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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통위, 물가 전망 수정해 현실 반영
한은 총재 “물가 하락 속도 늦어질 것”
파월 의장과 다른 빠른 대처 눈길
추경호 부총리 성장·물가 전망 유지

# 물가 전망의 어려움은 예측 자체보다는 전망을 바로잡아야 할 때 발생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팬데믹 초기 잘못된 인플레이션 전망을 바로잡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면서 실물 경제에 혼란을 줬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8월 경제전망의 물가 하락 속도를 수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정부의 현실 인식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다른 목소리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가 전망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전망을 수정했다. [사진=뉴시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전망을 수정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19일 기준금리를 3.50%로 6회 연속 동결하며 소비자물가 전망을 수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스라엘-하마스 충돌로 8월 경제전망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늦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금통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완만한 둔화 흐름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상방 리스크가 다소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목표로 수렴하는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경제성장률은 “수출 부진이 완화하면서 지난 8월 전망 수준(1.4%)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날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8월 전망에서 (물가가) 내년 말까진 2% 초반까지 수렴할 것이라고 봤었는데,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지금 상황을 봤을 때, 우리가 8월에 예측한 물가의 하락 경로보단 속도가 좀 늦어지지 않겠냐는 것이 금통위원들의 중론이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수준의 전망은 대부분의 경제지표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직결돼 있다. 현재 물가와 미래의 물가 수준은 개별 기업의 가격 정책, 채권시장에서의 실질 수익률 전망은 물론이고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정부부채 추산까지 좌우한다. 중앙은행들이 최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물가 전망을 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향후 물가 경로를 전망하는 AI 모델을 개발했고, 이스라엘 중앙은행도 지난해 개발자들과 함께 AI의 물가 전망 모델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올해 3월 발표한 물가 전망 모델 워킹페이퍼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물가 예측은 경제 의사결정의 핵심이다(Forecasting inflation lies at the heart of economic decision-making).”  그래서 물가 전망은 짧고 유연해야 한다.

[자료 | 통계청]
[자료 | 통계청]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1923년 발표한 「화폐개혁론」에서 이렇게 썼다.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경제학자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계절에 ‘폭풍이 지나가면 바다는 다시 잔잔해질 것’이라는 식으로 경제 전망을 한다면, 자신을 너무 쉽고 쓸모없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케인스는 1928년 발표한 「확률론」에서도 “정부가 실현될 수 없는 장기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보다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단기적 개혁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021년 6월 21일 미 하원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며 장기적으로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무능한 의장이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11월 30일까지 이 의견을 고수하다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 성명에서 갑자기 “우리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일부에서는 파월이 긴축에 따른 시장의 발작적인 반응을 우려해서라고 감쌌지만, 5개월 동안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 건 오히려 파월의 이상한 고집이었다. 

당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했던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폴 크루그먼 교수 등은 ‘팀 트랜지토리(Team Transitory)’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지금까지도 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 ‘팀 트랜지토리도 일리가 있다’란 기사를 게재했고, 로이터도 지난 8월 ‘인플레이션 척결? 팀 트랜지토리의 재결성’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파월과 ‘팀 트랜지토리’의 진짜 문제는 이들 때문에 미국이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반응하는 것이 늦었다는 점이다. 파월의 한마디로 인해 미국은 지난해 3월에야 기준금리를 뒤늦게 올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물가를 잡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이 1981년 이후 최악의 고물가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지난해 5월 “연준도 (인플레이션에 늦게 대응한 것이) 실수였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존 경제성장률, 물가 전망을 유지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존 경제성장률, 물가 전망을 유지했다. [사진=뉴시스]

그런 의미에서 이창용 총재와 금통위가 지난 8월의 물가 전망을 수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우리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한은의 유연함이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현실 인식인지 여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9월에 3.7% 물가가 나왔는데 이제는 특별한 충격이 없으면 그것보다는 조금씩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20일에는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완전히 수습되지 않아서 장기간 고금리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동 사태의 확전 등이 굉장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금융·외환·국제 유가, 실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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