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는 사랑의 미로

▲ 알랭 드 보통 지음 | 청미래 펴냄
호주 북쪽에 위치한 뉴기니의 마누족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없다. 그렇다면 마누족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인종일까. 저자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한가지 특질은 없다”고 말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르듯 사랑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인칭 화자 ‘나’를 내세워 평범한 연인의 사랑이야기에서 철학적 통찰을 이끌어낸다. 이를테면 새로 시작한 연인은 상대방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저자는 이를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없는 완벽함을 상대방으로부터 찾고 싶은 믿음이자 욕망”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어떤 사람을 ‘사랑할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는 환희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의문이 있다. ‘이 사랑이 어떻게 끝날 것이냐’는 거다. 사랑이 충만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영원할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얻으면 갈망은 사라진다. 단조로움이 그 자리를 메울 뿐이다. 사랑이 수반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수할 준비가 됐는가.

다음은 이별이 왔음을 알리는 대목이다. 클로이는 여전히 나의 천사였지만 나는 그녀의 짜증을 돋우는 존재가 됐다. 클로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감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무리 싸우고 어쩌고 해도 나는 여전히 너에게 관심이 있고 우리 사이가 풀리길 바라고 있어. 너는 내 전부야.” 클로이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게 말해주는 건 고맙지만 이거 걱정되네. 날 자꾸 너만의 이상형으로 만들면 안 돼.”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거의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저자는 ‘내’가 계속해서 클로이를 사랑하는 일이 선善한 것이 아니며 클로이가 사랑을 거부하는 일이 악惡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의 시작이 상대를 위한 마음에서 생겨났을 지라도 결국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랑 받는 것은 ‘내’ 권리고 ‘나’를 사랑하는 게 상대방의 의무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자발적으로 사랑할 뿐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한다.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존재를 확인받을 때까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제대로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사랑받기 전까지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박지원 더스쿠프 인턴기자 jw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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