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공포 시나리오, 믿을 만한 이야기인가

▲ 노후대비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정부나 금융권의 공포마케팅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사진=아이클릭아트]
2000년대 중반, 금융사들은 ‘노후 대비’를 강조하면서 펀드 가입을 종용했다. 너도나도 펀드에 가입했고, 금융사들은 상품을 팔아 돈을 벌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가입자들은 손해를 봤다. 최근 ‘노후 대비’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서운가. 그렇다면 또 당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노후소득을 걱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소득대체율’ 개념을 인용해 “은퇴 전에 소득 대비 70% 정도에 해당하는 노후소득을 미리 확보해야 안정된 노후가 보장된다”면서 “공적ㆍ사적 연금을 모두 동원해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보건사회연구원도 최근 “한국 성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노후준비 부족과 취업ㆍ소득 등 경제적 문제”라면서 노후대비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주장들을 보면서 과거 펀드 열풍이 불었던 때가 생각났다. 2000년대 중반, 금융회사들은 ‘노후 대비’라는 말을 앞세워 펀드 투자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포마케팅’인데, 금융사가 마케팅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훗날 큰일난다”는 식이다. 현재 나오는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포마케팅’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그런 ‘공포’에 대비해야 하는지는 개인의 사정을 따져 봐야 한다.

노후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들도 문제점이 있다. 근거는 크게 ‘소득대체율’ ‘은퇴 전 소득’ ‘공적ㆍ사적연금을 통한 노후소득 확보’ 3가지다. 먼저 소득대체율의 전제는 ‘은퇴 전 소득의 70% 정도는 은퇴 후부터 사망 시까지도 계속 필요하다’는 거다. 왜 70%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의 명목 소득대체율이 평균 67.9%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와 OECD 선진국의 소득ㆍ소비 수준을 그렇게 단순 비교할 수 있을까. ‘소득대비 70% 수준’을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은퇴 전 소득’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필요 노후소득을 높게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은퇴 전 가장 큰 소득지출 항목은 주택구입비와 자녀의 교육비다. ‘생애 평균소득’이나 은퇴 직전 가장 큰 소득을 기준으로 노후소득을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적ㆍ사적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백번 옳다. 하지만 모순이 있다. 일례로 국민연금은 직장생활을 계속 한다면 가입자에게 매우 유리한 상품이다. 문제는 ‘최소 10년 이상’ 불입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고, ‘최소 20년’은 불입해야 소득대체의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청년실업률이 10%대에 이르고, 퇴직이 빨라지는 현실에서 20년 근속이 가능한 이들이 몇이나 될까.

노후대비를 강조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과연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연금상품을 주력 판매하려는 금융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우려스러운 건 이런 이유에서다. 노후 준비는 당연히 해야 한다. 문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분위기에 등 떠밀린 연금 가입이다. 당장 ‘불입할 능력은 있는지’ ‘왜 이 상품으로 노후대비를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인식하고 연금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면 노후소득은 의외로 많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병복 금융산업평가 컨설턴트 bblee2@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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