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ㆍ열정ㆍ소통의 리더 이순신㉚
“왕은 이민위천” 류성룡 간청에
선조 마지못해 평양수성 결정
이일은 여전히 적병 우습게 봐

세자가 나섰지만, 평양 백성들은 믿지 않았다.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는 게 아니냐’는 의심만 펼쳐놨다. 결국 선조가 “평양을 굳게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백성은 한숨을 덜었다. 물론 선조는 그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지만…. 민심이 국정을 책임지는 이의 말을 불신하면 그 화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우리 국민 중에서 국정 책임자나 야권 책임자의 말을 100%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조직 수장의 말에 힘이 실리려면 ‘믿음’을 줘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직 수장의 말에 힘이 실리려면 ‘믿음’을 줘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평양 탈출’을 놓고 날선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부 대관은 은밀히 뒷구멍으로 피난할 계책을 세웠다. 어떤 이는 처와 자식들부터, 어떤 이는 재물을 먼저 실어 피난처로 미리 보내고자 했다. 이런 분위기를 눈치챈 백성들이 동요했다. “고위 공직자라는 족속들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도 도망치자”며 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백성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공직자들은 황급히 대책회의를 열고 떠난 백성을 다시 불러들일 계책을 논의했다. 결국 대동관 객사 앞에 세자 광해군이 얼굴을 내밀었다. 세자는 “평양을 굳게 지킬 터이니 백성들은 성을 떠나지 마시오”라며 당부했다.

백성들은 평양성을 지키겠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선조의 신하는 모두 간신배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성 한명이 나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동궁전하의 말씀을 백성들이 믿지 아니하오니 상감께옵서 친히 효유曉諭(깨달아 알아듣도록 타이름)하시면 어떠하신지….”

그러자 대신 중 우의정 유홍의 무리가 씩씩거리며 “이 버러지 같은 상놈들이 동궁의 영지를 믿지 않는다니 군사를 풀어 저놈들을 무찌르시오”라며 막말을 해댔다. 류성룡이 “지금이 어느 때요? 백성의 뜻을 거슬러서는 아니 되오”라며 유홍의 말을 점잖게 가로막았다. 마침내 선조가 친히 평양을 버리지 아니할 뜻을 백성에게 효유하기로 정하고 “내일 성상께오서 너희들 백성에게 전교를 내릴 터이니 다들 이곳에 모이라”고 명을 내렸다.

이튿날 대동관 객사 앞에는 선조의 말을 듣겠다며 평양성 백성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보고 영의정 최흥원 이하 여러 대관은 겁먹은 태도를 보였다. “무지한 상놈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데 성상이 직접 나서는 건 위험하다”며 선조가 백성들 앞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 

류성룡은 기가 막혔다. 그는 “왕은 이민위천(백성을 하늘로 여김)이라 나라가 백성에 힘입어 만들어진 것이거늘, 백성을 어찌 그리 낮춰 본단 말이오”라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선조에게는 “군왕의 말은 일월과 같으니 한번 하신 말을 거둬들여선 아니 되옵니다”며 약속한 대로 친히 백성들을 향해 맹세할 것을 청했다. 

선조는 류성룡의 간청에 대동관 문턱에서 이렇게 하교했다. “평양을 굳게 지키기로 내 뜻을 정했다. 그러니 너희들 평양 신민은 떠나지 말고 나라를 도와 적병을 물리치도록 하라.” 선조가 이렇게 약속했으니 싫더라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좌상 윤두수를 수성대장으로 삼고 도원수 김명원, 이조판서 겸 평안도 도순찰사 이원익과 더불어 평양을 지키도록 하명했다. 

그러던 차에 순찰사 이일이 거지꼴로 평양에 들어왔다. 그는 상주 패전으로 선조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도 이일은 오히려 환영을 받았다. 왜군이 황해도를 지났다는 소식에 민심이 더욱 흉흉했지만 패군지장이라도 이일 같은 장수라도 얻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이일의 초라한 꼴과 초췌한 얼굴을 본 류성룡이 입을 열었다. “이곳 사람이 자네를 크게 믿는데 이처럼 초췌해서야 사람들의 마음을 위안할 수가 있겠나?” 그러면서 자신이 입던 남천익(남철릭) 전포 한벌을 내어 입히니 다른 대관들도 전립이나 호수, 은정자, 패동개(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메는 물건)를 건넸다. 

하지만 신을 벗어준 이가 없어 이일은 여전히 짚신을 신고 있었다. 류성룡 등이 “비단 군복에 짚신이 어울리지 않는 걸”이라며 껄껄 웃었다. 나라를 근심하는 와중에도 웃음판이 벌어졌던 거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황해도 봉산 등지로 탐정을 갔던 벽동(평북 북부에 있는 군) 토병 임욱경이 달려와 적병이 벌써 봉산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류성룡은 수성대장 윤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적병이 봉산에 도착했으면 척후는 벌써 강을 건너와 있을 것이오. 특별히 영귀루詠歸樓 아래에 있는 강이 두 갈래로 갈려 얕은 여울은 길만 알면 적병이 건널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적이 우리 사람을 향도로 삼아 그 물길로 건너오면 성이 위태할 것이오. 이일이 왔으니 곧 보내어 여울을 지키게 해서 불의의 변을 막는 것이 어떠하오?” 

윤두수는 “대감의 지시가 옳소”라며 이일에게 “자네가 곧 가서 여울목을 지키도록 하게”라고 명했다. 하지만 이일은 “어느 세월에 그놈들이 올라오려고요”라며 적병을 우습게 보는 어조로 말했다. 류성룡은 이일을 한번 흘겨봤다. 그는 이일이 상주에서 패한 것이나 신립이 충주에서 패한 것이나 적의 행동을 정찰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평양 백성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정의 말을 불신했다. 드라마 ‘징비록’ 속 선조의 모습.[사진=더스쿠프 포토]
평양 백성은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조정의 말을 불신했다. 드라마 ‘징비록’ 속 선조의 모습.[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일은 류성룡의 못마땅해하는 눈치를 보고 “소인 보고 가라시면 영귀루인가 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만 군사를 더 주셨으면 하오”라고 말했다. 류성룡은 윤두수와 협의해 평안도 군사 300명을 더 거느리게 했다.

그러자 이일은 장군의 차림새를 갖춘 후 말에 올라 함구문含毬門으로 나갔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온 군관과 평안도 군사 300명을 함구문 앞에 벌여놓고 의기당당하게 검열을 했다. 이일은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후 술과 고기를 장만하고 평양기생까지 불러서 질탕하게 놀았다. 이런 짓을 할 것을 예상했던 류성룡은 사람을 보내 살피게 했다. 예상대로 이일은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기생을 희롱하고, 군사들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류성룡은 수성대장 윤두수에게 “큰일 났소. 이일이 상주에서 하던 버릇을 또 하고 있는 모양이오. 한시가 급한 이때에 해가 지도록 함구문 밖에서 술을 먹고 기생 계집만 희롱하고 있다오”라며 하소연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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