동통신 업종에 속한 기업의 근무여건의 변화도 신통치 않았다. 평균 근속연수가 2019년 5.43년에서 2022년 6.22년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평균연봉 증가율은 9.0%에 그치면서 300대 기업 전체 평균(14.0%)을 밑돌았다. 

이 지점에선 한가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코스닥 300대 기업의 평균 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개선됐다. 반도체, 제약ㆍ바이오, 여행ㆍ레저, 통신 업종이 평균치를 밑도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배경은 뭘까. 그 답은 IT와 게임 업종의 근무여건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팬데믹 수혜를 누린 게임업계는 개발자 영입 경쟁을 벌였다.[사진=뉴시스]
팬데믹 수혜를 누린 게임업계는 개발자 영입 경쟁을 벌였다.[사진=뉴시스]

먼저 IT부터 살펴보자. 팬데믹 반사효과를 등에 업고 몸값을 크게 부풀렸던 IT 업종 15개 기업의 평균연봉은 2019년 5624만원에서 2022년 6477만원으로 15.1% 증가했다. 신규 고용을 늘리면서 평균 직원 수(2019년 422명→2022년 433명)가 늘었음에도 평균연봉이 증가했다는 건 그만큼 이들 기업이 인건비에 많은 투자를 쏟았다는 얘기다. 기업마다 연봉 경쟁이 붙었던 ‘개발자 영입’ 열풍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팬데믹 덕분에 고성장을 구가했던 게임 업종의 근무여건 변화 역시 비슷했다. 코스닥 300대 기업에 속한 9개 게임 기업의 평균연봉은 무려 30.5%나 증가했다. 2019년 5666만원이던 평균연봉이 지난해엔 7398만원으로 오르면서 앞자리 숫자를 두 번이나 바꿨다. 평균 근속연수도 3.14년에서 3.64년으로 0.50년이나 길어졌다. 

게임 산업 역시 팬데믹 기간 뛰어난 개발자 모시기 경쟁에 가세한 대표 업종 중의 하나다. 2021년 판교 테크노밸리의 임금 인상 릴레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게 바로 넥슨코리아였다. 당시 넥슨은 신입 초봉을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전 직원 연봉을 일괄 800만원 인상하면서 치열한 인력 유치전의 개전을 알렸다. 

IT업계 관계자는 “개발 수요는 많은데, 인력이 부족해지자 기업들이 너도나도 고액 연봉을 내밀며 개발자 영입에 뛰어들었고 어떤 개발사는 신입 개발자 초봉에 6000만원을 내걸기도 했다”면서 “다만 집에서 게임을 하기보다는 밖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엔데믹으로 전환하면서 자연스럽게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지금으로선 다 철 지난 옛날얘기”라고 설명했다. 

결국 전체 평균 수치가 개선됐다고 해서 코스닥 직장인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보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는 얘기다. 양극화가 만들어낸 착시효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내외 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사진=뉴시스]

■ 3막 : 미래 = 그럼 팬데믹을 벗어나 엔데믹을 사는 지금 직장인의 근로여건은 좀 더 좋아질 수 있을까. 현재로선 낙관하기 어렵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2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종전보다 0.1%포인트 하향한 1.4%로 전망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이번까지 5회 연속 하향 조정이다. 세계 경제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2%포인트 끌어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IMF의 시선만 비관적인 게 아니다. 지난 7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한국 경제가 1.3% 성장할 거라고 내다봤다. 지난 4월 1.5%를 전망한 지 3개월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지난 6월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경제성장률을 1.6%에서 1.5%로 낮췄다. 

국내 기관의 전망도 비슷하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1.8%에서 1.5%로 6개월 만에 0.3%포인트 낮췄다. 한국은행 역시 1.6%에서 1.4%로 하향조정했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회복세로 돌아서는데 유독 한국만 성장세가 둔화하는 추세란 얘기다.

경제전문가들은 반도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산업구조와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점을 성장률 하향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인구가 가파르게 감소하면서 내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그렇다고 소비가 극적으로 늘어날 상황도 아니다. 가계부채 탓이다. 통화 긴축 기조 속에서도 한국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678조5700억원(7월 20일 기준)으로 6월 말(678조2454억원)보다 3246억원 늘었다.

앞서 5월에도 전월 대비 늘었는데, 3개월째 증가세다. 시장금리도 다시 오르는 추세인 만큼 최근 가계대출 증가는 금리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금리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대출 규모까지 늘어나면 금융 불안의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는 뇌관에 불이 붙는 건 시간문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3위의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경제의 밑단에 놓여있는 일반 직장인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여기에 정부와 여당은 직장인에게 많지 않은 사회안전망 중 하나이자 울타리인 실업급여의 기능을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로 비유한 데서 알 수 있듯, 실업급여를 노동자들이 무분별하게 낭비하고 부정 수급자가 만연하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대다수 직장인에겐 이 제도가 비자발적 실직을 당한 상황에서 원활한 재취업을 꾀하기 위한 발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보기 어렵다. 2023년을 버티는 수많은 ‘좋좋소’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이다.  

특별취재팀 

김다린 기자
quill@thescoop.co.kr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김정덕ㆍ김미란ㆍ이혁기 기자
juckys@thescoop.co.kr

이지원ㆍ윤정희ㆍ최아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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