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ㆍ열정ㆍ소통의 리더 이순신㉜
“평양성 지켜달라”는 백성의 간청
만사 제쳐놓고 행궁 향한 류성룡
조정 대신들은 평양 떠날 궁리
마음 기운 선조, 간청 듣지 않아

조선 대신들이 ‘평양을 사수하겠다’는 백성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도망칠 궁리를 하자, 류성룡이 일침을 놓았다. “한번도 싸우지 않고 왜군에 평양을 내주면 명나라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자 몇몇 대신은 ‘그냥 명나라에 싸웠는데 졌다고 거짓보고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이런 ‘거짓 인생’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거짓말을 일삼는 지도자를 믿을 백성은 어디에도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거짓말을 일삼는 지도자를 믿을 백성은 어디에도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선조는 5월말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자마자 내심 평양성을 버릴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류성룡의 만류로 여전히 평양성에 버티고 있었지만, 은밀히 예조참의 노직盧稷에게 호위 궁인들을 붙여 종묘사직의 위패를 이동하려 했다. 하지만 이같은 시도는 칠성문(평양 모란봉에 있는 성문) 앞에서 막혀버렸다. 평양성의 백성들이 길을 막은 채 노직과 호위 궁인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노직의 문관들을 가리키며 “이놈들! 그동안 국록을 빼먹고 이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속이니, 너희같이 죽일 놈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며 고함을 쳤다. 부녀와 어린아이들까지 모여들어 소리쳤다. “평양을 지키지 않고 달아날 거면 무슨 이유에서 피난 가려던 우리를 다시 불러들여 적병의 손에 어육지참(사람이 짐승의 고기처럼 됨)이 되게 하느냐! 이 간신 놈들아, 우리만 죽을 줄 알았더냐?”

이런 일이 벌어지자 평양성에 머물던 고위 공직자들은 겁을 먹고 바깥출입을 삼갔다. 그러면서도 임금을 호위하는 의장병을 풀어 백성을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장병들은 윗선의 지시대로 백성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영의정 최흥원, 우의정 유홍, 전 좌의정 정철 이하 대관들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선조는 어찌할 바를 몰라 류성룡만 애타게 찾았다. 

백성들의 소요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류성룡은 만사 제쳐놓고 행궁으로 달려갔다. 길에서 백성들에게 봉변을 당할 게 뻔했지만, 그래도 백성들은 “류 정승은 평양을 지키자고 하는 충신이다!”라며 길을 열어줬다.

류성룡이 대동관 행궁 안에 들어서니 선조와 백관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쉬었다. 선조는 류성룡에게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이를 어찌하오”라고 물었다. 류성룡은 “반란이 아니오라, 평양을 떠나지 마시라고 만류하는 것입니다”며 선조를 안심시켰다.

류성룡은 곧바로 행궁 문밖에 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성상이 평양을 떠나지 마시고 힘을 다하여 성을 지켜주기를 원하는 건 지극히 충성된 마음이다. 하지만 소요를 일으켜서 성상을 놀라게 하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느냐? 더구나 성상은 평양을 굳게 지키기로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한 노인은 손을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상감께서 성을 버리려 한다는 말을 듣고 분함을 못 이겨 그런 것이오. 대감의 말씀을 들으니 소인네들의 가슴이 터지는 것 같소. 평양 백성이 한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적병이 한걸음도 평양성 안에 들어오지 못할 터이니 다시는 백성을 속이고 평양을 떠난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 

말을 끝낸 노인이 성 밖에 몰려 있는 백성들을 타일러 해산시키고 물러갔다. 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결국 감사 송언신宋言愼을 시켜 소동의 우두머리 격인 세 사람을 잡아 목을 베었다. 그리곤 평양을 떠날 궁리를 또다시 하기 시작했다. 최흥원, 정철, 유홍 이하 고위공직자 대부분은 함경도로 가기를 주장했다. 앞서 언급했듯 자신들의 가족이 이미 함경도로 피난을 했기 때문이었다.

류성룡은 선조에게 “백성들에게 평양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파기하면 백성은 두번 다시 임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간청했다. 선조는 듣지 않았다. 어느덧 피출설避出說이 대세가 된 탓이기도 하지만 이미 선조의 마음이 기울어진 때문이었다. 

“서울과 개성을 버린 것도 명나라 조정에서 의심하거늘, 하물며 한번도 싸워보지도 아니하고 평양과 같은 형승지를 버린다 하면 명나라의 의심은 더욱 클 것이며, 명나라가 우리를 의심한다면 구원병은 오기가 어려울 것이니 평양을 굳게 지켜서 명나라의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류성룡이 선조에게 다시 간청했다. 


그러자 “명나라에 알리기를 평양에서 크게 싸워서 패하였다고 하면 그만 아니오”라며 누군가가 반박했다. 류성룡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정녕 평양을 버린다 하더라도 함경도로 피하는 것은 옳지 아니합니다. 원래 평양으로 피난한 목적은 명나라에 의지해 후일을 도모하자는 거였는데, 명나라에 청병請兵을 해놓고 북도北道로 들어갔다가 적병에 막혀 중국과 소식이 끊어지면 어찌 하시겠나이까. 또한 적병이 각도에 흩어져 있거늘 유독 북도라고 적병이 없으란 이치가 없으니, 북도에 갔다가 거기서도 적병을 만나면 갈 곳이 오랑캐 땅밖에는 없지 아니합니까. 그야말로 왜倭를 피하다 호胡를 만나는 격이니, 이런 위태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일부 대신은 자신들의 가솔이 북도에 가 있어 사사로운 생각으로 북도로 가기를 주장하는 겁니다.”

류성룡은 임금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간청했지만 선조는 듣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류성룡은 임금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간청했지만 선조는 듣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선조일행이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대동강 남안에는 소서행장의 군대가 도착해 있었다. 류성룡ㆍ윤두수ㆍ이원익ㆍ김명원 등이 평양성 연광정에서 대동강 건너편을 바라다보니 왜군 한명이 종이를 창대에 매어 강변 모래판에 꽂아놓고 손짓을 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서신일 것이라 짐작한 류성룡이 군사를 시켜 강을 건너가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겉봉에는 ‘상 조선국 예조판서 이덕형 각하 上 朝鮮國 禮曹判書 李德馨閣下’라고 쓰여 있었다. 소서행장이 보낸 편지였다. 소서행장은 진작부터 수차례 조선을 농락할 잔꾀를 부려왔던 인물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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