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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회장 미국판 상저하고 비판
우리 기업·소비자 경기·물가 비관
정부만 나홀로 낙관론 괜찮은가

# 미국판 상저하고上低下高의 심판이 시작됐다. JP모건 회장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미국 정부가 “100% 틀렸다”고 비판했다. 뉴욕타임스도 ‘일시적 인플레’ 논란을 일으켰던 3년 전 연준의 잘못된 경제전망을 꼬집었다.

# 우리 정부는 시대를 막론하고 ‘상저하고’를 정치적 수사修辭(레토릭)로 활용했다. 하지만 1%대 성장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이런 오류가 반복돼선 안 된다. 정치적 수사가 경제전망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안 되는 이유를 살펴봤다. 

피에르-올리비에로 고린차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세계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에르-올리비에로 고린차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0일 세계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미국판 상저하고=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한국판 ‘상저하고’식 틀린 경제전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4일(현지시간) 18개월 전 연준의 경제전망이 “100% 틀렸다”고 비판했다.

다이먼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무엇이든 조절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시각이 존재한다”며 “내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1970년대처럼 급증하는 재정적자와 지정학적 리스크, 유가상승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이먼의 비판은 올해 경제 상황 예측에 실패한 연준을 향한 말이지만, 그 뿌리는 2021년 제롬 파월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었다’고 오판해 5개월 동안 통화정책을 방치한 것과 관련이 깊다. 미국판 상저하고였던 파월의 ‘잃어버린 5개월’에 대한 심판이 마침내 시작된 셈이다. 

파월 의장은 2021년 6월 21일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transitory)이며 장기적으로 목표치인 2%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5개월 동안 물가 상승을 방치해 비난을 받았다. 파월은 같은 해 11월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통화정책 성명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느닷없이 태도를 바꿨다.

파월이 ‘후회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내놓은 건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물가가 40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도 연준이 기다렸던 것은 실수”라고 비판한 다음 날이었다. 파월은 2022년 5월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연준 위원들이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알았더라면 정책 방향을 더 일찍 바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24일(현지시간) “경제학자들은 2년 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지난해엔 인플레의 지속력을 과소평가하더니, 올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오판했다”며 “이 전망들 중에서 어떤 것도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NYT는 “경제학자와 월가 분석가들이 인플레에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비판했다. 

■ 한국 정부의 고질병 상저하고=우리 정부는 ‘상저하고’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써왔다. 상저하고는 상반기에는 나쁘지만, 하반기에는 좋아진다는 얘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1월 우리 경제가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당시 홍남기 부총리도 ‘상저하고’라는 말을 하반기까지 반복해 비난을 받았다. 2019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 -0.4%, 2분기 1.0%, 3분기 0.4%, 4분기 1.2% 증감했다. 

상저하고를 책임 회피를 위한 정치적 수사修辭 정도로 취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이 공식화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하겠다면 그렇게 취급할 수 없다. 경제전망으로서의 상저하고는 파월의 ‘잃어버린 5개월’처럼 향후 6개월, 10개월 동안 경제전망을 방치하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정부가 여전히 하반기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이 기업과 소비자는 빠르게 전망을 수정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0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1%포인트 오른 3.4%를 기록했다. 올해 2월 이후 8개월 만의 재상승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소비자들이 향후 1년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다. 

기업들의 비관도 계속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1월 BSI 전망치가 90.1로 20개월 연속으로 기준선인 100보다 낮았다. BSI 전망치가 기준선보다 낮으면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제조업 BSI 전망치는 89.1로 20개월 연속 부정적이었고, 비제조업은 91.1로 4개월 연속 부정적이었다. 

■ 경제 전망의 어려움=경제전망으로 명성을 얻었던 피터 번스타인은 지난 1984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경제전망은 틀릴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경제전망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더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번스타인은 “금융상품 가격의 움직임과는 달리 경제성장률, 물가, 실업 지표 전망은 한 단계가 다음 단계로 가차 없이 이어지므로 한 번 내려진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거시 지표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계속해서 수정해 나갈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8년 148쪽에 달하는 ‘IMF 세계경제전망 실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자신들의 경제전망 중 15~30%가 틀렸다고 분석했다. IMF는 경제전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3월, 9월 수정 전망은 정확도를 상승시킨다”고 밝혔다.

경제학자 존 케인스도 1923년 「화폐개혁론」에서 “장기적으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며 “경제학자들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계절에 ‘폭풍이 지나가면 바다는 다시 잔잔해질 것’이라는 식으로 경제전망을 하는 것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오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오판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제전망은 틀릴 수 있다. 기후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를 예측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망과 다른 현상이 관측되면 수정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파월의 ‘잃어버린 5개월’이 만약 1~2개월에서 멈췄다면, 세계 경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600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에서 경제 분석을 책임지는(Chief Economist) 토르스튼 슬록은 지난 24일 NYT와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2.5%로 돌아올 수 있을지를) 우리는 알아내지 못했다”며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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