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저소득, 사회주택 서민층, 민간임대 중산층

▲ 주택 공급자 중심의 정책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주거복지 개념이 필요하다.[사진=뉴시스]
정부가 부동산 정책과 전세대책을 쏟아낸 이유는 간단하다. 다름 아닌 ‘경제활성화’다. 이런 측면에서 방향은 잘 잡았다. 그렇지만 ‘좌표’를 올바르게 설정하는 덴 실패했다. 건설경기 활성화, 매매 중심의 정책으론 부동산, 특히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대책에 메스를 가할 때가 됐다.

박근혜 정부의 ‘서민주거안정 대책’이 추구하는 건 ‘민간임대시장의 활성화’다. 이는 세 단계로 요약된다. 첫째, 불합리한 현행 전세제도를 월세로 전환한다. 둘째, 이를 통해 민간임대의 수익성을 높여준다. 셋째, 이런 수익구조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기업형 임대를 대량 공급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문제가 많다. 먼저 임대료 상승을 문제로 보지 않는다. 현재 민간임대 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민간임대의 최초 임대료는 임대업자가 자율로 정한다. 당연히 시장에서는 가능한 한 최대한도의 임대료가 책정될 것이다. 더구나 신규주택 임대료는 기존 주택 임대료에 비해 높기 때문에 임대료 상승을 막기 어렵다.

보수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임대료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이미 심각한 수준의 주거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 전체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임대료가 과대해질수록 소비가 위축돼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책적으로 영리가 목적인 임대주택을 지원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고방식이다. 외국의 경우 영세업자를 육성하기 위해 감세 등의 정책을 일시 로 펴는 예는 있어도 사업자의 이윤을 보장하는 정책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윤이 발생하면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는데 정부는 세금도 면제하고, 택지도 저렴하게 공급하며, 돈까지 저리로 빌려주겠다는 거다. 임대료의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그 이익은 고스란히 건설업자와 임대업자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셋째 문제는 기업형 임대업자에게 토지수용권을 부여한다는 거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공기업과 기업형 임대업자가 상호 협조할 경우 주민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의 토지나 주택을 수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도 아닌 민간의 영리사업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건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전세대책을 포함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본 방향은 결국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중심이다. 이래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는다. 최근 바뀐 주택 관련 법안들도 국민의 주거문제 해결이 아닌 공급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측면이 강하다. 

공급자 위한 정책ㆍ법이 문제

국회는 올해 6월 다양한 주택관련 법안을 개정했다. 일단 주택법에 규정돼 있던 주거복지와 주거권 보장에 관한 공공의 의무 등을 떼어내 주거기본법에 넣었다. 주택법과 임대주택법의 규제를 받던 민간임대사업 등의 내용은 민간임대 주택에 관한 특별법으로 분리했다. 또 주택법, 임대주택법, 공공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공공임대주택 및 공공분양주택과 관련된 내용을 묶어 공공주택 특별법으로 개정했다.

여기서 우려되는 건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거기본법 제정의 취지는 ‘주거복지 실현을 위한 것’이지만 과연 주거복지 실현이 가능하겠느냐는 거다. 주택법은 벌칙을 두고 있는 강행 규정이고 주거기본법은 선언적 의미의 ‘기본법’이다. 기본법은 특성상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수사로 이뤄져 관련 정책에 그 취지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수많은 기본법이 정부 해석에 따라 혹은 재정부족 등의 이유로 사문화되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주거복지를 위한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주거기본법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둘째, 주택에 관한 국가의 철학 변질이다. 개정 전 주택법에는 ‘국민주택규모의 주택(수도권은 전용면적 85㎡ 이하, 그 외 지역은 전용면적 100㎡ 이하)이 저소득자ㆍ무주택자 등 주거복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게 우선 공급될 수 있도록 할 것(주택법 3조4호[전문개정 2009.2.3])’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실수요자에게 주택을 공급해야 하고, 실제 거주하지도 않을 사람이 집을 매집해 잇속을 챙기는 걸 ‘나쁜 행위’로 간주한 거다. 그래서 무거운 세금도 물렸다. 이 법을 통해 사회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까지 축소해선 안 된다.

하지만 개정된 주거기본법은 이런 규정마저 빼버렸다. 주거기본법 어디에도 ‘실수요자에게 주택이 돌아가게 해야 된다’는 내용이 없다. ‘양질의 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할 것(주거기본법 3조3호)’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 현재 정부 정책이 민간임대 활성화에 쏠려 있음을 감안하면 저렴한 공공임대가 아닐 공산이 크다.

주거비용은 늘어나고 실수요자에게 집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가가 저소득자ㆍ무주택자를 위한 주거복지의 의무까지 저버린다면 한국의 전세가격 상승, 이로 인한 소비침체와 경기침체는 필연적이다. 건설업이 경제를 살릴 거라는 기대감을 버리고 정부가 전향적인 처방전을 내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회는 최근 국가가 주거복지 의무를 포기하는 주택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 사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줄이는 이유는 공기업 선진화, 다시 말해 LH공사 등의 적자구조에 있다. 이는 잘못된 논리다. 복지 관점에서 추진되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은 적자구조가 당연하다. 공공지원을 통해 그 적자를 메워야 한다. 공공지원을 통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해 저소득층의 주거비용이 줄어들면 소비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일어날 것이다.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도 막는 것은 물론 다주택을 보유하는 이점이 사라지면서 주택가격의 안정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주거복지와 안정은 국가의 의무

둘째, 기업형 임대에 공공지원을 할 게 아니라 사회적 미션을 수행하는, 이를테면 비영리로 운영되는 사회주택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층, 사회주택은 서민, 민간임대주택은 중산층 이상 계층에게 각각 공급되도록 주택하위시장을 만들면 사회 전반의 주거비용을 유효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이 역시 소비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전제다.

정부가 각종 부동산 정책과 전세대책 카드를 만지작거린 건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방향키는 제대로 잡았다. 하지만 좌표가 틀렸다. 과거의 건설경기 활성화나 매매 중심의 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충분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사회가 바뀌고 사람이 바뀐 만큼 주택시장의 문제의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wiseci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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